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컷 딥이슈'는 연예 이슈를 한 걸음 더 깊이 들여다보면서 그 이면의 사회·문화 현상을 진단합니다. [편집자주]
성관계 영상을 불법촬영해 가수 승리 등 연예인 지인들에게 불법으로 유포한 혐의를 받고 있는 가수 정준영이 12일 예능 프로그램 촬영을 중단한 뒤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하고 있다. (사진=박종민 기자/자료사진)
불법 촬영 및 유포 혐의를 받고 잇는 가수 정준영이 14일 귀국 후 처음으로 경찰에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해 조사를 받는다.
정준영·승리가 포함된 이 카카오톡 단체 대화방에는 성범죄 뿐만 아니라 경찰 유착까지 의심할 수 있는 정황이 담겨 있어 어떤 식으로 수사가 진행될 것인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정준영은 지난 2016년과 지난해 이미 두 차례나 불법 촬영 혐의를 받았다. 그러나 당시 경찰이 제대로 증거조차 확보하지 못한 채 무혐의 처분으로 끝나면서 부실 수사 의혹까지 번지고 있다. 세 번째인 이번 수사에서는 과연 제대로 된 처벌이 이뤄질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지난해 '미투'(#MeToo·SNS에 성범죄 피해 사실을 밝히는 캠페인) 국면에서 피해자들을 지원해왔던 서초동의 A 변호사가 13일 정준영 수사의 핵심 쟁점들에 대해 답했다. 다음은 A 변호사와의 일문일답.
▶ 정준영이 12일 귀국해서 14일 조사를 받는다. 일각에서는 왜 긴급체포가 이뤄지지 않았는지 의문을 갖기도 하는데 구속 수사 가능성도 있을까.- 증거 인멸의 우려가 충분히 있다고 보기 때문에 정준영에 대한 구속 수사가 필요하다. 같은 의미에서 검찰에서 하루라도 빨리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하는 것도 중요하다. 피해자 보호가 우선이기 때문에 컴퓨터, 태블릿 PC 등 불법 촬영 영상물이 있을 법한 소지품을 놓치지 말고, 빠짐없이 살펴볼 필요가 있다. 유포 경로 또한 끝까지 추적해야 한다.
▶ 정준영이 단체 대화방에서 지인들과 나눈 대화를 보면 약물을 이용한 강간 등의 혐의도 의심되는 상황이다. 앞선 불법 촬영 혐의들도 재수사가 들어갈지 궁금한데. 만약 그렇다면 처벌 수위는 어느 정도일까.- 준강간 혐의가 적용돼 당연히 수사가 들어가리라 생각한다. 일단 불법 촬영 건만 여러 건이고 여기에 준강간 혐의나 경찰 유착 건까지 더해지면 재판 과정에서 형이 더 쌓이게 되는 거다. 죄에 죄가 더해지는 식이다. 2013년에 친고죄가 폐지됐기 때문에 과거에 저지른 사건들도 얼마든지 재수사에 들어갈 수 있다. 정준영은 연예인이라는 직업적 신뢰도를 범죄에 이용했을 가능성이 높고, 지금 혐의만으로도 실형은 충분히 나올 법하다.
▶ 정준영이 13일 공개한 사과문에는 모든 혐의를 인정하고 죗값을 치루겠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변호사가 작성해 준 사과문이라는 추측도 있었는데 이 사과문이 자백의 기능을 할 수 있나?
