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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선교사 후손이 100년 보관해온 평양 '독립신문'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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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에서 발행한 지하신문.. 각지의 3.1운동 이후 소식 실어
'휴학', '시험거부' 등 학생들의 항일 의지 엿볼 수 있어

평양에서 발행된 독립신문. 1919년 3월 15일 이후 발행된 것으로 추정된다. 웰본 선교사 부부의 후손들이 양화진문화원에 기증했다.

 


[앵커]
1919년 3.1운동과 관련한 희귀한 자료가 발견됐습니다. ‘독립신문’이라는 이름으로 3.1운동의 소식을 담은 지하신문이 서울 등 각지에서 만들어졌는데, 평양에서 제작된 것으로는 처음 발견됐습니다.

한 선교사 부부의 후손들이 보관하다 양화진문화원에 기증한 귀한 자룝니다. 천수연 기잡니다.

[기자]
한국기독교100주년기념교회 양화진문화원이 3.1운동 당시의 평양에서 발행한 지하신문을 공개했습니다.

'독립신문 제1호'라고 적힌 이 문서는 지하 독립 운동가들이 수기로 작성하고 등사해 평양 시내에 배포한 것으로, 3월 15일 이후 발행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김승태 박사 /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지방에서 발행한 그런 (3.1운동) 전단으로 발견된 것은 처음이다. 그리고 이거는 평양에서 발행돼서 평양에 대한 아주 구체적인 시각들을 담고 있다 .. "

이 독립신문은 만세운동 이후 평양을 비롯해 서울인 당시 경성과 개성의 소식에, 상하이와 베이징 등 외신 보도를 짧게 담았습니다.

학생들의 반일, 애족정신을 가늠할 수 있는 대목도 있습니다. 평양공립고등보통학교 학생들이 교장에 저항하며 휴학을 하고 10살 미만의 경성 학생들은 일본말과 시험을 거부했다는 기록입니다.

[김승태 박사 /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공립보통학교라고 하는 것은 총독부에서 세운 학교예요. 그래서 반드시 교장은 3.1운동 이전에는 일본인으로 세웠어요. 일본인을 세우고, 교사들도 철저한 사상검증을 통해서 친일적인 인물들만 세웠거든요. 그러니까 공립보통학교의 학생들이 이런 일을 했다고 하는 것은 일본 식민지 교육 (일본)동화교육이 실패했다는 걸 의미하는 거죠."

특히 신문의 말미에는 어린 아이조차 나라와 주권, 자유를 위해 죽음을 각오한 시를 담아 국민들의 독립의지를 더욱 고취 시켰습니다.

“사랑하는 동포여 나는 이미 갔소이다. 내 피는 줄줄이 흘렀소이다. 나는 방년 십세라. 좌우 동키 어려우나 내 동족 내 나라 내 주권 내 자유 내 강토 생각하니 저 폭탄이 내 머리를 깨뜨리고 내 몸은 황천객이 되지마는 내 혼은 애국혼 내 동포여... “

[김승태 박사 /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당시 독립운동 참여자들 특히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이 주신 자유를 빼앗은 자도 나쁜 자지만 빼앗긴 것도 죄다 이런 생각을 했어요. 당시 우리 국민들이 얼마나 큰 애국심과 사명감을 가지고 이 운동에 참여했는가를 보여주는 거죠.

이번에 공개된 평양발 독립신문은 웰본 선교사 부부부의 후손들이 보관하다 양화진문화원에 기증한 것으로 문화원 측은 조만간 국가기록원에 문화재로 등록할 예정입니다. CBS뉴스 천수연입니다.

[영상 정선택 최낙중 편집 김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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