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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왕' 우민호 감독 "경제 우선주의, 한국 후퇴하게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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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컷 인터뷰] '내부자들' 이어 '마약왕'까지 '청불' 택한 이유
"마약 연기 보면서 소름 돋아…역시 송강호"
"현대사 민낯 폭로하는 작품들? 만들다 벗어날 것"

영화 '마약왕'을 연출한 우민호 감독. (사진=쇼박스 제공) 확대이미지

 

전날 새벽 3시까지 차기작 '남산의 부장들' 촬영을 진행했다는 우민호 감독의 얼굴에는 피로가 겹겹이 쌓여 있었다. 그럼에도 '마약왕' 이야기를 시작하니 눈을 빛내며 손수 준비한 피켓을 들고 영화의 모티브가 된 기사 사진을 설명해 나갔다. 이 모든 이야기는 1979년 한 저택 앞에서 경찰들이 '마약왕'과 대치한 한 장의 사진에서 시작됐다.

"이 사진을 통해 '마약왕' 이야기를 접했죠. 영화 말미 상황은 거의 실화와 똑같아요. 강력한 유신정권 시대에 어떻게 '마약왕'이 가능했는지 궁금증이 생겼어요. 당시 1970년대 일본에서는 걸리면 사형이라 히로뽕 제조가 불가능한 상황이었어요. 그럼에도 수요가 넘치니까 부산에 공장을 만들어 OEM을 시작한 거고요. 백색 황금시대가 열린 겁니다. 당시 정말로 일본 제약회사에서 근무했던 유명한 제조업자가 있었대요. 히로뽕 기원을 따지면 태평양 전쟁 당시 가미카제 특공대나 군수품 공장 직원들을 위해 만든 각성제거든요. 약으로 만들어졌던 거죠."

'마약왕' 주인공으로 송강호를 낙점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두삼 역의 배우는 후반 20분 간접 경험조차 어려운 마약 연기를 홀로 펼쳐야 하는 무거운 짐을 짊어져야 했다. 우민호 감독은 이번 영화를 통해 배우 송강호의 진가를 목격했다.

"시나리오에 빈틈이 생길 수밖에 없었는데 그 빈틈을 채워줄 배우가 송강호 선배라고 생각했어요. 시나리오를 드리기 위해 직접 찾아갔고 선배도 관심을 표명해 출연이 성사됐고요. 놀라움의 연속이었고 정말 제 상상 이상이었습니다. 마약 연기는 선배 혼자 해결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라 현장에서 외롭고 힘들었을 겁니다. 그걸 이겨내고 연기하는 걸 보면서 소름이 돋았어요. 그래서 송강호이지 않나 싶어요."

영화 '마약왕'을 연출한 우민호 감독. (사진=쇼박스 제공) 확대이미지

 

사실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이라는 공통점 때문에 '먀약왕'이 '내부자들 2'가 아닐까 하는 시선도 많았다. 그러나 막상 베일을 벗은 '마약왕'은 다른 이야기 구조를 가진 낯선 모습을 하고 있었다. 영화를 이끌어 가는 캐릭터 구도 역시 달랐다.

"이 영화는 한 남자의 파멸에 대한 이야기죠. 악인을 앞세워 그 심리와 서사를 보여주고요. '내부자들'처럼 통쾌하고 사이다 같은 결말도 아닙니다. '내부자들 2'가 아니니까 다르게 봐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두삼이 파멸하는 건 어떤 갈등이나 다른 악인과의 대결 때문이 아니고 '자멸'에 가까워요. 헛된 욕망을 쫓다가 성안에 갇혀서 점점 미쳐가는 리어왕과 비슷해요. 마지막 20분은 그래서 긴 호흡으로, 연극적으로 찍으려고 했어요."

관객층이 제한될 수밖에 없는 '청소년 관람불가' 영화에 대한 부담감은 특별히 없었다. '내부자들' '마약왕' 모두 관람 등급을 사전에 합의하고 영화 제작에 들어갔다. 이야기를 제대로 풀어내기 위해서 관람 등급은 그다지 중요한 게 아니라는 생각이다.