- 전혀 무관하다. 범죄 사실에 대한 자백은 자신의 범행 사실이 구체적으로 나와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시간과 장소도 포함돼야 한다. 그 과정에서 증거자료 제출도 자발적으로 이뤄진다. 저런 사과문은 법률적 의미의 자백이 될 수 없다. 여론을 잠재우기 위해 이렇게 이야기한 후 실제 법정에서는 부인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 정준영을 기준으로 보면 이 카카오톡 단체 대화방은 여러 개였다는 보도도 나왔다. 비록 정준영을 포함한 일부만 불법 촬영 및 유포를 했다고 해도 이 대화방들에서 범죄 사실을 묵인하고 즐긴 이들에 대한 처벌은 이뤄질 수 없나.- 우리나라는 죄형법정주의(범죄와 형벌은 법률로 정해져야 한다는 원칙)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에 법적인 처벌은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비도덕적 행태에 대한 사회적 징계는 가능하다. 위법은 아니지만 비도덕적 행동이 공동체의 질서와 유대를 깨뜨리는 것 아닌가. 일단 불법 촬영 영상물이 공공연하게 유포됐던 단체 대화방 속 연예인들에 대해서는 연예계 퇴출이 일종의 징계가 될 수 있겠다. 그들의 활동을 대중이 용인하지 않는 것이다.
▶ 과거 많은 성범죄 사건들을 전담해왔던 것으로 알고 있다. 지금까지 사건들에 비춰봤을 때 이번 승리·정준영 카카오톡 단체 대화방에서 드러난 불법 촬영 공유 및 유포 수법이 어느 정도 수준인가.- 그들이 유명인이라는 것만 제외한다면 특별할 것도 없다. 저런 남성 가해자들은 차고 넘친다. 주목할 점은 정준영이나 그 지인들이 이 대화방에서 나눈 성폭력 수법들이다. 의식 없이 기절한 상태의 여성을 강간하거나, '영상만 안 걸렸으면 사귀는 척하고 (성관계를) 하는 건데' 등의 대화에서 정준영을 비롯한 단체 대화방의 가해자들이 어떤 식으로 성범죄를 저질렀는지 드러난다. 보통 강간을 화간으로 둔갑시키거나 약물 강간 사건에서 볼 수 있는 전형적 수법이다. 정준영은 실제로 2016년 전 여자친구에게 고소를 당했을 때 '사귀는 사이에서 상호 인지 하에 촬영한 영상'이라고 했었다.
▶ 승리와 정준영 조사를 시작으로 풀려야 할 의혹들이 산더미 같다. 일단 가장 중점에 있는 건 경찰 유착을 의심케 하는 대화들이다. 이 파장이 어디까지 갈 것이라고 보나.- 한 개인의 도덕성 문제로만 가면 사실 단면만 보게 되는 상황이다. 정준영이 합당한 처벌을 받으면 끝나는 게 아니라 경찰과 유착 관계가 나왔고 결국 승리 사건과도 연결돼 있다고 생각한다. 연예인들의 권력과 경찰만 있었겠나. 관련 공무원과 권력자들이 있을 것이 분명하다. 증거물 확보만 잘하면 우리나라 디지털포렌식 기술이 워낙 뛰어나서 전부 나온다. 경찰 간부, 심지어 청장까지 언급된 상황에서는 경찰에서도 덮는 것보다 조사·처벌해서 털고 가려고 할 거다.
▶ 결국 승리·정준영 단체 대화방은 남성들 사이 여성에 대한 성범죄가 어떻게 공유되고 묵인되는지 보여주는 한 사례가 됐다. 여성에 대한 그릇된 성인식이 이 사회에 얼마나 팽배한지를 지적하는 이들도 많다.- 그렇다. 이 사건의 다른 한 축은 결국 성인식에 대한 문제다. 여성에 대한 불법 촬영과 유포를 묵인하거나 함께 즐긴 사람들이 이를 용납하지 않았다면 그런 피해가 계속 발생했을까. 결국 그들을 계속 공동체에 받아주고 이들도 문제인 셈이다. 그런 식으로 여성을 품평하고, 불법 촬영하고, 유포하고, 약물 강간을 하는 행위들이 남성들 사이에서 대단한 자랑과 권력으로 여겨지고 있는 상황이다. 그게 죄라는 생각도 없고, 그런 인식이 사회 곳곳에 퍼져있다. 이 사건을 개인의 도덕성으로 몰고 가기에 정준영 같은 사람들은 너무나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