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 샘 컴퍼니 제공
흔히들 "운명은 개척하는 것"이라고 말하지만 과거를 돌이켜보면 예기치 않은 방향으로 운명이 나를 끌고 간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운명이 이미 정해진 것이라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고, 무엇을 할 수 있는 걸까?
배우 황정민, 서재형 연출의 연극 <오이디푸스>는 고전을 통해 우리에게 '운명'에 관한 근원적인 물음을 던졌다.
흔히 우리에게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로 알려진 그리스 신화의 비극적인 인물 오이디푸스는 '운명'에 맞서야 하는 인간의 고뇌를 가장 잘 대변하는 캐릭터이다.
태어나면서부터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한다는 최악의 신탁을 받고 태어난 오이디푸스는 이를 벗어나려 몸부림을 치지만 결국에는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을 깨닫는다.
서재형 연출은 이번 연극을 통해 오이디푸스의 비극 자체 보다는 그 운명에 맞서싸우고, 운명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고뇌의 과정에 초점을 맞췄다.
사진 = 샘컴퍼니 제공
배우 황정민에게는 인간 내면의 불안함을 깨우는 특유의 느낌이 있다. 영화 속에서 황정민은 악역이건 정의의 사도이건 간에 일희일비하는 인간의 나약한 본모습, 고뇌하고 방황하는 내면을 날 것 그대로 표현한다.
이번 작품에서도 황정민은 자신 속 불안함을 일깨워 벗어나려고 할수록 비극의 소용돌이에 빠져드는 오이디푸스의 고뇌를 생생하게 연기했다.
지난해 연극 <리처드 3세="">에서 환상의 호흡을 선보였던 황정민 배우-서재형 연출의 궁합은 이번에도 맞아떨어졌다.
서재형 연출은 크지 않은 무대였지만 깊이감을 충분히 활용하면서 무대 입체감을 살리고 관객의 몰입도를 높였다. 오이디푸스가 신탁을 받는 과정에서 까마귀 떼가 그를 둘러 싸면서 운명을 상기시키는 장면은 압권이다. 서재형-황정민표 고전 연극이 하나의 소장르처럼 느껴질 정도로 묵직한 느낌을 표출했다.
원캐스트로 진행된 이번 연극에서는 황정민 뿐 아니라 나머지 배우들의 연기에 빈틈이 없었다.
배우 남명렬(코린토스 사자 역)은 모친상을 당한 중에도 무대에 올라 열연을 펼쳤고, 배해선(이오카스테 역) 박은석(코러스장 역) 정은혜(테레시아스 역) 최수형(크레온 역) 등이 황정민의 탁한 목소리의 한계를 보완하며 객석을 꽉 채웠다.
어머니이자 아내의 죽음 뒤 괴로움에 자신의 눈을 찌른 오이디푸스는 다시 부은 발을 보며 묻는다. "내 발아 어디로 가야하지".
더듬거리며 관객 속으로 걸어들어가는 오이디푸스의 마지막 뒷모습은 운명의 가혹함에도 불구하고 인생 속으로 발걸음을 다시 내딛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비극적인 스토리이지만 비극으로만 느껴지지는 않는 이유이다. 리처드>오이디푸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