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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대한 입단식 동기' 이용규-정근우의 엇갈린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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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가 좋았는데...' 2013년 11월 27일 오후 서울 소공동 플라자호텔에서 열린 프로야구 한화 정근우(오른쪽)·이용규(왼쪽) 입단 기자회견에서 김응용 감독이 두 선수와 취재진을 향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황진환 기자

 

2013년 11월 27일 한화는 성대한 행사를 열었다. 자사 계열의 서울 소공동 프라자호텔에서 당시 김응용 감독을 비롯해 정승진 대표이사, 노재덕 단장 등 구단 수뇌부와 주장 고동진을 비롯해 김태균, 최진행 등 주축 선수들까지 모였다.

바로 FA(자유계약선수) 정근우(37)와 이용규(34)의 입단식이었다. 각각 SK, KIA에서 FA로 풀린 이들은 4년 총액 70억 원과 67억 원에 한화 유니폼을 입었다. 대표와 단장이 이들에게 유니폼을 직접 입혔고, 김응용 감독과 선수들이 꽃다발을 전하는 등 극진히 대접했다.

리그를 대표하는 내외야수이자 정상급 테이블 세터들이었다. 특히 이들은 2008 베이징올림픽에서 한국 대표팀의 빠른 야구를 이끌며 9전 전승 금메달 신화에 힘을 보탰다. 이후 2009년 WBC(월드베이스볼클래식), 2010년 광저우아시안게임 등 숱한 국제무대에서 활약했다.

당시 입단식에서는 특히 김 감독의 입이 귀에 걸렸다. 김 감독은 해태(현 KIA)와 삼성에서 한국시리즈를 10번 우승이나 우승한 명장이었지만 9년 만에 사령탑에 복귀한 2013시즌 한화에서 최하위 수모를 겪었다. 신생팀 NC에도 밀렸다. 그런 김 감독에게 반가울 수밖에 없는 전력 보강이었다. 김 감독은 "둘이 도루 80개 이상, 아니 100개는 해줘야 한다"며 싱글벙글이었다.

두 FA도 이런 대접에 황송해 하면서 심기일전, 다부진 각오를 밝혔다. 이용규는 "성대하게 입단식을 마련해준 한화 그룹 임직원 전부 모두에게 감사한다"고 고마움을 드러냈고, 정근우는 "명문 한화에 입단해 영광이고 내년 4강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입을 앙다물었다.

프로야구 한화 이글스 정근우·이용규 입단 기자회견에 참석한 선수들이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왼쪽부터 최진행, 이용규, 고동진, 정근우, 김태균. 황진환기자

 

5시즌이 지난 2019년 3월 상황은 크게 달라졌다. 극진한 대접을 받았던 둘의 입지는 적잖게 좁아졌다. 이들을 시작으로 수백억 원을 들여 대형 FA들을 줄줄이 사들였던 한화는 지난해부터 기조를 바꿔 신인급 선수들을 육성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특히 유망주들을 내주고 즉시전력감을 데려왔던 김성근 감독 시절의 실패가 큰 교훈이 됐다. 이미 2016시즌 뒤 박종훈 단장이 부임해 작업에 들어갔고, 2017시즌 뒤 세대 교체의 특명을 안고 한용덕 감독이 사령탑을 잡으면서 팀 개조에 박차를 가했다.

자연스럽게 베테랑들의 위상도 예전보다 달라졌다. 세대 교체와 변화의 바람에 붙박이는 없어졌다. 2016년 KBO 최초 1군 연봉 3억 원을 넘겼던 한화는 차츰 몸집을 줄여갔다.

일단 정근우부터 그랬다. 2017시즌 뒤 FA 자격을 재취득한 정근우는 한화에 잔류했지만 계약이 순탄치 않았다. 계약 기간 2+1년에 총액 35억 원(계약금 8억 원, 연봉 7억 원, 옵션 2억 원 포함)의 조건이었다.

