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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반 치매 마주한 어느 70대 노부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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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재·정영숙 주연 영화 '로망'
흐릿해지는 기억 저편 희로애락
노년의 삶이란…부모 세대 반추
현실 연결고리…공감·화해 손길

영화 '로망' 스틸컷(사진=㈜메리크리스마스 제공)

 

결혼 45년차 조남봉(75)씨와 이매자(71)씨는 가족들 배 굶지 않고 살면 그만이라는 소박한 꿈을 좇아 달려왔을 뿐인데 어느덧 노부부가 됐다. 둘은 함께 치매를 앓고 있다. 기억은 갈수록 흐릿해지지만, 그간 먹고 사느라 잊고 지낸 추억은 보다 선명해진다.

다음달 3일 개봉하는 영화 '로망' 이야기다. 노년의 생을 선뜻 그려보기 어려운 데는 주변을 돌아보기 어렵게 만드는 우리네 각박한 삶터가 있지 않을까. 이 영화는 그 견고한 정서에 균열을 만들어낸다.

부부가 함께 치매를 앓는다는 영화적 소재는 삶의 파도에 떠밀리고 떠밀리다 보면 시나브로 마주하게 될 우리네 미래인지도 모른다. 연기 경력 도합 114년을 자랑하는 배우 이순재와 정영숙은 이 영화 주인공 조남봉, 이매자 캐릭터를 각각 맡아 그 설득력을 더한다.

'로망'이 태어나게 된 과정은 흥미롭다. 이 영화 원안을 제공한 충북 MBC 이재혁 PD는 주취폭력을 다룬 시사 프로그램 취재 과정에서 한 할머니를 인터뷰했다. 할머니는 "요즘 치매에 걸린 할아버지 때문에 아주 행복하다"고 했단다. "평생 원수 같았던 남편이 말도 잘 듣고 잘 따른다"는 것이다. 이 PD는 해당 인터뷰를 모티브로 '로망' 초고를 쓴 것으로 알려졌다.

영화 '로망' 스틸컷(사진=㈜메리크리스마스 제공)

 

2018년 기준으로 전국 65세 이상 노인 인구는 738만 9480명. 이 가운데 추정 치매 환자수는 75만 488명, 추정 치매 유병률은 10.16%다. 65세 이상이 되면, 열에 한 명은 치매에 걸리는 셈이다.

미국 유타주립대 노인의학연구팀 논문에 따르면, 부부 중 한쪽이 치매를 앓으면 그 배우자는 그렇지 않은 배우자들보다 치매를 앓을 위험이 6배나 높았다. 남편이 치매에 걸리면 그 아내의 치매 위험은 3.7배 커졌다. 더욱이 아내가 치매를 앓으면 그 남편의 치매 위험은 무려 11.9배 높게 나타났다.

극중 조남봉씨는 택시 모범운전수로서 한평생 가족 밥줄을 지켜 온 인물이다. "내 평생 누구한테 단 한 번이라도 미안하다 한 적 있어?"라는 대사에서도 엿볼 수 있듯이 무뚝뚝한 우리네 할아버지, 아버지의 전형이다. 아내 이매자씨 역시 그러한 남편과 반세기 가까이 함께하면서 한결 같은 마음으로 자식들을 돌 봐 온 할머니요 어머니다.

치매 선고는 이들 부부에게도 분명 절망이었다. 그러나 영화는 이내 가장과 아내라는 오랜 역할을 벗어던진 채 서로에게 집중하는 부부의 변화된 모습을 전하면서 그들의 새로운 인생 여정을 따라간다. 그렇게 치매를 마주한 가족들의 현실적 고민들이 무겁지 않은 톤으로 일상처럼 이어진다.

때로는 과거 가슴에 사무친 상처들이 다시금 떠오르는 탓에 부부는 지나온 인생에 대한 벌을 받는 듯 절망에 빠지기도 한다. 그 와중에 스며드는 자녀 세대 부부의 풍경은 삶과 가족, 사랑에 관한 긴 여운을 남기며 공감과 화해 메시지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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