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연합뉴스)
1500조원대 가계부채 탓에 대출규제 정책이 지속 강화되면서 취약차주들에게 대출문턱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금융소외 계층에 대해 실효적 대안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19일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에 따르면 지난해 9월말 현재 가계신용(대출+외상) 규모는 1514조3769억원으로 가계대출 규제가 본격화된 2016년의 연말(1342조5268억원)보다 12.44% 늘었다. 핵심 규제 대상인 은행의 가계대출 증가율도 12.71%로 비슷했다.
반면 비은행 가계대출 증가율은 업권마다 제각각이긴 하나 저축은행(23.66%), 기타금융중개사(증권사·대부사업자 등 21.41%), 여신전문사(카드사 등 16.69%)에서 은행보다 높았다. "은행 대출문턱이 높아지면서 이자를 더 물더라도 간편한 제2금융권으로 대출수요가 이동한 것"(금융권 관계자)이다.
가계부채 억제 정책은 박근혜정권 때인 2016년 집단대출 억제 등을 골자로 하는 8·25 가계부채 관리방안을 시작으로 본격화됐다. '빚내서 집 사라'던 초이노믹스 기조가 전환된 시점이다. 정권교체 뒤에도 지난해말까지 신DTI(총부채상환비율),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규제 등으로 강화됐다.
가계부채 억제 정책은 대출규모가 가장 큰 은행부터 차례로 적용됐는데, 이에 따라 대출수요가 이동하면서 풍선효과도 나타났다. P2P 대출업계 대출잔액은 2016년말 3118억원에서 지난해말 1조748억원으로 245%나 급증했다. 수수료 인하 정책으로 타격을 입은 카드업계는 현금서비스·카드론 대출 증가 덕에 영업이익 면에서 2017년과 비슷한 기록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 와중에 향후 제2금융권마저 대출 규제가 강화된다. 금융당국은 지난해 10월 은행권부터 공식화된 DSR 규제를 올해 상호금융사·보험사·저축은행·여신금융사 등에도 적용한다는 계획이다. 비은행 금융의 대출문턱이 높아질 수밖에 없고, 저신용·저소득 취약차주들의 대출수요도 충족되기 어려울 전망이다.
한국은행은 199개 금융사 여신책임자 설문을 거쳐 "저축은행·카드회사·상호금융·생명보험사 등 비은행 금융기관의 대출태도는 모든 업권에서 (대출심사가) 강화될 전망"이라고 밝혔다.
또다른 대출공급원이던 등록대부업체들도 취약차주들의 피난처가 되기 어려워보인다. 대부금융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법정 최고금리 인하(연 24%) 정책 뒤 상당수 업체가 사업 축소나 철수를 고민 중이다. 협회 관계자는 "24% 금리로는 1% 마진도 어렵다는 게 업체들 얘기다. 기존 고객 추가 대출이나 만기연장 정도만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저신용자에게 불리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서병호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가계부채 점검 및 시사점' 보고서에서 "지난해말 소득 1분위(하위 20%) 차주의 대출잔액이 전년동기 대비 14.0% 감소하면서 취약차주들이 제도권 금융회사로부터 외면받는 금융소외 문제가 생긴 것으로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금융소외에 직면한 취약차주들의 선택은 '불법 사금융'(미등록대부업)이 될 가능성이 있다. 사단법인 서민금융연구원의 최근 설문조사에 따르면 최근 3년간 대부업체에서 대출을 거절당한 사람 중 14.9%가 사금융으로 자금을 조달했다고 답했다.
서민금융연구원은 지난해 한해동안 대부거절에 따른 사금융 이동자 수는 45만~65만명, 사금융 이용 규모는 5조7000억~7조2000억원으로 추산했다.
불법 사금융 이용은 과도한 이자 부담이나 불법 채권추심 등의 위험을 안고 있다. 대부금융협회가 지난해 한해 동안 사법당국 의뢰와 소비자 신고를 통해 접수한 1762건의 사금융 거래를 분석한 결과 연환산 평균이자율은 353%에 달했다.
저축은행·상호금융 등 서민금융회사의 담보여신 관행 해소, 미소금융·햇살론 등 정책서민금융 상품의 수요자 중심 제도개선 등 금융소외 계층에 대한 금융포용이 강화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조성목 서민금융연구원장은 "대부업체에서조차 대출이 거절돼 불법 사금융으로 밀려나는 저신용자 수가 늘어나고 있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며 "개인 맞춤형 시스템 구축, 불법사채 채무자 대리인 제도 활성화 등으로 재기의 발판을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