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조현아 동영상'보다 무서운 TV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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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중의 칼럼]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사진=이한형 기자/자료사진)

 

방송사의 TV뉴스가 이상해졌다고 느끼는 것은 나의 과민함 탓일까.

지난달 20일 공영방송 KBS <뉴스9>에서 본 '조현아 동영상'은 많은 생각을 하도록 만들었다. 앵커는 대한항공 전 부사장 조현아씨가 남편과 자녀에게 가한 언어폭력 동영상을 보도하면서, "남편 박씨가 경찰에 제출한 증거물을 단독 입수했다"고 밝혔다.

뉴스를 보고난 후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게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이 동영상은 공영방송이 보도할 내용이 아니라는 쪽으로 마음이 굳어졌다.

뉴스에 공개된 조현아의 폭언 동영상은 인간의 비참과 애처로움의 집합체였다. 실체가 누구이든 소름끼치는 폭언에 노출된 우리는 다양한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다. 욕을 할 수도, 혀를 찰 수도 있다. 그런가하면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도 있다. 인간의 감정은 저마다 다르기 때문에 시청자들의 반응도 제각각이었을 것이다.

너무나 어처구니없는 그 동영상을 보고난 후 몹시 불쾌했다. 한 인간이 어쩌면 저리도 표독하고 폭력적일 수 있을까. 그러다가 흥분된 감정을 가라앉힌 뒤 깊이 그리고 냉철하게 사건의 본질을 들여다보았다.

이 동영상이 과연 공영방송의 TV 메인뉴스에 나올만한 내용인가? 4년 전 땅콩회항 사건으로 시작된 한진가의 오너 리스크에 대한 연장선이라는 의도는 알 것 같았는데, 이번 동영상은 그것과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이내 알아챌 수 있었다.

땅콩회항 사건의 경우 재벌 기업가의 비윤리적이고 전횡적인 독선 경영이 낳은 기형적인 행태로, 이 사건 자체가 공적 영역에 속하는 것이었다. 공공재에 가까운 항공기를 사유물처럼 인식하고 있는가 하면 직원들을 종처럼 부리는 뒤틀어진 갑질 횡포 역시 지탄받아 마땅했다.

(사진=스마트이미지 제공/자료사진)

 

그러나 이번 조현아 폭언 동영상은 달랐다. 이혼을 준비하는 남편이 아내 몰래 찍은 증거물이라는 점부터 공정하지 못했다. 땅콩회항 사건의 주인공이 가정 안에서 남편과 자녀에게 벌인 폭언이 보도의 팩트였다. 그러나 그런 내용이 뉴스거리가 된다면 매시간 보도를 해도 다 못할 정도로 비슷한 폭언 동영상이 부지수일 것이다. 다만 당사자가 사회적 영향력이 큰 공인으로 한때 국민의 공분을 산 인물이라는 것뿐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엄연한 사생활 침해고 명예훼손이다.

기자협회 윤리강령과 방송심의 규정을 찾아보았다. 사생활과 소송 중인 사건에 대한 보도는 신중해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었다. 당사자가 공인이라지만 그의 사생활까지 낱낱이 공개하는 것은 정당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런 규정을 만들었을 것이다. 가정에서의 폭력이 반드시 직장 내 폭력으로 이어진다는 단정도 위험한 발상이다. 조현아 동영상만 볼 때 그럴 개연성이 높다고 여겨지겠지만 모든 사람이 다 그런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때문에 오너 리스크를 들먹이는 것도 명분이 약하다.

폭언 동영상을 본 시청자들의 반응에도 신경이 쓰였다. 학자들은 TV를 통해 접하는 폭력 동영상은 시청자들에게 반사회적 행동을 증대시킬 수 있는 위험이 있다고 경고하고 있기 때문이다. 청소년의 경우 폭력에 대한 학습효과와 배양효과라는 부작용이 나타날 수도 있다고 지적한다. 폭력 동영상을 보면서 동일한 폭력에 둔감해지거나 유사행동을 재연하거나 배양하는 나쁜 결과를 가져다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방송사가 이 모든 문제점들을 몰랐을리가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TV 메인뉴스를 통해 동영상을 공개한 이유는 왜일까. 내 생각에는 단독 보도라는 특종 욕심에 시청률 상승이라는 상업논리가 가세한 결과라고 밖에 볼 수 없다.

실제로 지난달 20일 방송된 KBS뉴스 '조현아 동영상'의 유튜브 조회 수는 126만 건을 넘어섰다. 시청료로 운영되는 공영방송이 시청률에 급급해 상업성을 띈 민방이나 유튜브 동영상 같은 OTT와 다를 것이 없다면 이를 어찌 해석해야 할까. 공영방송이 이렇다면 수많은 채널의 민영방송은 말할 필요도 없는 것 아니겠는가.

TV뉴스는 갈수록 무서워지고 있다. 남들로부터 낭만적인 생각일뿐더러 급변하는 시대흐름에 뒤쳐진 사람이라는 지청구를 들을지라도 TV뉴스의 객관성 그리고 냉철함과 품격을 그리워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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