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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미 아픈 역사 모두 품은 베트남…'평화의 성지'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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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와 같이 식민지배, 분단의 아픔 겪고 20년 베트남전쟁 후 통일 이뤄
베트남전쟁은 미국의 '오해와 무지'에서 비롯됐다는 역사학자들의 해석
20년 전쟁 트라우마 극복하고 최근에는 미국, 한국과 경제적 교류 강화
북한과도 오랜 동맹관계, '도이머이' 정책으로 경제개방 성공한 베트남 평화의 성지 되나

26일 북미정상회담차 베트남 하노이에 온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하노이 북한 대사관을 방문하며 교통이 통제되자 북한대사관 주변 도로에서 오토바이가 인도까지 올라오는 등 극심한 정체를 보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확대이미지

 

2차 북미 정상회담의 개최지로 베트남에 세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는 가운데 베트남의 근현대사가 재조명되고 있다.

베트남은 한반도 역사와 비슷한 듯 다른 길을 걸어왔다. 한반도가 일본에 식민지배를 받고 있을 때 베트남은 프랑스의 식민지였다. 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이 패망하면서 베트남과 한반도는 해방됐지만 곧바로 이념으로 나뉘어 분단의 아픔을 겪는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분단된 독일, 한국, 베트남 중 베트남은 1975년 가장 빨리 분단을 끝내고 통일에 이르렀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무려 20년에 걸쳐 미국과의 전쟁을 치러야 했다.

미국은 20년간 베트남전쟁을 통해 중국을 견제하면서 동남아시아에서의 공산주의 확산을 막으려 했다.

하지만 이는 베트남과 중국 관계에 대한 오해와 무지 때문에 빚어진 소모적인 전쟁이었다고 역사학자들은 분석한다. 베트남은 동남아시아에의 중심 국가로서 때로는 중국과 주도권을 놓고 경쟁했던 길항관계였다. 이런 베트남과 중국의 미묘한 관계를 모르고 동남아시아의 공산화를 막기 위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양국은 전쟁을 지속했다.

이처럼 '무지와 오해'에서 비롯된 베트남전쟁은 미국의 패전과 베트남의 통일로 끝났고, 엄청난 트라우마를 남겼지만 종전후 베트남의 역사는 다시 힘찬 패달을 밟는다.

베트남은 1986년 중국의 개혁개방 정책과 유사한 '도이머이 정책'을 실시하며 빠른 속도로 경제성장의 문을 열어 젖혔다. 전쟁 종식 20년만인 1995년 미국과도 수교를 맺게 된다. 베트남의 '도이머이' 정책'은 북한에서도 본 뜰 만한 경제개방 정책이다.

아픈 전쟁을 거치고 눈부친 경제발전을 이루고 있는 베트남은 여전히 유일한 분단국가로 남아있는 한반도 평화를 위해 역사적인 장소를 제공하게 됐다.

현재 베트남은 미국, 한국, 북한과 어느정도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과거의 적들이 친구가 됐다"는 쩐다이꽝 전 베트남 주석의 말처럼 미국과는 긴밀한 관계를 유지중이다.

2016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베트남을 방문할 대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무기 수출 금지 조처를 해제하기도 했다. 오바마 대통령이 하노이에서 서민들이 자주 찾는 쌀국수 가게에서 분짜에 맥주를 마시는 장면은 전세계에 강렬한 이미지를 남겼다.

한국은 베트남전쟁 기간에 31만명이 넘는 군인을 파병하고 5천여명의 베트남 양민을 학살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전쟁 이후 한국의 투자를 적극 받아들이면서 우호적인 관계로 거듭났다. 최근에는 박항서 축구감독의 활약으로 한국에 대한 이미지는 더욱 좋아졌다.

북한과 베트남은 원래부터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호찌민과 김일성의 비슷한 성향 속에 양국은 오래 동맹관계를 유지했다. 북한은 베트남 전쟁에서도 간접적으로 북베트남을 도왔다. 90년대 들어서 베트남의 캄보디아 점령으로 양국 관계가 소원해졌지만, 여전히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가까운 동맹국이다.

베트남의 기구하고 복잡한 역사 때문에 미국과 북한의 두 정상이 이 나라에서 만남을 갖는다는 것 자체가 상징적인 의미를 띈다. 식민지 아픔과 분단, 미국과의 전쟁, 통일, 경제발전이라는 격변의 역사를 써온 베트남에서 한반도 평화 시대를 열 수 있을지 온 세계가 집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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