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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한덕 과로사… 명절, 응급센터엔 '지옥문'이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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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2-08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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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급의료 개척자' 윤한덕을 보내며
낮엔 응급의료 총괄, 밤엔 예산 설득
집에 가라 권유해도.."아직은 멀었다"
숭고한 죽음, 현장 개선으로 이어지길


■ 방송 :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FM 98.1 (07:30~09:00)
■ 진행 : 김현정 앵커
■ 대담 : 유인술(충남대 응급의학과 교수)

 


설 연휴 기간이었죠. 지난 4일 국립중앙의료원 중앙응급의료센터의 윤한덕 센터장이 병원 의자에 앉아서 숨진 채 발견이 됐습니다. 과로사로 추정이 되는데요. 윤 센터장.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분은 아닙니다마는 우리나라 응급 의료 체계를 잡는 데 그야말로 길잡이 역할을 해 온 참의사였습니다.

동료였던 이국종 교수는 "응급 의료계의 영웅이자 버팀목. 어깻죽지가 떨어져 나간 것 같은 느낌이다." 이런 추모 메시지를 남기기도 했습니다. 윤한덕 센터장의 죽음을 통해서 우리나라 응급 의료계의 현실을 한번 짚어봐야 될 것 같아요. 윤 센터장의 25년지기이자 선배세요. 충남대 응급의학과 유인술 교수 만나보죠. 유인술 교수님, 나와 계세요?

◆ 유인술> 안녕하세요.

◇ 김현정> 먼저 깊은 애도의 마음을 전하면서 얘기를 시작해 보겠습니다.

◆ 유인술> 뭐라 형언할 길이 없습니다.

◇ 김현정> 25년 된 사이시라고요?

◆ 유인술> 네. 우리 윤한덕 선생이 처음에 응급의학과 1년차 전공의를 시작을 할 때 저는 다른 병원에서 했지만 그때 제가 4년차였습니다.

◇ 김현정> 그러니까 윤한덕 센터장 레지던트 1년차일 때 4년차 선배.

◆ 유인술> 저는 4년차였습니다. 그래서 그때부터 인연이 돼서 지금까지 쭉 같이 일을 해 오고 개인적으로는 형, 동생으로 이렇게 지내온 그런 친구입니다.

◇ 김현정> 향년 50세밖에 안 되셨어요. 너무 이른 나이에.

◆ 유인술> 네. 안타깝습니다.

◇ 김현정> 평소 건강한 분이셨다면서요?

◆ 유인술> 제가 알기로는 특별히 위장약 먹는 거 외에는 어디 아프다. 이런 건 없었고 항시 피곤에 찌들어 있는 그런 모습은 봤었고. 제가 보름 전에 만났었고 그런 일이 있기 한 며칠 전에 전화 통화도 서로 하고 그랬었거든요.

◇ 김현정> 그러셨어요?

◆ 유인술> 네, 전혀 이런 일이 생길 거라고는 예상을 하지 못했던 그런 상황입니다.

◇ 김현정> 볼 때마다 늘 피곤에 찌들어 있었습니까?

◆ 유인술> 네. 한 달에 집에 한 서너 번 갈까 말까 하면서 거의 노숙자 침대 같은 그런 좁은 방에서 거기서 먹고 자고 밤새도록 일하고 그러니 맨날 찌들어 있지 않았겠습니까?

◇ 김현정> 그런데 지금 국립중앙의료원의 응급의료센터 센터장이시거든요. 센터장이면 리더잖아요?

◆ 유인술> 네.

◇ 김현정> 그런데도 한 달에 몇 번 집에 가고 나머지는 다 노숙자 침대 같은 데서 웅크리고 자야 되고 그렇습니까, 센터장도?

◆ 유인술> 응급센터장이라는 자리가 중앙응급의료센터는 대한민국 전체의 응급 의료를 총괄하는 그런 컨트롤 타워입니다. 그러다 보니까 누구보다도 책임 의식이나 이런 게 더 강하죠.

그리고 이 친구는 자기가 하는 일에 대해서 굉장히 완벽주의자적인 그런 성격이 좀 있었습니다. 그리고 집에 왔다 갔다 하고 그러면 일에 집중할 수 없고 시간을 뺏긴다. 그래서 센터장실에다 야전 침대 같은 걸 갖다놓고 그렇게 산 지가 한 10년이 넘습니다.

7일 오후 서울 중구 국립중앙의료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국립중앙의료원 고(故) 윤한덕 중앙응급의료센터장 빈소에 조문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4일 오후 6시께 의료원 응급의료센터장 사무실에서 심정지 상태로 발견된 윤 센터장은 응급의료 전용 헬기 도입, 재난·응급의료상황실 운영 등 국내 응급의료체계 구축에 헌신했다. (사진=연합뉴스)

 


◇ 김현정> 그렇군요. 그래서 이번 설 연휴에도 으레 그러려니 하고 가족들이 연락이 안 닿아도 이렇게 있다가 너무 안 닿는 거예요.

