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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걸린 뉴타운 보상…왕십리에 무슨 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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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자료사진(사진=이한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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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세월 기다려왔던 토지보상금을 받아든 순간, 김성수씨(가명)는 보상금을 받기 위해 동분서주했던 지난 세월들이 머릿속을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는 걸 느꼈다. 통장에 찍힌 돈을 확인할 땐 만감이 교차했다.

김씨의 통장에 돈이 입금된 날짜는 올해 3월 14일, 이명박 서울시장 시절 도심 재정비사업으로 뉴타운사업이 시작된 이후 재개발에 수용된 집값을 완전히 받아내는데 꼬박 10년 세월이 걸렸다.

성동구 왕십리에 165평짜리 허름한 공장건물을 소유하고 있던 김씨는 조금 아쉬워도 약간의 손해를 감수했던 이웃들과는 달리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고자 왕십리뉴타운 A주택재개발조합과 맞서면서 가시밭길로 들어섰다.

김씨는 재개발조합이 토지건물보상비의 30%를 추가분담금으로 요구해 조합탈퇴를 결심했다. 그는 2일 CBS와 가진 인터뷰에서 "조합원으로서 아파트받고 현금을 보상받으려고 그랬는데 조합측이 보상금의 30%를 추가분담금으로 내놓을 것을 요구해 조합을 탈퇴했다. 그러자 조합에서는 30%를 제하고 보상금을 지급해 소송이 시작된 것"이라고 말했다.

소송은 김씨 측의 연전연승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재개발조합 측에서도 끝없이 항고를 하는 바람에 지리한 법정공방은 2019년까지 7년째 계속됐다.

김성수씨는 "조합이 (소송에서)지는 줄 알면서도 계속 물고 늘어졌다. 인내심을 갖고 기다리지 않았으면 못했을 일인데, 내 기억에는 한 20년은 싸운 거 같다. 줄돈 줘버리면 끝나는데 왜 남의 돈을 안주려고 그러는 지.. 소송에 조합원 돈 들어가지, 조합장 돈이 들어가는 건 아니니까 이렇게 된 것 같다"고 불편한 기억을 떠올렸다.

왕십리에 주택(68평)을 가지고 있었던 이동렬씨(가명)도 비슷한 이유로 조합과 소송을 진행하느라 진을 다 빼고 말았다. 그가 소송을 시작할 때만해도 60대 나이였지만 어렵사리 승소했을 때는 여든을 바라보는 나이에 이르렀던 것.

서울시 1호인 '왕십리 뉴타운' 내 A재개발조합 지역에서만 두 사람처럼 조합과 갈등을 빚으면서 소송에 나섰던 원주민은 16명, 이들이 법정대리인으로 선임한 H법무법인에 지불한 소송대리비용도 2억원에 이르는 적지 않은 액수다.

재개발사업의 전권을 쥔데다 자금력까지 갖춘 '조합'과 대립각을 세울 때는 그만한 피해와 비용부담을 감수할 각오였지만 7년이란 세월동안 그들이 겪어내야 했던 마음고생은 상상 그 이상이었다.

하지만 승소가 끝이 아니었다. 법원으로부터(서울고법 18민사부) 승소 판결을 받아낸 지난 1월18일의 기쁨도 잠시, 소송건수가 1인당 10여건씩 수십건이나 되고, 변호인측 주장에 의하면, '소송이 지속된 7년동안 의뢰인과 변호인간 소송비용 정산이 전혀 이뤄지지 않다'보니 소송비용 지불 과정에서 갈등이 불거졌다.

양측의 생각과 기대치가 전혀 다른 곳에 있었던 것이다.

의뢰인들은 승소한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바라던 토지보상비가 언제 지급됐는지, 왜 법무법인 계좌로 돈이 입금됐는지, 언제쯤 당사자인 자신들에게 돈이 올지 아무 것도 모른채 지난 2월초 서울 강남의 법무법인 사무실을 방문했다.

그때서야 보상비가 변호사에게 지급된 사실을 알게 됐고 자신들에게는 일언반구도 없이 돈이 지급된 사실에 적잖이 놀라고 당황했다.

이동렬씨는 "조합에서 돈을 찔끔찔끔 지급하며 애를 먹여 변호사를 선임해 소송에 나섰는데, 변호사가 알려주지도 않고 돈을 받아놓고 1달동안 가지고 있는 거예요 하도 (돈을)안줘서 내용증명을 보내고서야 1억3천여만원을 받을 수 있었어요"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씨가 변호인을 불신하게 된 건 돈 지불을 차일피일한 것도 있지만 너무 많은 돈을 소송비용으로 떼 갔다고 봤기 때문. 그가 소송에서 받고자 한 액수는 2억1천만원 이고 이 가운데 33%인 7천만원을 변호인이 원천징수했다.

이에대해 이씨는 "7천이나 떼어가 따져봤더니 엉뚱한 걸 다 집어 넣은거다. 내가 주기로 약속한 건 1000만원과 성공사례 11%뿐이다"고 했지만, 변호인측은 "약정에서 어긋난 게 없다"며 이튿날 이씨를 상대로 채무부존재소송을 제기했고 의뢰인들은 황당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소송에서 이긴 두사람은 곧 들어올 것 같던 돈이 차일피일 늦어지자 지난 2월초 변호인을 만나 2월말 지급을 약속받았지만 변호인측은 이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현 모 변호사는 CBS와의 통화에서 "그분들이 7년동안 약정한 돈을 한번도 지급한 적 없고 계약서를 찾고 정산하느라 늦어졌다"고 해명했다.

김씨와 이씨는 "승소해 토지보상금을 받는 것도, 변호인 사례비를 떼는 것도 변호인이 일언반구도 없이 마음대로 했고, 돈 지급을 차일피일하며 만나주지도 않는 건 의뢰인에 대한 변호인의 갑질 아니냐"며 불만을 터트렸다.

'2월말 지급'이란 약속도 물거품이 되자 두 사람은 결국 '실력행사'에 들어갔다. 테헤란로 법무법인 사무실앞 '1인시위'에 나서고 서초동 서울변협엔 부당한 처우라며 진정서를 냈다. 또, 담당 변호사에 대해 횡령 혐의 고소도 추진했다.

사태의 심각성을 느낀 법무법인에서는 3월14일에야 지급 약속을 지켰지만 과다수임료 분쟁은 현재진행형이다.

자신들의 뜻과는 상관없이 정든 집을 내놓게 된 뉴타운 원주민들, 뉴타운 건설이 끝나고 강산이 1번 지났을 시점인 지금껏 개발의 여파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 재개발 전문가는 "이 분쟁의 본질은 왕십리 뉴타운 조합이 원주민들을 괴롭힌 것으로 보인다"며 "이로 인해 조합과 원주민을 대리한 변호사만 막대한 수익을 냈을 뿐 주민들은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인 피해자"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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