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내 백화점 명품관 전경 (사진=자료사진)
"요즘 젊은층은 발버둥을 쳐봤자 어차피 집도 못사고 잘 살 수도 없어 결혼도 아예 포기하고 여러 가지로 많은 것들을 포기하잖아요. 그러면 내가 인생을 왜 사냐 하는 마음에 수입차가 될 수도 있고 명품 운동화가 될 수도 있는 고가 소비재를 구입하면서 혼자 뿌듯해 하는 거죠. 누가 알아봐 주지 않아도 나는 이런거 소비해 라는 자기만족이죠""과시한다 이런 느낌보다 그 브랜드의 스토리를 알고 내가 만족할 수 있는 소비들을 하는거예요 명품브랜드들이 하는 마케팅은 그런 트렌드를 현재나 미래의 수익으로 연결시키는거죠"과거 '신세대'로 통칭되던 80년대 태생, 30대와는 또다른 차별화된 생활환경과 가치관, 감성으로 무장한 '밀레니얼세대'의 소비행태를 단적으로 표현해주는 A백화점 트렌더세터의 말이다.
20대로 갓 사회에 입문했거나 직장생활 초년생들인 밀레니얼 세대의 특성은 그들의 소비행태를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풍부한 기회 속에서 또는 이른바 금수저로 타고난 기성세대들이 수 천 만원을 주고도 사기 어렵다는 에르메스 버킨.켈리백이나 샤넬 클래식백에 열광할 때 그들은 명품 브랜드들이 내놓는 '저가라인'으로 눈길을 돌린다.
지난해부터 '발렌시아가'에서 선보이고 있는 100만원대의 '어글리 슈즈'가 밀레니얼 세대 사이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자 구찌, 샤넬에서도 100만원대 스니커즈를 선보였다.
에르메스도 이달 고무 소재의 '젤리슈즈'를 33만원에 내놔 하루만에 전국의 모든 매장에서 품절 됐다고 A백화점 관계자는 말한다.
미국 스트리트 패션 브랜드 슈프림과 루이비통이 협업해 출시한 티셔츠, 재킷, 가방 등은 루이비통 슈프림 광풍을 일으키며 3일만에 완판되는 식이다.
구매력은 떨어지고 명품 소비에서 오는 만족감을 느끼고 싶어하는 밀레니얼세대의 욕구가 명품 브랜드로 하여금 다양한 '저가라인 마케팅'에 나서도록 한 원인인 지 모른다.
저가마케팅에 대해 유통업계에서는 '명품들이 적당하게 자기네들 품격은 유지하면서 젊은 층 소비자들이 구매할 수 있는 라인을 만들어주는 것' 정도의 해석을 달기도 한다.
기성세대나 밀레니얼세대나 명품의 희소성에 목말라하는 건 비슷하지만 어머니세대들이 고가품을 구매할 수 있다는 바잉파워에서 은근한 만족감을 느끼고 타인과의 관계속에서 그 만족감을 한층 더 크게 느끼는 쪽이라면, 신세대 소비자들은 그야말로 아무 눈치보지 않는 자기만족이 소비를 하는 궁극의 목적이다.
A백화점 관계자는 27일 CBS와의 인터뷰에서 "300만원 월급받으면서 100만원짜리 운동화신고 차 리스료 내고 그냥 덜 먹고 뭘하더라도 그걸 혼자 인스타에 올리는 거죠. 자기 스토리를 남한테 공유하고 그걸 즐기고 사는거예요"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언박싱하면서 쇼핑백 푸는 것 까지도 이들이 올리잖아요. 구매하는 거부터 집에 갖고와서 풀어보고 신어보고 신고 어디를 가고 자기스토리를 남한테 공유하는거죠 그니까 친구한테 대놓고 자랑하는게 아니고 SNS상에 자랑을 하는거죠 그리고 자기만족을 하는거고 그걸 누가 보든말든.. 누가 비난하든말든.."이라고 덧붙였다.
이런 트렌드가 주목받기 시작한 지는 조금됐다. 21세기 초 만들어진 한국 사회의 신조어 'N포세대'란 말은 이들이 처한 상황을 함축적으로 설명해준다. 네이버검색에 N포세대를 치면 " 어려운 사회적 상황으로 인해 취업이나 결혼 등 여러 가지를 포기해야 하는 세대를 뜻하는 말"이란 설명이 나온다.
금전적 능력이 뒷받침되지 못하고 그렇다고 앞으로 더 좋아질 가능성도 없다보니 이들이 포기해야할 게 한 두가지가 아니라는 얘기다.
'내집마련 포기, 경조사 챙기기 포기, 결혼포기, 출산포기 어차피 용을 써봤자 안될 거 다 포기하고 편하게나 살지 뭐'라는 N포세대, 그러나 살아 있는 한 자기만족까지 포기할 수는 없다.
아직 N포세대가 한국사회 구매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미미하기 이를데 없지만 발빠른 백화점 등 유통업계는 말할 것도 없고 '콧대 높다'는 명품브랜드들 조차 이들을 미래의 고객으로 인식하기 시작한 것이다.
백화점업계는 2025년 전 세계 명품 시장에서 밀레니얼 세대가 45% 이상의 비중을 차지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어글리 슈즈, 젤리슈즈 같은 저가라인을 서둘러 내놓고 밀레니얼세대 공략에 나선 명품회사들은 지난해부터 두자리수 이상의 높은 매출신장을 기록중이다.
젊은 층에 브랜드 스토리를 전달하기 위한 온라인 홈페이지를 열고 슈즈와 파인 쥬얼리 등의 상품 확장, 대중 스포츠.스트리트 의류 브랜드와의 이색 협업 등을 통해 젊은 고객 공략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런 마케팅은 유통이든 명품이든 소비층의 변화를 피부로 느끼고 있다는 증거이기도하다. 유행이나 브랜드나 지속가능하려면 새로운 고객층이 유입돼야 하고 이런 측면에서 당장 돈은 안되더라도 브랜드 친숙도 높이는 일은 필수다.
2019년 기해년 새해에는 밀레니얼 세대발 소비트렌드의 변화가 한층 가속화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