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제공)
"사람들이 돈봉투를 너무 바라네요. 품안에 있는 볼펜을 꺼내지도 못할 정돕니다. 메모를 하려고 손을 양복 안주머니에 넣었다가 볼펜만 꺼내면 상대방이 너무 서운해 하는 것을 느낍니다."제 26대 중소기업중앙회장 선거에 출마한 한 후보가 전하는 중기중앙회장 선거 분위기다.
이 후보는 돈을 받는 사람들도 문제지만 돈을 주는 쪽도 문제는 심각하다고 털어놨다.
"최근에는 돈봉투 단위가 더 커졌다고 합니다. 돈을 적게 푸니까 걸린다고 생각해 돈을 더 뿌리는 겁니다. 몇십억원이 풀렸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어요."
실제로 금품 등을 살포했다가 적발돼 검경의 수사를 받고 있는 사례도 잇따르고 있다. 중기중앙회장 선거를 위탁관리하고 있는 서울시선거관리위원회는 최근 후보 A씨를 위해 기자에게 금품을 제공한 사례를 적발해 검찰에 고발했다.
A 후보측은 또 지난해에도 금품을 살포한 사례가 적발돼 경찰의 수사를 받고 있고 지난 연말에는 허위문자 발송 혐의로 역시 검찰에 고발된 상태이다.
모두 특정 후보의 사례만 적발됐지만 다른 후보들도 금품을 살포한다는 소문이 중소기업계에 파다하다.
중기중앙회장 선거가 이번만 혼탁한 것은 아니다. 지난번 회장 선거도 금품살포, 향응 등으로 얼룩졌다. 현 박성택 회장은 선거 과정에서 향응 등을 제공한 배임혐의가 인정돼 1심에서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의 유죄 판결을 받기도 했다. 당시 다른 후보 역시 금품을 제공한 것으로 전해졌지만 탈락하는 바람에 '사건화'는 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처럼 중기중앙회장 선거가 국회의원 등 공직선거에 비해 혼탁한 것은 일단 제도의 미비도 한몫을 하고 있다.
김기순 중기중앙회 선관위원장은 "예비 후보 등록 제도도 없는데다 선거운동 기간마저 20일로 짧은 반면 선거 대상 지역은 전국이어서 자신을 알릴 기회가 많지 않다보니 이런 혼탁양상이 생긴다"고 분석했다.
김 위원장은 "또한 공직선거 제도처럼 선거운동원 등록제도가 없다 보니 후보측 사람이 금품을 살포하더라도 후보가 책임을 지지 않는 맹점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중기중앙회장 선거도 공직선거처럼 각 후보가 선거운동원을 등록하고 후보자와 등록선거원이 아니면 선거운동을 하지 못하게 하는 한편 이들이 금품살포 등 탈법 행위를 저지르다 적발되면 후보에게 책임을 지우는 방향으로 제도개선을 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아울러 선거법 위반으로 기소될 경우 공직선거법처럼 재판도 3심까지 1년 안에 끝낼 수 있도록 해야 실효적인 처벌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소기업계가 '표'를 매개로 금품을 주고받는 구태에서 벗어나는게 우선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중기중앙회장 선거가 각 지역별, 업종별 전국 조합 이사장 600여명을 선거인단으로 하는 제한된 선거이다 보니 '돈으로 표를 움직일 수 있다'는 후보자측의 인식이 팽배해 있는데다 유권자들도 '맨입으로 표를 구하지 말라'는 구태가 뿌리깊다.
김 선관위원장은 "아직도 중기중앙회장 선거에 '고무신 선거' 풍토가 남아 있는게 사실"이라며 "금품 살포 혐의로 적발된 후보측도 '김영란법 위반 정도 아니냐'며 안이하게 생각하더라"고 전했다.
김 위원장은 "민도(民度)도가 올라가면 중기중앙회장 선거 양상이 나아지겠지만 민도가 당장 올라가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고 털어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