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루킹' 일당과 공모해 댓글 조작을 벌인 혐의로 1심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은 김경수 경남도지사가 지난달 30일 오후 서울중앙지법에서 호송차로 향하고 있다. (사진=박종민 기자)
사법농단 사태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구속된데 이어 최근 1심 법원이 '인터넷 댓글 조작 혐의'를 받고 있는 김경수 경남도지사를 법정구속하자 일각에서는 '음모론'을 제기하며 사법부를 향한 싸늘한 시선을 보내고 있다.
다만 사법부 내부에서는 이같은 '외부 공격'을 걱정하기 보다는 향후 사법농단 재판이 본격화될 경우 발생할 '내부 분열'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크다.
◇ 김경수 법정구속 이후 쏟아지는 사법부 공격이른바 '드루킹 댓글조작 사건'으로 김경수 지사가 법정구속되자, 집권여당은 이를 '정치적 판결'로 프레임을 짜는 모양새다.
즉, 현 정권이 '적폐청산'이라는 이름으로 사법농단 수사에 강한 드라이브를 걸어 양 전 대법원장을 구속하자 양 전 대법원장 시절 비서실 근무를 했던 성창호 부장판사가 김경수 지사에게 실형을 선고했다는 것이다.
실형 선고 직후 김경수 지사가 '재판장이 양승태 대법원장과 특수관계'라고 언급한 것이 도화선 역할을 했지만 이에 대한 비판도 적지 않았다.
한 검찰 고위 관계자는 "김 지사는 앞으로 항소심에서 무죄를 받는게 최대 목표일텐데 굳이 1심에서 법원을 왜 자극했는지 모르겠다"며 "사법농단 수사가 진행되는 요즘 같은 분위기에서 윗선의 영향을 받는 재판이 가능하다는 말이냐"고 반문했다.
법원 관계자도 "합의부에서 좌,우 배석의 의견을 무시하고 재판장 혼자 결론을 내릴 수 있는 시스템이 아니지 않느냐"며 "아무렇지도 않게 이번 판결을 '정치적 판결'이라고 하는 정치권을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같은 지적에도 불구하고 '김경수 법정구속'은 여전히 뜨거운 감자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이하 민변)이 주축인 '양승태 사법농단 공동대응 시국회의'는 "성창호 부장판사는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판사로 재직할 때 형사수석부장에게 영장 관련 비밀을 누설한 정황이 있다"며 "추가로 탄핵소추 대상에 포함할지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김경수 경남도지사에 대한 불구속 재판을 법원에 촉구하는 경남도민 서명운동도 시작됐다.
의견 표명이야 언제, 누구라도 가능하지만 판결을 정면으로 비판하는 이런 '낯선' 분위기 자체가 사법부 신뢰 추락을 단적으로 방증하고 있는 셈이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사진=이한형 기자/자료사진)
◇ '외부 공격'보다 더 두려운 존재는 곧 가시화될 '내부 분열'정작 더 큰 문제는 사법부 내부에 도사리고 있다는 목소리도 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에 대한 기소 이후 사법농단 재판이 본격화되면, 자연스레 법원 내부가 갈라질 것을 우려하는 시각이다.
양 전 대법원장은 지난해 6월 사법농단 의혹이 본격적으로 불거지기 시작하자 성남시 자택 인근 놀이터에서 기자회견을 자처하며 이렇게 얘기했다.
"재판이 잘못됐다고 왜곡 전파되는 것에 법관들은 기가 차는데, (김명수)대법원장이 왜 단호하게 이야기해주지 않느냐고 섭섭하게 생각할 것이다"
실제로 법원 모 고위 관계자는 사법농단 수사가 정점으로 향하던 지난해 말 "양 전 대법원장을 기소한 이후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다"며 "재판이 본격화되면 법원 내부가 둘로 갈라질 수도 있다고들 보고 있다"고 말했다.
올 초 안철상 법원행정처장이 돌연 처장직을 내려놓을 때, 대법원 내부에서는 사법농단 사태 처리와 관련한 심각한 기류 변화가 있었다는 '설(說)'도 흘러나오고 있다.