◆ 유인술> 10년을 그렇게 살았으니까 가족들은 당연히 그렇게 무슨 바쁜 일이 있겠거니. 더더군다나 명절 때니까. 명절 때는 응급 상황이 많이 생기지 않습니까?

◇ 김현정> 병원 문 닫는 곳은 많은데 응급 환자 발생하면 어디 가야 될지 이런 걸 다 컨트롤 타워 역할을 했던 게 여기 센터였던 거죠?

◆ 유인술> 맞습니다. 그래서 응급 의료하는 사람들은 명절 연휴가 긴 걸 절대 좋아하지를 않습니다.

◇ 김현정> 이해가 되네요.

◆ 유인술> 명절 연휴가 길게 되면 저희들 사이에서는 지옥문이 열린다. 이게 저희들이 하는 그런 얘기입니다.

◇ 김현정> 그런 거군요. 그래서 그날도 설 연휴지만 연락이 닿지 않아도 그러려니 하고 있다가 너무 전화를 안 받으니까 부인이 직접 가셨다가 그 의자에 앉아서 돌아가신 거를 부인이 목격하셨다면서요?

◆ 유인술> 네, 그렇습니다. 집에 안 오는 건 당연한데 전화도 안 되니까 이거 뭔 일 있구나 싶었죠.

◇ 김현정> 세상에...

◆ 유인술> 그래서 부인이 사무실에 가서 보니까 문은 잠겨 있고 그래서 직원들 불러서 문 따고 들어가서 그 상황을 이렇게 발견하게 된 겁니다.

◇ 김현정> 그래서 더 마음이 아픕니다. 으레 그러려니. 그래도 전화 통화는 됐었는데 왜 전화 통화조차 안 되지 하면서 찾아갔다가 현장을 목격을 하고 만.

◆ 유인술> 네, 그렇습니다.

◇ 김현정> 보니까 윤한덕 센터장은 모교 전남대 의대의 응급의학과 첫 전공이었더라고요. 1994년에 처음으로 응급의학과가 생겼는데 거기에 1호 전공의였다면서요.

◆ 유인술> 맞습니다. 지금 전남대 병원에 있는 허탁 선생하고 둘이 같이 1호 전공의로 시작을 했습니다.

◇ 김현정> 그 말은 자원을 해서 들어가셨다는 얘기네요.

◆ 유인술> 94년도만 해도 우리나라에 응급의학과 전문의 제도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내과, 외과, 소아과는 다 전문의 제도가 있었죠. 그런데 응급의학과가 95년도에 전문의 제도가 생겼습니다.

그래서 그 이전에 응급의학과 레지던트 과정을 밟은 사람들은 전문의가 될지 안 될지도 모르면서 본인의 자발적인 의지가 있는 사람들이 응급의학과를 선택을 해서 프레이밍을 받게 된 이런 과정입니다.

◇ 김현정> 그렇게 된 거군요. 그래서 제1호 전공의로 자원을 해서 그렇게 응급의학과 전문의 생활을 시작하신 건데. 2002년에 국립중앙의료원 응급의료센터가 문 열 때부터 합류를 해서 우리나라 응급 의료 체계 구축에 앞장서 왔다. 어떤 역할들을 하신 거예요?

◆ 유인술> 2002년도에 국립의료원에 갈 때는 지금은 현재 보건복지부에 응급의료과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에는 응급의료과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복지부 산하인 국립의료원 근무자들은 전부 공무원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보건사무관으로 들어가서 응급 의료에 대한 전문적인 부분을 맡아서 하게 된 거거든요. 그런 뜻에 의해서 들어가서 현재 우리나라의 지금 응급 의료에 필요한 모든 기반에 우리 윤한덕 선생 손길이 안 닿은 데가 없다고 생각을 하시면 됩니다.

◇ 김현정> 예를 들면 닥터 헬기 도입하고 전국 17개 권역외상센터가 도입된다든지. 지금 우리가 기억하는 것들을 그런 건데 그거 다.

◆ 유인술> 모든 것은 윤한덕 선생 손때가 다 묻어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기존에 다른 언론들의 네디스(NEDIS ·국가응급진료정보망) 라든지 외상센터라든지 닥터 헬기라든지 이런 얘기들은 다 나왔지 않습니까? 그런데 저는 그것보다 윤한덕 센터장의 가장 큰 업적은 그런 일이 전부 가능하게 하려면 결국에 예산이 있어야 됩니다.

◇ 김현정> 돈이 있어야죠. 예산이 있어야죠.

◆ 유인술> 그런데 이 예산이 지금 응급 의료 기금이라는 걸로 해서 응급 의료에 관한 법률에 의해서 조성이 되고 있는데 문제는 5년마다 계속해서 국회에서 연장을 받고 있는 겁니다. 기재부는 자꾸 없애려고 하고 있고.

그래서 국회를 쫓아다니면서 왜 이런 예산이 필요하고 이런 것들을 다 설득하고 해서 응급 의료에 필요한 이런 모든 사업을 할 수 있는 그 기반을 마련한 것. 그것이 저는 제일 큰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 김현정> 다 설득하러 다니면서 예산 따는 작업을 해내는 데 이분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신 거군요.

