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컷뉴스의 '뒤끝작렬'은 CBS 노컷뉴스 기자들의 취재 뒷얘기를 가감 없이 풀어내는 공간입니다. 전 방위적 사회감시와 성역 없는 취재보도라는 '노컷뉴스'의 이름에 걸맞은 기사입니다. 때로는 방송에서는 다 담아내지 못한 따스한 감동이 '작렬'하는 기사가 되기도 할 것입니다. [편집자 주]
김정호 의원. (사진=김정호 의원 공식 페이스북 캡처)
"앞으로 국민의 눈높이에서, 국민을 위해 헌신하는 제대로 된 국회의원으로 거듭나도록 더욱 겸손하게 정진하겠습니다."
지난 20일 김포공항에서 신분증을 꺼내달라고 요청하는 한국공항공사 직원 김모씨에게 "그런 규정이 어디에 있느냐"며 따졌던 더불어민주당 김정호 의원이 5일 만에 언론 앞에서 한 사과문의 마지막 문장이다.
자신의 행위가 이른바 세간에서 '갑질'로 부르는 행동이었음을 당시에는 전혀 몰랐음을 스스로 시인한 셈이다.
이번 사건이 보도되면서 비난 여론이 거세게 일기 전까지 김 의원은 오히려 자신이 갑질을 당했다고 주장했었다.
김씨가 없는 규정을 들먹이며 고압적으로 신분증을 지갑에서 빼달라고 한 것이 갑질이라는 것이다.
공항공사 매뉴얼에는 탑승권과 함께 신분증을 두 손으로 받아 육안으로 일치 여부와 위조 여부를 확인하도록 돼 있다.
당시 김씨의 태도가 얼마나 고압적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김씨가 손으로 김 의원의 지갑을 뒤져 신분증을 빼는 것 보다는 김 의원이 자신의 지갑에서 신분증을 꺼내는 것이 상식에 가깝다.
(사진=김정호 의원 페이스북)
김 의원은 이후 공사 사장에게 직접 전화를 해 "고객에게 갑질을 하는 근무자들의 행동을 조사하라"고 까지 지시했다.
논란이 되고 있는 욕설 여부를 떠나 공항공사를 피감기관으로 두고 있으면서 사장에게 실태조사까지 지시하는 국회 국토위원회 소속 국회의원과 신분증을 꺼내 달라는 공사 직원 중 누가 갑질을 했는지는 사뭇 자명해 보인다.
김 의원은 자신의 행위가 정당했음을 주장하던 페이스북 글도 삭제했다.
신속한 사과로 조기에 진화할 기회가 있었지만 민주당은 미온적인 대응으로 그 기회를 놓쳤다.
지난 24일 오전 최고위원회의에서 김 의원에 대응 방향을 결정하자는 일부 당 지도부의 요청이 있었지만 수용되지 않았다.
김 의원은 이날 오후 자신이 김해 신공항을 반대해왔기 때문에 공사나 국토교통부가 의도적으로 자신과 문재인 정권을 공격하기 위해 사안을 키웠다는 음모론을 제기했다.
최고위에서 사과 등의 조치가 취해졌다면 더 큰 국민적 비난을 불러 일으킨 김 의원의 발언은 나오지 않을 수 있었다.
김 의원은 사과를 했지만 당내 상당수 의원들은 여전히 "이번 사건이 왜 문제인지 모르겠다"며 민심과 동 떨어진 반응을 보이고 있다.
한 민주당 최고위원은 이번 사건이 "특권의식 때문이라는 말이 자꾸 나오는데 국회의원의 특권은 입법권한 뿐"이라며 "서서 오래 일을 하다보면 날카로워져서 그런(고압적인) 태도가 나올 수 있어 그냥 넘겼어야 했는데 (김 의원이) 그러지 못했다"고 말했다.
다른 민주당 지도부 관계자는 "언론이 잘못된 방향으로 보도를 해 일을 키우고 있다"고 비난했다.
발단은 김씨가 제공했고 언론이 이를 키웠을 뿐 김 의원의 잘못은 별로 없다는 말이다.
국민의 직접 소리를 듣겠다며 청와대가 운영 중인 국민청원 및 제안 게시판에는 김 의원의 의원직 사퇴를 촉구하거나 처벌을 요구하는 글이 70여건 게시됐다.
지역구민 앞에서 '비염'을 핑계삼아 침을 뱉었던 자유한국당 민경욱 의원을 비난하는 11개의 게시글보다 7배나 많다.
경제를 살리고, 개혁을 추진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이에 못지 않은 것이 민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라는 점을 여당은 기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