그런 정근우는 지난해 포지션까지 변경됐다. 그동안 정상급 2루수로 활약했던 정근우는 외야수로 깜짝 변신하기도 했고, 작은 체구에도 1루수를 맡기도 했다. 차세대 2루수 정은원의 육성 기조에 따른 변화였다. 정근우는 올해 중견수로 뛸 전망이다.

정근우는 지난해 원래 포지션이었던 2루수를 떠나 좌익수를 거쳐 1루수도 맡았다. 사진은 1루수로 출전한 경기 모습.(사진=한화)

 

정근우는 변화를 받아들인 것이다. 한때 한국 야구의 핵심으로 군림했던 정근우였지만 자존심을 버리고 내외야수에 1루수까지 글러브를 여러 개 갖고 다니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정근우는 당시 상황에 "살기 위해서"라고 농담처럼 말했지만 적잖은 마음고생 끝에 내린 결기가 드러났다.

한용덕 감독은 그런 정근우의 가치를 인정했다. 한 감독은 "우리 선수단에서 가장 야구 아이큐가 높은 사람은 정근우"라면서 수비 포지션은 이동시켰지만 타순에서는 중용했다. 이런 기조 속에 한화는 지난해 정규리그 3위로 11년 만에 가을야구 무대를 밟는 성과도 이뤄냈다.

이용규도 변화의 바람을 피해갈 수 없었다. 지난 시즌 뒤 FA 자격을 다시 행사했으나 5시즌 전과는 규모가 많이 줄었다. 2+1년 총액 26억 원에 사인했는데 계약금 2억 원, 연봉과 옵션 4억 원씩이었다.

FA 재수를 택했지만 결과가 만족스럽지 못했다. 이용규는 정근우와 마찬가지로 2017시즌 뒤 FA 자격을 다시 얻었지만 행사를 미뤘다. 2018시즌 성적을 올려 다시 가치를 인정받겠다는 의지였다. 134경기 타율 2할9푼3리 82득점 36타점 30도루 출루율 3할7푼9리로 나름 활약했지만 전성기에는 못 미치는 성적이었다.

리그의 거센 타고투저 바람에 이용규의 가치가 떨어진 측면도 있다. 갈수록 장타력이 중요해지는 리그에서 단타 위주 교타자의 입지는 줄고 있다. 타율 3할이 되지 않는다면 더더욱 그렇다. 거포 박병호(키움)의 2번 타순 기용 검토처럼 테이블 세터의 역할도 바뀌는 추세다.

트레이드를 요구하며 한화와 결별을 알린 외야수 이용규.(사진=한화)

 

이런 상황에서 한용덕 감독은 이용규에게 올 시즌 9번 타순을 맡긴다고 밝혔다. 포지션도 중견수에서 좌익수로 옮겼다. 일본 오키나와 스프링캠프에서였다. 세대 교체와 리그의 변화 등을 고려한 판단이었을 터.

결국 이용규는 지난 15일 SK와 시범 경기를 마친 뒤 한 감독에게 트레이드를 요청했다. 시즌 개막을 불과 일주일 남긴 상황에서 나온 주전 외야수의 이탈 요구에 한화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이미 패를 깐 상황에서 다른 구단과 이적 협상은 불리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된 이상 한화와 이용규는 올 시즌 함께 가기는 어렵다. 한화는 이용규에게 육성군행을 통보한 상황이다.

2013시즌 뒤 성대한 입단식으로 함께 한화 유니폼을 입었던 정근우와 이용규. 두 국가대표 테이블 세터의 운명은 5시즌이 지나 극명하게 갈리게 됐다. 한 쪽은 달라진 환경을 받아들이고 변신을 시도했지만 다른 한 명은 변화를 인정하지 못한 끝에 다른 결단을 내렸다. 과연 2013년 한화 입단 동기들의 향후 행보가 어떻게 이어질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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