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서초사옥 (사진=이한형 기자/자료사진)
삼성그룹에게 노조는 '병균'과 같은 존재였을까. 삼성이 그룹 계열사도 아닌 밑단위 협력업체까지 치열하게 노조 와해를 밀어붙인 배경에는 '감염'에 대한 우려가 깔려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12일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23부(유영근 부장판사)가 진행한 '삼성 노조와해' 6번째 공판기일에 검찰은 처음으로 서증조사를 실시했다. 2003년부터 2012년까지 매년 삼성이 작성해온 노사전략 문건을 차례로 프리젠테이션(PPT) 화면에 띄웠다.
이 중 2010년 법무·홍보부서장 교육안에는 "(노조 설립 시) 초기 대응 미흡으로 조기 안정화를 이루지 못할 경우 '행동 감염'이 발생해 체력 확산 가능성이 높음"이라는 표현이 등장했다.
2013년 심상정 정의당 의원이 '2012년 S그룹 노사전략' 문건을 공개한 후로 삼성그룹이 무노조 경영을 위해 지시한 각종 사항들이 알려졌지만, 이처럼 노조에 대해 '감염' 운운하며 차단 대상으로 적시한 적은 없었다. 2011년 7월 복수노조법 시행을 앞두고 삼성그룹이 얼마나 노조 문제를 민감하게 보고 있었는지 드러난 셈이다.
이날 검찰 서증에서도 삼성그룹이 작성한 노사전략 관련 문건과 예시 자료들은 2010년부터 급증했고 대응 방식도 이전보다 과격하고 치밀해졌다. 협력사에 대한 관리를 철저히 주문한 것도 이때부터다.
2010년 삼성경제연구소의 장모 전무가 그룹 HR컨퍼런스 발표를 위해 작성한 '복수노조와 노사전략'이라는 자료에는 "그룹 산하 어느 한 곳이라도 노조 설립 시, 파급 연쇄효과로 그룹 전체가 위기"라며 "자칫 도미노처럼 붕괴될 수도 있다"고 적혀있다.
특히 "노동계가 노사관계의 취약지대인 협력사를 통해 우회적인 침투를 시도할 수 있고 이는 바로 그룹 관계사 노조문제가 될 수 있다"며 "협력사를 상대로 비노조 경영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내용의 교육과 모의훈련은 그룹 내 법무·홍보부서장 등 관리자 2만9000여 명을 대상으로 이뤄졌다. 노조 설립 전과 후로 '비상대응체계'를 따로 수립하기도 했다. 특히 노조가 이미 설립됐다면 '소수 인력이 사익을 목적으로 했다'거나 '인사제도에 대한 반발'이라는 식으로 설립 명분을 약화하라는 아이디어까지 제시했다.
이외에도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협조를 통한 교섭회피나 거부방법에 대해 안내하고 그룹 차원에서 노무인력을 양성하는 계획을 적시하기도 했다. 2011년 복수노조법 시행 이후에는 "조기와해가 원칙이지만 실패하더라도 장기적으로 와해를 목적으로 상황별 전략을 모색해야 한다"고 당부하면서 반올림이나 삼성 일반노조, 민노총 금속노조 등 반(反)삼성 주요 인물과 단체에 대한 면밀한 파악을 지시했다.
검찰은 이러한 노사전략 문건들이 모두 삼성그룹의 컨트롤타워에서 만든 것이라고 강조했다. 2005년까지 문서에는 작성부서가 구조조정본부로, 그 이후에는 전략기획실, 2010년 후로는 미래전략실이라고 기재돼 있다. 이들 부서는 이름만 바뀌었을 뿐 모두 같은 곳이다.
검찰은 "강경훈 삼성전자 부사장이나 목장균 전무 등 대부분의 피고인이 1999년부터 (노조) 상황별 위기 대응 전략을 마련하거나 이를 교육·학습한 사람들"이라며 "십수년에 걸쳐 이러한 일이 이뤄져 왔다"고 지적했다.
이날 재판에 앞서 변호인단은 지난 공판기일까지 내내 주장했던 '위법 증거 수집' 문제를 다시 지적했으나 재판부가 단호히 정리했다. 재판부는 "위법 증거 수집 여부를 가지고 다시 (문제 삼으면) 여기서 판결을 선고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최종은 아니지만 일단 증거 채택하기로 잠정 결론 내렸기 때문에 최종 판결에서 고려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삼성 측은 지난 5일 공판에서 관련 혐의들이 그룹 경영을 위한 합법적인 정책이자 계열사 관리에 불과하다고 항변했다. 변호인단은 이날 서증을 토대로 다음 공판기일부터 의견을 진술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