"물론 '청불'(청소년 관람불가 등급) 영화를 하면 흥행 부담도 있고 감수해야 하는 장면도 있죠. '내부자들' 끝나고 나서는 못하겠다고 생각했는데 '마약왕' 기사 사진을 보게 됐고 놓을 수 없어서 만들게 됐어요. 애초에 마약이 소재니까 표현 수위를 떠나 '청불'이 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고요. 관람 등급과 상관없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제대로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어디에 맞춰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아요. 검열을 하고 시작하지 않는 거죠."

영화 '마약왕'을 연출한 우민호 감독. (사진=쇼박스 제공) 확대이미지

 

우민호 감독은 자신을 '진짜' 움직일 수 있는 이야기들을 찾는다. '내부자들' '마약왕' '남산의 부장들' 등 시대 비판적인 영화들을 만드는 이유도 그래서다. 제대로 통하면 파급력이 커질 뿐만 아니라 현실을 반영한 이야기들이 진심을 흔들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가 제게 진짜로 다가오느냐 그렇지 않느냐가 중요한 것 같아요. 현대사의 민낯을 보여주고 있지만 어느 정도 만들다가 벗어나야죠. 제게 그런 걸 기대하시는 것 같은데 계속 비슷한 소재만 할 수는 없을 거고 고민을 계속 하고 있어요. 편안하게 볼 수 있는 오락 영화를 좋아해서 그런 걸 하지도 않을까 싶고요. 가짜가 아니라 진짜 같아서 즐길 수 있는 것들, 그런 게 한 번 통하면 파급력이 커지는 것 같아요."

남성 캐릭터들로만 채워졌던 '내부자들'과 달리 '마약왕'에는 1970년대 시대상에서 보기 어려울법한 주체적인 여성 캐릭터들도 등장한다. 남편 이두삼에 결코 밀리지 않는 아내 성숙경의 결단력과 생존력 그리고 이두삼보다 한 수 위를 내다볼 줄 아는 로비스트 김정아가 그렇다. 이들은 이두삼에 속한 이름없는 여성 캐릭터들이 아니라 각자 개성있게 이두삼과 파트너십을 이뤄 존재감을 드러낸다.

"성숙경은 조강지처가 아니라 인생을 함께 가는 파트너입니다. 남편이 그렇게 파멸해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건 슬프죠. 그러나 결국 냉정하게 닫아버립니다. 연민도 분명 있겠지만 아닌 건 아니라는 당찬 마음이 있는 거예요. 이두삼 캐릭터는 보면 생각보다 호사를 누리는 게 없어요. 여기 저기에서 굽신거리고 언제 돈과 권력이 끝날까 걱정하고 아내에게 맞아서 쫓겨나고…. 약간 한국적인 '마약왕'이지 않았나 싶네요."

경제성장을 부르짖는 '마약왕' 속 1970년대와 2018년인 현재는 미묘하게 교차하는 지점이 있다. 우민호 감독은 경제성장이 전부였던 1970년대 기조가 지금까지 내려왔다는 문제 의식을 갖고 '마약왕'을 제작했다. '메이드 인 코리아'라는 마약 이름과 밤새 미싱을 돌리는 여공들의 풍경은 1970년대가 가진 모순성을 강조한다. 직접적으로 사회를 비판했던 '내부자들'과는 조금 다른 부분이다.

"'메이드 인 코리아'라는 마약 이름은 경제 성장에 대한 제 은유이자 상징이었어요. 1970년대는 여공들이 밤새 미싱을 돌리는 시대였고요. 고단함 속에서도 희망을 가지고 살아갔던 정직한 시대의 그림 뒷편에 똑같이 잘살아보자는 미명 아래 괴물 같은 인간들이 있었던 거죠. 어떻게 보면 1970년대의 잘살아보자는 경제 우선주의가 지금 우리에게도 계속 내려오고 있거든요. 뭔가 한발 앞서서 해보려고 하면 그것 때문에 다시 일보 후퇴하는 지점이 있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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