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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말선초 최대 건칠불 눈동자와 귀의 비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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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3-04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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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 불상 4점 분석한 '불교조각 조사보고3' 발간
"오쿠라슈코칸 건칠불과 한 쌍일 가능성 매우 커"

건칠보상좌상 눈 부분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현존하는 여말선초(麗末鮮初) 건칠불(乾漆佛) 중 입상을 제외하면 가장 큰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건칠보살좌상'은 보관을 쓴 높이가 124.5㎝에 이른다.

건칠불은 흙으로 빚은 소조상을 제작한 뒤 그 위에 천을 여러 겹 바르고 옻칠한 다음 원형(原形)이 된 소조상을 제거한 불상을 뜻한다.

유난히 큰 건칠보살좌상은 이왕가박물관이 1915년 12월 23일 일본인 우라타니 세이지(浦谷淸次)로부터 400엔을 주고 매입했다. 일본 오쿠라슈코칸(大倉集古館) 소장 건칠보살좌상과 크기와 표현 양식이 유사해 본래 한 쌍으로 추정됐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이 건칠보살좌상에 대한 정밀조사를 통해 확인한 제작 기법과 세부 처리 사실을 정리한 보고서 '불교조각 조사보고3'을 펴냈다고 4일 밝혔다.

건칠불 2점과 소조보살입상 1점, 목조석가불좌상 1점에 대한 분석 결과를 담은 보고서에 따르면 건칠보살좌상은 전반적으로 포 8∼9겹이 관찰됐고, 입술과 인중은 5∼7겹이었다.

양희정 박물관 학예연구사는 "칠포층 두께는 인중이 3.5㎜로 가장 얇았고, 정수리가 10.0㎜로 두꺼웠다"며 "하복부와 무릎 등 굴곡이 많은 곳은 포의 밀착도가 떨어져 두께가 15∼17㎜로 나타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컴퓨터 단층촬영(CT) 장비로 내부를 조사한 결과, 머리 부분 흙을 제거하기 위해 정수리부터 목 뒤쪽까지 길게 절개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조사단은 "원형이 되는 상을 완벽한 형태에 가깝게 제작하고 눈과 귀, 영락(瓔珞·구슬을 꿰어 만든 장신구), 머리카락은 건칠 작업이 끝난 뒤에 했음을 알 수 있다"며 "상의 전체 형태를 조성하는 데 못은 사용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건칠보상좌상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눈은 보살상을 거의 완성한 다음 표면을 4㎜ 깊이로 각지게 파내는 방식으로 만들었다. 동공 부분에는 건칠과 물성이 다른 물질을 삽입했는데, X선 형광분석(XRF)을 통해 재질이 석영임이 드러났다.

조사단은 "동공 표현을 위해 넣은 석영은 좌우 모양이 약간 다르며, 외부에서 보면 동공이 타원형"이라며 "끼워 넣은 눈을 고정하기 위해 상 안쪽에 조각천을 붙였는데, 오른쪽은 천이 찢어져 육안으로도 눈동자 재료를 일부 볼 수 있다"고 전했다.

이어 "원형이 되는 상을 제작할 때는 귀를 만들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며 "목재로 귀를 깎아 접착 물질을 사용해 부착했고, 두 손도 나무로 깎아 끼워 넣었다고 판단된다"고 주장했다.

조사단은 내부 분석을 통해 이 건칠불이 오쿠라슈코칸 건칠보살좌상과 협시보살 한 쌍으로 제작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결론지었다. 양 연구사는 "보살상 아래쪽과 후두부를 통해 내형토를 제거하고 마감 처리를 하지 않은 점이나 긁어내고 남은 흙이 얇은 막을 이룬 정도가 동일하다"며 "눈동자에 석영을 넣는 방식, 못을 쓰지 않고 보계(불상 머리 위에 두발을 땋아 올린 것)와 귀를 고정하는 방식이 공통으로 발견되며, 가슴 장식의 문양 구성도 같다"고 말했다.

다만 제작 시기를 파악하기 위한 연대측정에서 목재 시편은 1244∼1289년(신뢰도 93.8%)이라는 결과가 나왔으나, 칠포는 각각 1310∼1361년(신뢰도 61.2%)과 1433∼1495년(신뢰도 91.5%)으로 나타나 정확한 시점을 알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보고서는 높이가 51㎝로 현존하는 건칠불 가운데 가장 작다고 알려진 여말선초 보살상에 대한 분석 결과도 수록했다. 이 보살상은 크기가 작아 눈동자를 다른 재료로 표현하지 않고 채색했으며, 포와 포 사이 밀착도가 높아 두께가 매우 얇은 것으로 드러났다.

또 박물관은 높이가 121.5㎝인 조선 전기 소조보살입상은 내부 목심으로 3단 목재를 사용하고 부재 균열을 막기 위해 못 66개를 썼음을 확인했고, 높이가 동일한 조선 전기 목조석가불좌상은 내부에서 복장(腹藏·불상 안에 넣는 성물)을 수습하고 제작 시기를 17세기로 추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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