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의 운명을 짊어진 세터들. (왼쪽부터) 대한항공 한선수, 우리카드 노재욱, 현대캐피탈 이승원. (사진=한국배구연맹 제공)
V-리그가 마지막 6라운드에 접어들면서 선두 싸움이 더욱 치열해졌다. 매 경기 결과에 따라 달라지는 선두 자리. 남자부 선두권을 달리고 있는 대한항공, 우리카드, 현대캐피탈의 운명은 사실상 세터의 경기 운영에 달렸다.
현재 남자부 선두 경쟁을 펼치고 있는 대한항공과 우리카드, 현대캐피탈이 나란히 31경기를 소화한 가운데 대한항공이 승점 62(21승 10패)로 1위에 올라있다. 이어 우리카드가 승점 60(19승 12패)으로 2위, 승점 59(22승 9패)의 현대캐피탈이 3위다.
대한항공은 18일 현대캐피탈에 셧아웃 승리를 챙기면서 4연승으로 3위에서 단숨에 단독 1위로 올라섰다.
세터의 기량에서 승부가 갈렸다. 현대캐피탈 최태웅 감독은 지난 14일 OK저축은행전을 기점으로 '스피드배구'를 선언했다. 빠른 플레이를 선호하는 세터 이승원의 장점을 살려보겠다는 계산이었다.
그러나 대한항공과의 경기에서 이승원은 최 감독의 기대에 전혀 부응하지 못했다. 모든 훈련을 이승원에게 초점을 맞춰 진행했지만 코트에서 보여준 기량은 실망스러웠다.
'배구는 세터 놀음'이라는 말이 있듯이 세터가 차지하는 비중이 적잖다. 세터는 팀을 살릴 수도, 죽일 수도 있을 만큼 중요한 포지션이다. 팀의 중심을 잡아줘야 할 선수가 흔들리니 승리는 기대하기 힘들었다.
최 감독도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지난 5년 동안 단 한번도 이런 경기가 없었다. 선수들이 상대의 기에 눌려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린 선수들이 이런 부분을 극복하기엔 경험이 부족했다"라고 밝혔다.
세터진에 대해서는 "이승원과 이원중 모두 자신감이 떨어진 플레이를 하는 것이 우리 팀의 가장 큰 문제점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반면 대한항공은 세터 한선수의 활약이 빛났다. 상대 빈틈을 노린 서브는 물론 선수들의 컨디션을 고려한 적절한 분배로 팀 공격력을 극대화했다.
박기원 감독도 만족감을 드러낸 플레이다. 그는 "고집도 있고 운영도 좋았다. 특히 운영적인 부분은 이미 검증된 선수다"라며 "한선수의 장점이 공격수의 컨디션을 알고 공을 분배하는 것"이라고 칭찬했다.
다만 고민은 있다. 한선수의 체력이다. 박 감독은 "한선수의 체력이 거의 한계선에 도달했다. 쉬게 해줘야 하는 데 그럴 형편이 아니다. 6라운드 마지막까지 버텨줘야 해서 감독으로서 안타깝다"고 전했다.
걱정스러운 시선에도 한선수는 베테랑다운 모습을 보였다. 그는 "선수들 모두가 힘든 상황이다. 뒤처지지 않도록 최대한 몸 관리를 잘해야 한다"며 "즐거운 마음으로 뛰어야 힘든 것도 없어진다. 공 하나에 최선을 다한다는 마음으로 임하고 있다. 쓰러질 때까지 뛰는 것이 선수라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우리카드가 선두 경쟁에 뛰어들 수 있었던 것도 세터 노재욱의 합류 덕분이다. 4연패로 리그를 불안하게 시작한 우리카드는 날개 공격수 최홍석을 한국전력에 내주고 세터 노재욱을 데려오는 트레이드가 신의 한수가 됐다.
아가메즈가 고군분투하던 우리카드는 노재욱의 가세와 함께 나경복, 한성정, 황경민 등도 살아나면서 강팀으로 거듭났다. 고질적인 허리 통증이라는 큰 리스크를 안고 있지만 현재까지 노재욱이 보여준 퍼포먼스는 기대 이상이다. 세터가 팀 전체 분위기를 바꿀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좋은 예다.
우리카드는 에이스 아가메즈가 부상으로 이탈해 전력 손실이 우려되는 상황이라 노재욱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졌다.
막바지를 향해 달리고 있는 V-리그. 세터의 움직임 하나하나에 더욱 관심이 쏠리고 있는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