(사진=박종민 기자/자료사진)
"참고 살아야 할까요. 아니면 끝내 싹싹 비는 모습을 봐야할까요.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십니까."4일 서울 서초구 법원삼거리 앞에서 열린 일제 강제동원 사건 추가소송 제기 기자회견에 나온 김한수(102세) 할아버지가 수십명의 한·일 취재진에게 되물었다. 자신이 살아온 세월의 절반에도 못 미칠 나이의 젊은 기자들에게 "사람마다 다 생각이 다를 수 있으니까요. 어떻게 해야 진짜 인간이 (인간답게) 되는건지…."라고 그간의 고뇌를 풀어놨다.
이날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공익인권변론센터와 민족문제연구소는 김 할아버지를 비롯한 일제 강제동원 피해 당사자 4명과 피해자의 유족 27명을 대리해 서울중앙지법에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 소송 대상은 일본제철(옛 신일철주금)·후지코시·미쓰비시 등 당시 강제동원 가해 일본 회사들이다.
기존에 소송이 제기됐던 회사 외에 이번엔 일본코크스공업(옛 미쓰이광산)도 포함됐다. 코크스공업은 일제강점기 미이케 탄광을 운영하며 조선인들을 강제 동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추가소송 원고인 박모 할아버지의 유족은 2006년 일제강점하강제동원피해자진상규명위원회에서 코크스공업으로부터의 피해사실을 인정받기도 했다.
원고들은 위자료로 피해자 한명당 1억 원 가량을 청구했다. 지난해 10월30일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일본제철이 피해자들에게 1억원씩 배상하라는 판결을 확정한 데 따른 것이다.
김 할아버지가 강제동원된 곳은 나가사키 미쓰비시조선소다. 그는 그곳에서의 생활이 "개나 돼지의 대우만도 못했다"고 표현했다.
김 할아버지는 "같은 일을 하는데 일본 사람은 흰 쌀밥을 주고 조선 사람은 기름 짜고 남은 찌꺼기에 쌀을 조금 섞어서 줬다"며 "벤또(도시락)를 열면 찰기가 없어서 후루루 쏟아졌다. 그마저도 많이 먹지도 못했다"고 말했다.
이날 김 할아버지와 함께 기자회견에 나온 김용화(90) 할아버지도 "힘 있는 강대국은 힘 없는 자를 보호해줘야 하는데 일본은 악용해서 노예화했다"며 "마땅히 보상해야 하고 보상 이전에 반드시 사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후쿠오카의 일본제철 야하타 제철소에서 일하다 앞니가 부러지는 사고를 당했지만 제대로 된 치료도 받지 못했다.
민변은 이 사안이 개개인의 문제가 아닌 국가가 책임져야 할 일인 만큼 정부가 앞장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미 광주에서는 시 차원에서 나서서 '일제 노무동원 피해자 손해배상 집단소송'을 지원하고 있다.
특히 피해자들이 오랜 기간 고통받아왔고 이미 상당히 고령인 점을 감안해 일본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조정과 협의에 나서줄 것을 당부했다.
이날 오전 서울고법 민사8부(설범식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강제동원 피해자 60명의 미쓰비시에 대한 손해배상소송 항소심에서도 원고 측 대리인은 "피해자들은 모두 조정에 응할 의사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미쓰비시 측 대리인은 "현재 미쓰비시중공업의 실무진은 화해나 조정에 부정적인 입장"이라고 밝혔다. 재판부는 오는 6월 27일을 선고기일로 정하고 그 전에 미쓰비시 측이 조정 의사를 전해오면 조정기일을 잡을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