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 한 데 모이는 설날, 고향 땅을 밟지 못하는 유통업계 노동자들이 있다. 설 연휴에도 매장을 지켜야 하기 때문이다.
◇"명절에 가족과 함께, 당연한 말 아냐"11년째 대형마트 수산코너에서 일하는 김모(59)씨는 명절마다 '죄스러운 며느리'가 된다고 한다.
이번 설날 당일에도 아침 10시부터 출근해야 하는 김씨는 시골에 있는 형님들에게 '이번에도 못 내려간다'는 문자를 미리 보냈다.
김씨는 "마트에서 일하고 난 후 형님들에게 못 내려간다고 이야기를 하면 '며느리가 돼서 그런 직장 다니지 마라'는 안 좋은 소리도 들었다"며 "월2회 휴업은 정말 단비 같지만 명절에 가족과 함께 쉰다는 개념 자체는 없다"고 말했다.
서울 시내 면세점 잡화 매장에서 일하는 매니저 지모(39)씨도 명절에 고향을 못 찾은 지 올해로 3년째다.
스케줄표를 짜서 직원들은 순차적으로 명절근무에서 배제했지만, 매장을 총괄 책임져야하는 지씨는 명절과 평일의 구분이 없다.
지씨는 "명절에 사람들이 올만한 곳이 쇼핑몰이긴 하지만 일하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그 하루가 많이 부담스럽다"며 "명절 하루 가족들과 함께하는 게 당연할 말 같아도 우리에겐 쉽지가 않다"고 말했다.
◇의무휴업 사각지대 놓인 노동자들…"명절 최고의 선물은 휴식"
'연중무휴'로 밝혀둔 유통매장의 불빛은 명절에도 일터에 나서는 노동자들의 그림자로 이어진다.
지난해 설날 직후인 2월 19일에는 경기도의 한 복합쇼핑몰에서 일하던 50대 남성이 창고에서 쓰러진 채 발견돼 결국 숨졌다.
명절에도 쉬지 못하며 격무를 호소하다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었는데, 6개월 동안 쉬었던 날은 고작 3일뿐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29일 발표된 한국노동사회연구소의 서비스노동자 삶의 질 조사 결과, 유통업 대형마트 노동자의 직장생활 만족도는 5점 만점에 2.28점이었다.
유통업 평균(2.69점)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노동강도(2.07점) 영역에서 평균 이하의 만족도를 보였다.
마트 노동자의 쉴 권리 보장을 위해 필요한 조치에 응답자의 32.6%는 의무휴업 확대를 꼽았다. △적정인원 충원(25%) △휴게시간 보장·확대 (21.8%) △충분한 휴게공간 확충(19.9%)이 뒤를 이었다.
지난해 대형마트의 월 2회 의무휴업을 늘리고 복합쇼핑몰, 면세점, 아울렛까지 확대 적용하는 내용을 담은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은 결국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해를 넘겼다.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 유동림 간사는 "주말과 명절에 쉴 권리는 모든 대형유통마트 노동자들이 해당되어야 할 문제"라며 "모든 유통매장을 아울러 의무휴업을 강제하는 유통산업발전법이 조속히 통과돼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