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끝작렬] 욕하면서 보는 '北 악마화' 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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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노이 회담 결렬되자 '북한 때리기' 봇물
핵활동 자체는 약속 위반 보기 힘들어
北에 책임전가, 제재강화 정당화, 한국 자율성 약화 우려

(사진=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위대한 경제강국'이 될 수 있다던 북한이 졸지에 '불량국가' 이미지로 급전직하하고 있다.

지난달 28일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이 결렬된 지 불과 10여 일 사이의 일이다.

결렬 직후 강선과 분강 등 비밀 우라늄농축시설 존재설이 불거지더니 동창리 미사일 발사장의 이상 징후마저 겹쳐졌다. 북한 비핵화 회의론이 정당화되는 근거가 마련됐다.

완결판은 12일 공개된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위원회 보고서. 지난해 남북, 북미 정상회담을 하던 와중에도 핵물질은 계속 생산했다는 게 핵심 요지다.

뿐만 아니라 남포항 수중 비밀 송유관 등을 이용해 기름을 몰래 수입했고, 가상화폐거래소를 해킹해 약 6억 달러를 절취했으며, 아프리카 국가 등과 무기 암거래를 한 것으로 조사됐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북한이 1차 북미정상회담과 2차 정상회담 사이에만도 약 6개의 핵무기를 제조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노딜' 회담의 충격이 채 가시지 않은 가운데 제기된 이 같은 '비위' 사실들은 북한은 역시 못 믿을 존재라는 배신, 분노, 실망감을 부른다.

(사진=연합뉴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찌됐든 대화를 지속해나갈 수밖에 없는 상대라면 상황을 조금 냉정하게 바라 볼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회담 와중에도 핵무기를 만들어서 뒤통수를 쳤다는 식의 비난은 내부 결집에는 도움이 되겠지만 협상 전략으로는 효용성이 낮다.

미국과 옛 소련은 과거 전략무기감축협정(START) 협상 때 오히려 핵무기 생산에 열을 올렸다. 협상력을 높이기 위해서다.

합의 이후에도 핵무기를 몰래 만들었다면 당연히 잘못이지만 그 이전에 생산을 늘린 것을 탓할 수는 없다. 도덕적 비난은 가능해도 법적 문제는 없다는 게 국제사회의 상식이다.

문정인 청와대 통일외교안보특보는 최근 한 토론회에서 '북한의 행위는 미국을 속인 것 아닌가'라는 질문에 "아주 난센스적인 분석"이라며 "제가 북한을 편드는 게 아니다. (하지만) 북한이 그것을 약속한 적은 없다"고 말했다.

북한이 핵과 미사일 실험을 하지 않겠다고 했을 뿐 핵활동 자체를 중단한다고 한 적은 없다는 것이다.

미국의 적대시 정책 때문에 핵을 개발했다는 북한 입장에선 안전보장이 이뤄지기 전까지는 핵을 보유해야 할 논리적 당위성이 있다.

이런 사정들을 감안하지 않고 혹여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는 식의 감정적 대응에 나서봐야 되치기 당할 공산만 커진다.

(사진=연합뉴스)

 

하노이 회담이 결렬되자 기다렸다는 듯 일제히 시작된 '북한 때리기'의 배경을 알기는 힘들다.

다만 분명한 사실은 회담 결렬 책임이 오롯이 북한에 전가되고, 제재 유지는 물론 강화 필요성마저 정당화되고 있으며, 이 속에서 한국의 자율성은 더욱 줄어드는 것이다.

당장 외교부는 개성공단·금강산관광에 대해 속도조절에 나섰고 기존의 '중재자' 표현도 '촉진자'로 수정해가며 대미 '밀착'을 강화했다.

외교당국의 말 못할 고민과 심모원려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이 주권국이고 민주국가라면 적어도 다른 영역에서는 다른 목소리도 나와야 한다.

예컨대 스페인 주재 북한 대사관 침입사건의 미국 중앙정보국(CIA) 배후설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스페인 유력 언론은 북한 김혁철 대미특별대표가 대사로 재직했던 사실과 하노이 회담 닷새 전 발생한 점에 주목하면서 "미국이 동맹국을 상대로 이런 행위를 한 것을 용인할 수 없다"는 당국의 격앙된 분위기를 전했다.

하노이 회담 결렬 책임만 해도 그렇다. 북한 잘못도 있지만 갑자기 일괄타결안을 제시함으로써 판을 깨버린 미국의 귀책사유도 크다는 사실을 누군가는 당당히 짚어줘야 한다.

이미 두 차례의 정상회담을 한 국가 간 협상이 앞으로도 정상적으로 이뤄지려면 '완력'보다는 '명분'이 중요하다.

중재자가 됐든 촉진자가 됐든 한국이 가장 큰 명분을 가지고 거의 유일하게 얘기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닌가?

※ 노컷뉴스의 '뒤끝작렬'은 CBS 노컷뉴스 기자들의 취재 뒷얘기를 가감 없이 풀어내는 공간입니다. 전 방위적 사회감시와 성역 없는 취재보도라는 '노컷뉴스'의 이름에 걸맞은 기사입니다. 때로는 방송에서는 다 담아내지 못한 따스한 감동이 '작렬'하는 기사가 되기도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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