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극한직업'에서 마약반 고반장 역을 연기한 배우 류승룡. (사진=CJ엔터테인먼트 제공)
누군가는 그가 어두운 터널을 지나고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어쩌면 아직도 빠져나오지 못했다고 짐작할지도 모른다.
두 번의 천만 영화, 그 이후 5년이 흘렀다. 침체기라고 한다면 그렇다고 명명할 수도 있는 시간이었다. 류승룡이 '타이틀'이나 다름없었던 기대작들이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한 탓이다.
그가 주연급 배우로 발돋움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최종병기 활'과 '내 아내의 모든 것'으로 눈도장을 찍더니 연달아 천만 영화 세 편을 배출해냈다. 신인 시절부터 쌓아 올린 탄탄한 코미디 역량에 악역과 순수한 캐릭터를 넘나들며 연기 세계를 확장시켰다.
지금 돌이켜보면 사실 모든 게 위험한 도전이었다. 그러나 류승룡은 단 한 번도 그렇게 하기를 주저하거나 꺼린 적이 없다. 기꺼이 도전을 받아들여 모험에 뛰어든다. 초심 코미디로 돌아간 '극한직업' 마약반 고반장 캐릭터 역시 그런 류승룡의 마음가짐이 없었더라면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류승룡은 지금 미지수로 가득한 터널을 지나는 중이다. 무엇이 기다리는지 알 수 없지만 설렘과 두근거림으로 새로운 전환점을 향하고 있다. 그 길에는 실패와 성공이 함께 웅크리고 있겠지만 그는 거침없이 나아간다. 과거부터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다음은 류승룡과의 일문일답.
영화 '극한직업' 스틸컷. (사진=CJ엔터테인먼트 제공)
▶ '극한직업' 시나리오의 어떤 지점에 끌려 이 코미디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는지?
- 처음 시놉시스를 봤을 때는 마약, 조폭, 형사 이런 게 내가 지양하는 소재들이었다. 그런데 막상 조합을 해놓으니까 재미있더라. 이게 코미디가 될 수 있겠느냐는 부정적인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는데 읽다 보니까 웃고 있는 거다. 내가 이렇게 웃었으니 풍요롭게 잘 살리면 양질의 코미디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병헌 감독에 대한 신뢰도 있었고.
▶ 마치 '루저' 같아 보이지만 알고 보면 필살기를 숨긴 캐릭터다. 사실 '극한직업'에 등장하는 5인 형사 캐릭터들이 모두 그렇다. 이런 설정은 마음에 들었나.- '달빛 아래 좀비처럼 일어난다'는 지문이 기억난다. 마약반 캐릭터들이 가진 반전은 말썽꾸러기 같은데 알고 보면 필살기들이 모두 있다는 거다. 누구나 묵묵히 자기 자리에서 감내하면서 일하다보면 언젠가 통쾌하게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게 좋았다. 단순히 경찰이 아니라 소상공인 대표로 악을 응징하는 것도 후련하지 않았나 싶다.
▶ 코미디라는 장르가 마냥 즐겁고 쉽지만은 않다. 현장에서 즐거운 분위기가 관객들의 웃음으로 연결되느냐가 굉장히 중요한 포인트인데. 배우들만 웃고 끝나는 코미디도 있지 않나.- 우리끼리 속지 말자고 다짐했었다. 시나리오의 견고함을 지켜내고자 했다. 조금만 재료가 달라져도 변질되는 요리처럼 코미디가 그렇다. 이병헌 감독의 코미디는 대사를 빨리 치고 타이밍 맞게 꺾어야 해서 결코 쉽지 않다. 그런데 그게 잘 살았을 때 터지는 타율이 굉장히 크더라. 배우들 모두 많이 고민하고 힘들어했다. 나는 장진 감독님과 그런 비슷한 코미디를 오래 해와서 생경하지는 않았다. 애드리브는 거의 숨쉬듯이 있었다.
