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 누가 있어서 이렇게 빨리 가? 같이 좀 살다 가지"
길원옥(92) 할머니는 대문 밖으로 빠져나가는 운구 행렬을 한참 동안 응시했다. 부축하던 사람들이 "추우니까 들어가셔야 한다"고 만류해도 소용없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기둥이자 인권운동가로 활동했던 故김복동 할머니 장례 마지막 날인 1일, 영정사진이 고인이 살던 쉼터를 거쳐갈 때였다.
길 할머니는 지난 2010년 서울 마포구 정대협 쉼터 '평화의 우리집'에서 김 할머니를 맞아 함께 산 지 9년 만에 고인을 떠나보냈다.
이날 오전 영정사진을 마주한 길 할머니는 "왜 이렇게 바빠서 빨리 가셨어. 이렇게 빨리 안 갔어도 됐는데"라며 "먼저 좋은 데 가서 편안하게 계세요. 나도 뒤따라 갈게요"라고 말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고 김복동 할머니의 발인식이 엄수된 1일 오전 서울 마포구 연남동 '평화의 우리집'에서 길원옥 할머니가 김 할머니와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있다. 평화의 우리집은 김 할머니가 생전에 머물던 곳이다. 사진=황진환 기자
영정사진은 김 할머니가 지내던 방에 들러 고인의 사진과 장롱 속 옷가지, 그의 장학금을 받은 재일조선인학교 학생이 보내온 장식품 앞에 머문 뒤 나왔다.
영정사진이 방을 돌아 나오자 길 할머니는 "좀 더 같이 계셨다 가시지"라며 눈을 2차례에 걸쳐 5초, 10초 동안 지그시 감았다.
이틀 전 대구에서 올라온 이용수(92) 할머니는 "잘 가요"라며 "좋은 세상 가서 먼저 간 분들한테 전해주세요. 잘 있다가 왔다고"라고 덧붙였다.
이후 길 할머니는 방으로 돌아갔고, 이 할머니는 영결식에 참여하기 위해 운구 행렬에 합류했다.
지난 28일 별세한 위안부 피해자 고 김복동 할머니의 발인이 1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서 엄수되고 있다. 사진=황진환 기자
운구단은 이날 오전 9시쯤 서울광장에서 노제를 시작해 10시 30분부터 옛 일본대사관 앞 평화로에서 영결식을 열 예정이다.
이후 서울추모공원에서 화장, 다른 위안부 피해자들이 잠든 천안 망향의동산에서 하관식이 치러진다.
앞서 이날 새벽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서는 조용한 흐느낌 속에 헌화와 발인식이 열렸다.
정의기억연대 윤미향 이사장은 김 할머니 관에 '훨훨 날아 평화로운 세상에서 길이길이 행복하소서'라고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