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록한 질감의 'ㄷ'자 무늬가 캔버스 위에 입체적으로 펼쳐진다. 억지로 열을 맞춘 것이 아니라 그 자리를 매우기 위해 자연스럽게 선들이 자리잡는다. 현대적이고 세련된 느낌도 있지만 자세히 보면 시골 돌담길처럼 친근한 분위기를 낸다. 한지를 붙여 만든 전통 창호의 느낌도 난다.
후기 단색화를 이끄는 대표적인 작가로 꼽히는 남춘모의 개인전이 17일부터 종로 '리안갤러리 서울'에서 시작됐다. 이번 전시의 타이틀도 수식어를 배제한 작가 이름 <남춘모>로, 그의 작품 세계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남 작가는 해외에서 포스트 단색화가로 가장 주목받고 있는 작가들 중 한 명이다. 오는 6월부터 저명 미술관 중 하나인 독일 코블렌츠 루드비히 미술관에서 첫 개인전을 앞두고 있다.
미술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인 '선'에서 그의 작품 세계는 시작된다. 그는 선이 캠버스 위에 다채롭게 비치는 방식과 입체미를 살리는 방안을 고민하다가 'ㄷ'형을 고안했다. 일정한 폭으로 광목천을 잘라 나무틀에 고정시키고 합성수지를 발라 건조시킨 뒤에 다시 잘라내 'ㄷ'을 만든다. 이를 다시 캔버스 위에 자유자재로 붙여 완성한다.
선을 강조한 회화 작품 이면서도 입체적이기 때문에 더욱 특별하게 다가온다. 보는 각도와 조도에 따라 그림자가 지기도 한다.
남 작가는 기자간담회에서 "대학시절 서양 미술을 배울 때는 캠퍼스 전체에 물감을 덮었는데, 선대의 작가들은 화선지에 몇 개의 선만으로 여백의 공간감을 주는 것이 흥미로웠다"며 "선대 작가들처럼 선에 공간감을 불어넣을 수 없을까 고민하다가 'ㄷ'자 모양의 입체구조를 만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현대 건축물에서 에이치빔 골조 구조가 건물을 지탱하고 있는 것에 착안해, 회화의 골격이 되는 뼈대를 'ㄷ'자로 만들어 캠버스 위에 구현했다. 선을 억지로 배열하는게 아니라 물이 흐르듯 자연스러움을 잃지 않아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편안한 느낌을 갖게 한다.
'ㄷ'자 뿐 아니라 밭이랑을 연상시키는 곡선의 작품도 선보인다. 가난했던 어린 시절, 시골 산비탈에서 농사를 짓기 위해 가족들과 밭이랑을 만들어 검정 비닐을 씌웠던 것 같은 잔상들이 작품의 모티브가 됐다.
남 작가가 해외에서 유독 주목받고 있는 것도 바로 자연에서 모티브를 얻어 한국적인 미를 잃지 않았기 때문이다.
리안갤러리 안혜령 대표는 "요즘 해외에서 유학하는 젊은 작가들은 완전히 한국적인 것을 잃어버린 작가들도 많은데 남춘모 작가의 작품은 한국적이면서도 서구의 미학을 담고 있어 더 선호한다"고 설명했다.
남 작가는 작품 활동에 임하는 마음가짐도 "어린 시절 산비탈에서 개간을 할 때의 심정"이라고 비유했다. 그는 "황무지 위에 선 농부의 마음이나 작가의 마음이나 똑같은 것 같다"며 "결과보다도 현실에서 풀뿌리 골라내듯이 작업을 하고 있다. 작가는 작업을 할 뿐이다"고 작품관을 드러냈다.
단순히 단색화가로 이름 붙이기에는 그는 틀을 깨려는 새로운 시도들을 많이 하고 있다. 캔버스 위에 입체감을 주는 것에 더해 최근에는 동그란 원 같은 조형물들도 만들어내고 있다.
단색화가로 불리는 것에 대해 남 작가는 "한 국가의 '파'가 전세계에 주목받는 경우는 잘 없다. 선배들이 만들어 놓은 국제시장에 편승하는 기분이 든다"면서도 "작가적인 입장에서는 단색화를 벗어나려고 한다. 그분들의 세계는 그분들로 끝나고 나는 더 확장시켜야지 거기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남 작가의 개인전 <남춘모>는 리안갤러리 서울에서 3월 30일까지 개최된다. 남춘모>남춘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