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파견 판사에게 재판 청탁을 했다는 의혹이 불거진 서영교 의원. (사진=연합뉴스 제공)
검찰의 사법농단 의혹 수사로 국회 파견 판사가 재판청탁의 '로비창구' 역할을 한 사실이 드러났지만, 대법원은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모양새다.
사법부 신뢰회복을 위해 개혁에 드라이브를 건 김명수 대법원이지만 판사를 국회에 파견보내겠다는 의지를 접지 않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20일 법조계와 정치권에 따르면 대법원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문위원 1명, 국회 자문관 1명 등 2명을 국회에 파견해 왔다.
국회 파견 판사는 국회가 입법부로써 법을 제정하기에 앞서 위헌 여부나 다른 법과 충돌하는지 등 검토하는 사실상 '법률 서비스'를 제공하는 역할을 맡았다.
하지만 국회 파견 판사는 대법원의 요구사항을 국회에 전달하고 국회의 동향을 파악하는 사실상의 정보관(IO‧Intelligence Officer) 역할을 한다는 게 법조계와 정치권의 설명이다.
실제로 검찰의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공소장을 보면, 더불어민주당 서영교‧유동수 의원과 전병헌 전 의원, 자유한국당 홍일표 의원과 이군현‧노철래 전 의원 등 최소 6명의 국회의원이 사법농단 의혹에 연루됐다.
이 가운데 서영교 의원과 전병헌‧노철래 전 의원의 경우 국회 파견 판사를 통해 형량을 낮춰달라는 '재판청탁'을 하고, 이들의 청탁은 실제 재판부에게 전달된 정황이 담겼다.
정보관인 국회 파견 판사가 국회의원과 양승태 대법원 사이를 연결한 '로비스트' 역할을 한 셈이다.
앞서 문재인 정부는 정보관의 민간인 불법사찰 등 문제로 국정원의 국내파트 정보관을 폐지하고 검찰과 경찰의 정보관은 축소하거나 기능을 개편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국회 파견 판사를 축소하거나 폐지할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
사법농단의 수족(手足) 역할을 한 법원행정처 폐지가 주요 내용인 대법원 자체 개혁안을 보면, 파견근무는 대법원장이 다른 국가기관의 요청을 받아 사법행정회의의 심의‧의결로 기간을 정해 보낼 수 있도록 돼 있다.
판사의 국회 파견 역시 이 같은 조항에 따라 파견 가능성이 열려 있는 셈이다. 대법원 관계자는 "국회 자문관 파견은 추후 국회와 협의해 그 유지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또 국회 법사위 전문위원 파견 역시 비슷한 상황이다.
국회 법사위 전문위원은 형식적으로 공모의 형식을 띄고, 대법원도 판사를 파견하는 것이 아니라 판사가 직위를 사직하고 국회 전문위원에 응모한다.
하지만 사실상 응모하는 판사가 전문위원에 내정되는 것은 물론 판사는 임기를 마치고 재임용 형식으로 법원에 돌아오는 구조다. 따라서 '편법파견'에 불과하다는 지적을 받는다.
대법원은 국회가 전문위원 공모를 완전경쟁으로 진행하자 "응모할 기회를 달라"고 요청했다. 이후 국회가 전문위원을 공모가 아닌 내부자 승진 등의 방식으로 선발하겠다고 통보하고 나서야 '편법파견'을 취소했다.
결국 사법농단으로 무너진 사법부 신뢰회복에 온 힘을 쏟는 김명수 대법원이 '사법농단 로비스트'가 된 국회 판사 파견의 미련을 버리지 못하면서 개혁의지가 미흡하다는 비판이 불가피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