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과 '청년'이 함께해서 더 불타오른 지역 만세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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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에서도 들끓은 만세운동④] 단합한 농민들에게 일본 경찰들 굴복하기도

최인식, 이명의, 이동진 등 청년이 앞장선 만세운동
광복회 "독립운동 앞장선 분들 발굴작업 계속돼야"

1930년대 양양 전통시장 모습으로, 19년 4월 4일 일어난 만세운동은 장날에 맞춰 이곳에서 진행됐다. (사진=양양문화원 제공)

 

기미년(1919년) 3·1 만세운동이 지역에서도 들끓을 수 있었던 원동력에는 농민과 청년 등 보통사람들이 있었다. 지역에서는 이들을 조명하고 발굴하려는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강원 지역에서 가장 치열하게 만세운동이 벌어진 양양에서는 농민들이 '불쏘시개' 역할을 톡톡히 했다.

국가보훈처 등 자료에 따르면 양양 손양면 주민들은 4월 4일 처음 일어난 만세운동을 준비할 수 있는 기간이 비교적 짧았다. 그 탓에 태극기를 만들기 어려웠다.

이에 농민 최한두, 김진열, 김종택 등은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 깃발을 들고 농악대를 앞세워 만세운동에 참여했다. 이는 농민들의 반일 감정을 그대로 표현한 것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이어 5일에는 강현면 농민 5백여 명이 물치 장터에 모여 만세운동을 외쳤고, 농민들이 합류한 시위대 1천여 명은 물치 주재소(일제 당시 순사가 머무르며 사무를 맡아보던 경찰의 최일선 기관)에 찾아가 일본 경찰들에게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고 맞섰다.

3·1 만세운동 유적비로, 만세운동을 세게 진행했다고 해서 '만세고개'라는 명칭이 붙었다. (사진=양양문화원 제공)

 

겁에 질린 주재소 소장은 "조용히 만세운동만 외치고 가 달라. 우리는 일본으로 돌아가겠다"며 농민들을 달랬다. 눈앞에서 일본 경찰들이 쩔쩔매는 것을 본 농민들은 독립을 곧 이룰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이 높았다고 전해진다.

이에 더해 청년층은 양양 만세운동의 주축이 된 유림과 기독교 세력을 연결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기록에 따르면 청년 최인식 열사는 이석범 선생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유림세력이 신문화 교육을 받은 학생들과 함께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도왔다. 특히 최 열사는 양양 보통학교 1회 졸업생으로, 같은 학교 출신들을 끌어들여 독립 만세운동에 불을 지폈다.

한편 강릉지역도 청년들 역할이 컸다. 그 선두에는 이명의 지사가 있었다.

당시 강릉 보통학교 학생이었던 이명의 지사는 강릉 장날인 4월 2일 만세운동에 참여하기 위해 학생들을 모았다. 하지만 한 학생의 밀고로 이명의 지사는 즉각 체포되고 만다.

이명의 지사(맨 왼쪽)를 비롯해 강릉에서 독립 만세운동을 이끌었던 애국 지사들 흉상이 놓여 있다. (사진=유선희 기자)

 

이명의 지사는 만세운동에 참여할 당시 19살로, 생을 마감할 때까지 계속 홀로 생활해 후손을 남기지 않았다. 결국 그의 공로와 업적은 지난 2000년대에 들어서야 조명돼 인정받았다.

강원 동해안 지역 중 가장 먼저 만세운동이 일어난 고성 역시 청년들이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냈다. 고성지역은 3월 17일 만세운동이 처음 시작됐다.

기록에 따르면 당시 17살이었던 이동진 지사는 개성 한영서원에 다니다가 만세운동이 일어나자 친구 함기석과 고향으로 와 독립만세 시위운동을 벌였다.

그는 "지금 전국 각지에서 독립운동을 일으키니 문명교육을 받은 자들은 누구라도 독립을 위해 만세를 부르자"는 선전문을 만들어 간성 보통학교 4학년 교실 입구 벽에 붙였다. 선전문으로 모인 학생만 150여 명이다.

강릉 3·1 독립만세운동 기념탑. (사진=유선희 기자)

 

농민들과 청년들은 만세운동 이후에도 신간회 등 활동을 하며 꾸준히 독립운동을 이어나갔다.

독립을 위해 애쓴 이들을 조명하는 일을 10년 넘게 해온 광복회 강원지부 영동북부연합회 최근중 지회장은 "독립운동에 참여했지만 아직도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이들이 많다"며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은 만큼 학자와 전문가 등과 함께 더 전문적으로 발굴에 나설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어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해 노력한 이들을 발굴하고 조명하는 일은 후손들을 위해 반드시 해야 할 일"이라며 "국가보훈처와 지자체에서 좀 더 관심을 두고 예산을 지원해준다면 발굴작업에 많은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다"고 기대했다.

글 싣는 순서
※1919년 3월부터 전국 각지에서 들끓은 기미 독립 만세운동이 100주년을 맞았다. 강원영동CBS는 지역에서 나라를 되찾기 위해 노력했음에도 여전히 저평가되거나 조명받지 못한 이들의 활동을 재조명하고 임시정부 수립의 의미를 되새기기 위한 연속 기획을 마련했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체포자 석방하라"…일본 경찰서장에 맞선 함홍기 열사
② 개성에서 숨겨온 독립선언서, 행동하는 여성운동가 조화벽 지사
③'100년이 지나도 인정 못받아'…양양만세 주도했던 '이석범' 선생
④ '농민'과 '청년'이 함께해서 더 불타오른 지역 만세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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