이같은 우려는 현실로 나타났다. 일단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재판이 무기한 연기됐다. 정식 재판을 앞두고 임 전 차장측 변호인들이 한꺼번에 사임했기 때문이다.
임 전 차장측은 "재판부가 설 연휴 직후 '주 4회 재판'을 하겠다고 했다"며 "이는 피고인의 방어권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법원이 1심 구속기간인 6개월 내에 선고를 내리지 못할 경우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진행해야하는데 여론의 시선이 부담스러웠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이는 임 전 차장측이 현 사법부가 원하는대로 고분고분하게 가지는 않겠다는 뜻으로도 해석될 수 있는 부분이다.
민변이 탄핵 대상 판사 명단을 추가로 발표하는 것을 두고도 '뒷말'이 무성하다. 이에 대해 대법원 관계자는 "민변의 '명단 공개'가 구속력이 없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기정사실인양 유포되고 호도되는 것이 안타깝다"며 "전국법관대표회의도 이 문제를 진지하게 다뤄야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민변의 명단 공개에 사직서로 응대한 판사도 있었다. 민변이 사법행정권 남용 및 재판거래 수사에 연루됐다며 탄핵 소추해야 할 판사 중 한 명으로 지목한 윤성원 신임 인천지법원장이 사직서를 제출한 것이다.
김명수 대법원장에 의해 신임 법원장에 임명된 뒤 4일 만에 사표를 낸 것으로, 법조계에서는 시쳇말로 제대로 '한방'을 먹였다는 얘기가 나온다.
김명수 대법원장(사진=박종민 기자/자료사진)
◇ 김명수發 사법개혁, 사개추위에서 통과될까요즘같은 상황이라면, 김명수호의 사법개혁도 국회 통과과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지난 1월 임시국회는 더불어민주당의 반대로, 2월 임시국회는 자유한국당의 국회 보이콧으로 개회 자체가 불투명하다.
최근 김경수 지사의 법정구속으로 여야의 갈등은 더욱 깊어지는 양상이다.
민주당은 김 지사 판결에 반발해 당내 법제사법위원회와 사개특위 소속 의원들을 한데 모아 '사법농단세력 및 적폐청산 대책위원회'를 꾸렸다.
한국당은 민주당의 반발에 오히려 "삼권분립, 헌법질서를 파괴하고 자유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행태"라고 맹공을 퍼붓고 있다.
물론 당초 사법개혁과 관련해 김명수 사법부가 내놓은 안에 대해서 여야 의원들이 쉬 납득하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전반적으로 기대했던 법원 개혁 방향은 제왕적 대법원장의 권한을 분산하는 것인데 대법원이 법원행정처 대신 신설하는 사법행정회의의 내부 법관 비율을 높이는 방안을 국회에 제출했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렇다해도 최근 김경수 지사 재판으로 사개추위 자체가 열리지 못한다면,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격'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 한발 늦은 김명수 "재판한 법관 공격, 적절치 않아"김명수 대법원장은 지난 1일 "판결 내용에 대한 비판이 도를 넘어서 과도하거나, 재판을 한 법관에 대한 공격으로 나아가는 것은 헌법상 보장된 법관 독립의 원칙과 법치주의 원칙에 반해 적절치 않다"고 말했다.
김경수 지사 재판과 관련한 정치권의 도 넘은 비판에 대해 사법부 수장으로서 일종의 '견제구'를 던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시계를 하루 전으로 돌려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김경수 지사 1심 선고 이튿날인 1월 31일 김명수 대법원장은 하루종일 침묵으로 일관했다. 정작 변호사단체들이 " 특정 법관을 비난하는 것은, 법관의 독립을 침해할 소지가 있다는 점에서 심각한 우려를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고나서 하루 뒤 출근길에 김명수 대법원장은 전날 변호사단체가 했던 얘기를 똑같이 되내었다.
앞서 김명수 대법원장은 취임 일성으로 "법관 독립 침해 시도를 온몸으로 막아내겠다"고 강조했다. 이를 감안할 때 김 대법원장의 이번 입장 표명도 여느때처럼 지극히 소극적이었다는 게 법조계의 중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