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과 서영해(오른쪽)가 함께 한 모습. (사진=대한민국임시정부 자료/연합뉴스)
1920∼1940년대 프랑스에서 활약하며 유럽 열강들을 상대로 일제 식민통치의 부당함을 알린 독립운동가 서영해(徐嶺海·1902∼1949 실종)에 대한 프랑스 경찰의 사찰 보고서가 처음으로 확인됐다.
최근 들어 프랑스에서의 독립운동 행적이 활발히 재조명되고 있는 서영해의 국제적 활약상과 인적 네트워크를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희귀사료다.
재불 독립운동사학자 이장규씨(파리7대 한국학 박사과정)와 파리 7대 마리오랑주 리베라산 교수(한불학회 '리베르타스' 회장)는 최근 파리 근교의 프랑스경찰문서보관소에서 1936년 작성된 경찰의 서영해 사찰 문건을 찾았다고 17일(현지시간) 연합뉴스에 밝혔다.
파리의 한 경찰서장 명의로 1936년 11월 23일 작성돼 프랑스 내무부 산하 정보국장과 경찰청장에게 송부된 1장짜리 보고서다.
파란 잉크로 선명히 타이핑된 이 문서에는 서영해의 출생 사항(1904년 부산 출신의 독신 한국인), 프랑스 입국 시점(1920년 12월 13일), 프랑스 대학에서 수학한 내용(언론학 학위 취득), 파리에서의 언론·정치활동 등이 상세히 기술돼 있다.
특히, 서영해가 1928∼1929년 잡지 '유럽'(L'Europe)과 문학잡지 '세계'(Monde)와 협력했다고 언급한 것과 '반(反)파쇼 반전 투쟁위원회'의 일원으로 활동한 대목이 눈길을 끈다.
서영해의 반파쇼반전투쟁위원회 참여와 프랑스에서 함께 일한 언론사가 어디였는지 등은 그동안 제대로 규명되지 못했던 사실이다.
문건에 언급된 반파쇼반전투쟁위원회는 프랑스 작가 앙리 바르뷔스가 설립해 1933∼1939년 활동한 진보성향 지식인들의 단체를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 단체는 스페인의 독재자 프랑코가 일으킨 내전에서 인민전선 측을 지원하고 당시 유럽을 강타한 나치즘 등 파시스트 권력에 대항했다.
실제로 서영해는 이후 로맹 롤랑 등 프랑스의 반전평화주의자들과 함께 스페인에서 열린 국제작가회의에 참석한 바 있다.
국립 프랑스경찰문서보관소 소장자료(사진=파리 7대 이장규(한국학 박사과정) 제공/연합뉴스)
경찰이 보고서에서 "정치적 관점에서 주목할만한 다른 것은 없었고, 프랑스 공화국에 대한 태도도 여전히 괜찮다"고 한 것은 서영해가 프랑스와 유럽에서 펼친 독립운동의 국제·평화적 성격을 드러내는 대목으로 평가된다.
이장규 씨는 "서영해는 이 무렵 신문에 많은 글을 기고했는데 그때마다 프랑스의 자유정신에 의거해 프랑스인들에게 정의와 양심을 촉구했다"면서 "경찰 보고서도 그런 점을 제대로 짚은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서영해가 당시 지식인들이 유럽의 파시즘 광풍에 맞서 사상투쟁을 펼친 터전인 '유럽'과 '세계' 등의 잡지에 관여한 것도 이 문건을 통해 새롭게 드러난 사실.
'유럽'은 프랑스의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인 로맹 롤랑이 1923년 창간해 루이 아라공 등 진보지성인들이 참여한 잡지다.
서영해는 생전에 롤랑의 작품들을 탐독했고 현재 국립중앙도서관이 소장한 '영해문고'에는 그가 프랑스에서 즐겨 읽은 롤랑의 작품들이 다수 남아있다. 이런 배경에는 그가 롤랑이 창간한 '유럽'에서 일한 이력도 어느 정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서영해가 참여했다는 또 다른 잡지 '몽드'는 1928년 프랑스 작가 앙리 바르뷔스가 창간한 국제정세·문화 주간지로, 아인슈타인과 고리키, 아라공, 피카소, 미로 등 내로라하는 지식인과 예술가들이 참여했다.
이 두 잡지와 서영해가 함께 일했다는 사실은 세계평화를 고민하는 당대 유럽의 지식인들과 그가 상당히 밀접히 교류한 정황을 짐작하게 한다.
그런데 파리의 한국인 독립운동가 서영해는 왜 프랑스 경찰의 감시를 받게 된 것일까.
그가 1929년 7월 파리의 제2회 반제국주의세계대회, 1936년 브뤼셀 만국평화대회 등에 참석해 활발히 반식민지 운동을 한 것이 권력기관의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인도차이나 등 세계 곳곳에 광대한 식민지를 두고 있던 프랑스는 자국에서 활동하는 식민지 독립투사들의 활동을 예의주시했다.
실제로 1920년대 파리에서 활동한 베트남의 호찌민(胡志明·1890∼1969)도 경찰의 삼엄한 감시를 받았고, 그가 김규식 등 대한민국 임시정부 파리위원부 인사들과 교류한 사실이 프랑스 경찰 문건으로 기록된 것이 최근 이장규 씨에 의해 발견돼 학계의 주목을 받은 바 있다.
서영해가 1929년 파리서 펴낸 '어느 한국인의 삶' (사진=국민대 장석흥 교수 제공/연합뉴스)
국내 학계는 프랑스 경찰이 한국의 독립투사 서영해를 감시해 상부에 보고한 이 문건의 사료적 가치에 주목하고 있다.
서영해의 삶을 연구해온 국민대 장석흥 교수(독립운동사)는 "서영해가 임시정부에 보낸 문서를 보면 그가 프랑스 언론사에서 일하며 생활비를 벌고 프랑스인 동지들과 교류하며 독립운동을 한 사실이 기록돼있는데 이번에 발견된 프랑스 경찰 문서는 이런 내용을 구체적으로 입증할만한 자료다. 우리 독립운동사의 지평을 넓힐 만하다"고 평가했다.
서영해는 유럽에서의 독립운동 공적을 인정받아 1995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된 독립지사다.
부산에서 17세의 나이로 3·1운동에 참여한 뒤 중국 상하이로 망명했다가 프랑스로 건너가 파리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프랑스 통신원으로 활약했다.
1929년에는 파리에서 언론·출판사인 '고려통신사'를 설립하고 자신이 프랑스어로 쓴 역사소설 '어느 한국인의 삶'을 출판했다.
가상의 인물인 한국의 혁명가 '박선초'를 주인공으로 설정해 한국을 소개하고 독립운동을 알린 프랑스에서 이 책은 당시 한해에 5쇄를 인쇄할 만큼 관심을 불러일으켰지만, 국내 학계의 무관심 속에 한국어로 90년 동안이나 번역되지 않고 있었다.
그러다가 최근 한·불 한국학자들의 재조명 노력 끝에 재불동포 김성혜 씨의 번역으로 국내에 출간됐다.
서영해는 임시정부의 초대 주불대표를 지내고 1947년 귀국해 해방정국의 극도의 혼란을 겪던 정치판과 거리를 둔 채 문화부문에 힘을 쏟다가 1949년 상하이에서 실종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