◆ 유인술> 그렇죠.

◇ 김현정> 그러면 아까 집에도 한 달에 몇 번 못 들어갈 정도로 힘드셨다고 그랬는데 언제 그 응급 의료 컨트롤 타워 역할. 그러니까 환자들 응급실 배치하고 이런 역할은 언제 하시고 돈은 돈 대로 또 어떻게 따러 다니시고 이게 보통 일이 아니셨겠어요.

◆ 유인술> 그렇죠. 대한민국 전체 500개가 넘는 응급 의료 기관하고 또 재난이 생기고 그러면 소방이 출동하고 할 때 의료진도 같이 보내야 되고 하는 이런 모든 것을 총괄하고 그러다 보니까 낮에는 회의나 이런 데 참석하고 국회나 이런 데 쫓아다니면서 또 설득하고 그러고 나머지 해야 될 여러 가지 서류 작업 이런 것들은 밤에 해야 되지 않습니까?

◇ 김현정> 그렇네요.

◆ 유인술> 그러다 보니까 집에 갈 틈이 없고 계속 그 생활이 10년 넘게 계속 반복된 겁니다.

◇ 김현정> 평소에 그렇게 생활을 하면 가족들이 원망은 안 했답니까? 우리 아빠는 왜, 우리 남편은 왜 이렇게 집안은 내팽겨치고 환자들만 돌볼까.

◆ 유인술> 그런데 우리 윤한덕 선생이 워낙 의지가 강하고 그 의지가 강한 그 부분을 가족들이 알고 어떻게 보면 포기한 거죠. 그래서 제가 많이 혼냈습니다. 너는 너 혼자만이 아니다. 그리고 집에서 뭐라고 할 거냐. 너희 애들은 뭐냐. 몇 년 하고 말 거 아니지 않냐. 길게 보고 길게 가야 되지 않냐. 집에 좀 자주 가고 그래라. 그리고 잠도 좀 편안하게 자고 와라. 이런 얘기를 많이 했었거든요.

◇ 김현정> 그럼 뭐라고 답하세요, 그럴 때마다 윤한덕 센터장은?

◆ 유인술> 아직은 멀었다.

◇ 김현정> 멀었다.

◆ 유인술> 할 일이 너무 많습니다. 그러다가 이제 최근에, 작년 말에 센터장이라는 이러한 행정 업무는 좀 내려놓고 이제 하나의 팀장으로서 자기가 응급 의료의 하나의 전문적인 그런 부분에 따로 자기가 연구하고자 하는 그 부분만 좀 해 보겠습니다 해서 국립의료원장한테 12월 말일자로 중앙응급의료센터장 자리를 사직하겠다는 그런 의사도 표현했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 김현정> 12월 말이면 지지난달이요?

◆ 유인술> 네. 제가 제일 안타까운 것도 누군가 그 역할을 할 사람이 있어야 되는데 그 역할을 할 사람이 지금 아무도 없다는 것이 제일 지금 두렵습니다.

◇ 김현정> 무슨 말인지 알겠네요.

◆ 유인술>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 김현정> 생각해 보면 외래는 주 40시간인데 응급실은 168시간 돌아가는 거잖아요. 계속 돌아가는 거잖아요.

◆ 유인술> 40시간을 빼고 나면 나머지 128시간은 오로지 응급실만 돌아가는 겁니다. 그리고 응급실은 공휴일, 휴일, 명절 이런 거 없지 않습니까? 1년 12달 돌아가지 않습니까?

◇ 김현정> 그렇죠. 입원실 제외하면 사실상 계속 환자들을 새로 받는 곳은 응급센터밖에 없다.

◆ 유인술> 의료계가 파업을 해도 응급실은 파업을 못 하고 돌아가지 않습니까?

◇ 김현정> 여러분, 윤한덕 센터장의 죽음을 지금 많이들 애도하고 계시죠? 진정한 의사의 숭고한 죽음이다. 우리가 이렇게 말을 합니다마는 물론 맞는 말입니다. 맞는 말인데 거기서 그쳐서는 안 되고 그렇게 밤낮 없이 가족도 내팽겨치고 자신의 건강도 포기하고 희생해야 한다, 의사들은. 이렇게 결론이 나면 곤란하고요. 가족 내팽겨치지 않고 자신의 건강도 돌보면서 환자도 잘 볼 수 있는 시스템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 이렇게 고민이 좀 흘러갔으면 좋겠습니다.

◆ 유인술> 그게 우리 윤한덕 선생이 바랐던 그런 일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 김현정> 다시 한 번 애도의 마음을 전하고요. 가족들도 잘 위로해 주시고요. 마음 또 힘드신데 이렇게 인터뷰 응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고맙습니다.

국립중앙의료원 중앙의료응급센터의 센터장이십니다. 결국 과로사로 설 명절 기간에 숨을 거둔 고 윤한덕 센터장. 그분의 오랜 지인 충남대학교 유인술 교수였습니다. (속기=한국스마트속기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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