▶ 영화 내내 마약반 5명의 궁합이 정말 잘 맞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로 주고 받는 대사나 호흡들이 잘 맞지 않으면 안되는 영화이긴 하고 그만큼 배우들이 끈끈한 역량을 발휘해야 했을 것 같다.- 크랭크업이 다가오면서 이 친구들과 작업할 날이 얼마 안 남았다고 생각하니까 정말 아쉬웠다. 실제로 이렇게 모인 게 큰 선물 같다. 마약반 뿐만 아니라 오랜만에 보는 반가운 선후배들도 너무 많았고 마약 조직범들은 정말 그 짧은 장면을 위해 몇개월에 걸쳐 몸을 만들었다. 보디가드 선희 역의 장진희도 고생을 많이 했다. 전혀 안 그럴 것 같지만 몸치라서 하루도 빼먹지 않고 액션 스쿨을 다녔다. 마치 웃음협동조합처럼 이 분들이 각자 몫을 촘촘하게 해줬기 때문에 영화가 완성됐다.
영화 '극한직업'에서 마약반 고반장 역을 연기한 배우 류승룡. (사진=CJ엔터테인먼트 제공)
▶ 인터뷰를 보면 이하늬에 대해 칭찬을 많이 했더라. 마약반 5인방으로 함께 했던 다른 배우들에 대해서도 함께 작업하며 느낀 소감 부탁한다.
- 진선규는 원래 몸을 잘 쓰는 걸로 유명하고 대학로에서도 코미디로 정평 난 배우다. 사랑스러운 사고뭉치 캐릭터를 너무 잘 하더라. 평상시에도 너무 솔직하고 착해서 동생들이 걱정하는 그런 배우다. 이동휘는 위트와 재치가 넘치는 배우이면서도 대사 하나를 살리기 위해 하루종일 탐구한다. 공명은 근성이 있다. 처음에는 경직돼 있었는데 점점 피어나는 걸 보는 자체가 큰 보람이었다.
▶ 이하늬가 혀를 내두를 정도로 독하게 다이어트를 했다고. 사실 드라마적으로 다이어트가 필요한 영화는 아니었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 한 번 사건을 물면 도베르만 같은 이미지의 형사가 되길 바랐다. 직업에 맞게 몸을 디자인해야 했고 액션이 일단 버거워보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컸다. 촬영할 때 치킨을 뜯어도 입에서 맛만 보다가 뱉었다. 한 번 무너지면 그걸로 끝이라서…. 영화 현장에서 나름 유명한 밥차인데 거기 밥을 못 먹어서 얼마 전에 응원간 현장에서 산처럼 쌓아 먹고 왔다. 맛집 많이 다니고 차 마시면서 이야기 나눴었는데 그런 걸 배우들이 좋아하더라.
▶ 코미디에 대한 반응도 그렇지만 이번엔 정말 자신있어 보인다. 대중이 배우에게 원하는 모습과 배우 자신의 선택이 다른 경우도 있지 않나. 그럴 땐 딜레마가 있었을 것 같은데.- '자신'은 금기어다. (웃음) 내가 생각했을 때 재미있고 신선한 이야기에 대한 호기심과 선호가 있다. 내가 보여드리고 싶은 작품과 대중이 보고 싶은 작품 사이 간극이 크면 어렵지만 그게 잘 일치한다면 많은 관객들이 보는 거다. 다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색다르고 재미있는 아이디어지만 동시에 위험한 도전들을 통해 다양성에 기여하고 싶다. 그런 이야기를 만나고 싶다. 배우가 작품을 한다는 것은 한 인생이 내게 들어오는 거다. 이 다음에는 어떤 인생이 들어올지 설렌다.
▶ 정해진 차기작이 없으니 '킹덤' 시즌2 촬영을 마치면 그래도 휴식 시간이 좀 나오겠다. 올 한 해 계획은 어떻게 되나.- 치열하게 쉬면서 에너지를 충전할 수 있는 일들을 하고 싶다. 사람들을 만나는, 테마가 있는 여행이 좋더라. 목공은 워낙 좋아하니까 거기에도 집중할 거고 차 마시는 걸 좋아해서 차와 관련된 행사도 꾸준히 다닐 거다. 차가 좀 더 대중화, 보급화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어서 더 공부를 한 뒤에 다큐멘터리를 찍을까 생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