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오전, 희망연대노동조합 방송스태프지부가 '방송스태프들과의 직접 면담 거부하는 MBC 최승호 대표이사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김수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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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케이트장 있는 게 똑같네요. 사진 찍고 저희가 언제 (안으로) 올까 대기하고 있는 경비들 똑같네요. (취재하러 온) 방송 카메라 하나 없는 것 똑같네요. 방송 제작 환경이 하나도 안 바뀌고 있는 것과 크게 다를 바 없는 것 같아요. MBC 드라마운영부에서 내놓은 공식 문건을 꼼꼼히 읽어봤습니다. 협의체가 돌아간다던데, 봅시다. 돌아가고 있나요? 하겠다는 약속을 9월에 나눴는데, 연말이 가도록 뭐가 된 게 있나요. 약속은 있지만 실행이 없고, 말은 있지만 실천은 없습니다." _ 언론개혁시민연대 전규찬 공동대표20일 오전, 희망연대노동조합 방송스태프지부(지부장 김두영, 이하 방송스태프지부)가 다시 서울 마포구 상암동 MBC 사옥 앞에 섰다. 지난달 27일, MBC 월화드라마 '배드파파'의 초장기 노동 실태를 비판하고 턴키 계약(단일 계약자가 다른 사람들 것까지 함께 일괄 계약하는 것) 관행을 근절하라는 요구를 하러 기자회견을 연 지 약 한 달 만이다.
방송스태프지부는 △드라마 제작 종사 스태프들의 개별 근로계약 체결 △드라마 제작 현장의 장시간 노동 개선 대책 △드라마 제작 환경 개선을 위한 노조와의 정기적 면담 등 3가지 요구사항을 최승호 MBC 사장에게 전하려 했으나, 당시 안전관리팀이 막는 바람에 잠시 실랑이가 있었고 결국 비서팀장을 통해 전하는 선에서 그쳤다.
하지만 MBC는 방송스태프지부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지난 4일에는 홍준수 드라마운영부장을 통해 "언론노조와 드라마 제작 환경 개선을 위한 협의체를 구성해 논의를 시작했기 때문에 개별 협의를 진행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전했고, 지난 13일에는 정영하 정책기획부장을 통해 '드라마 제작 환경 개선을 위한 협의체'에 방송스태프지부는 참여할 수 없다는 입장을 다시 확인했다.
이날 기자회견 참석자들은 정권-사장 교체 전과 별다른 바 없는 MBC의 태도를 강도 높게 비판했다. 최승호 사장이 지난해 12월 1일 열린 사장 후보 정책설명회에서 '창작자들과 상생'하겠다며 △방송 스태프 노동조건 개선 △표준계약서 도입 △비정규직 대표와 정기적 현안 협의 △독립제작사와 수평적 동반자 관계 등을 공약했으면서도, 정작 지키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희망연대노조 김진규 공동위원장은 "최승호 대표이사 취임 후 여러 가지 많은 기대를 걸었지만, 유독 방송 제작 환경 개선에 대한 MBC의 입장을 보고선, 개선의 의지가 있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김 위원장은 "어떻게 당사자(스태프)를 만나지 않고 가려운 부분을 긁을 수 있나"라며 "주 52시간으로 가는 대세에, 당사자인 방송 스태프 노동자의 면담 요구에 응해야 한다. 그래야 제대로 된 개선 방안 협의가 가능하다. 최승호 MBC 대표의 큰 결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1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MBC 사옥에서 열린 'MBC 사장 후보 정책 설명회'에서 최승호 당시 사장 후보가 '창작자들과 상생' 관련 공약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MBC 사장 후보 정책 설명회'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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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관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이사장은 "(드라마 현장에선) 시간 노동, 다단계 하도급, 턴키 계약 이런 것들이 지속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면서 "제작 환경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고 노동조합과 비정규직의 요구를 반영해서 다시 MBC가 드라마 왕국의 명성을 되찾는 데 앞장서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전규찬 언론개혁시민연대 공동대표는 "드라마 제작 환경의 민주주의를 이뤄내야 할 시대가 바로 지금이 아닐까 싶다. 만약 과거처럼 제작 환경 안 노동자의 삶을 험악하게 가져간다면, 그런 미디어 왕국은 깨지는 게 맞다"고 꼬집었다.
전 대표는 "방통위원장, 문체부 장관도 면담을 받는다. 면담은 얼굴 보고 대화하자는 아주 기본적인 자리 아닌가. 최승호 사장도 기본적인 건 받아야 한다"며 "매일 몇 명씩 제작 현장에서 죽어 나간다. 목이 떨어지고 팔이 떨어져야만 죽음인가. 스태프들 대부분이 우울증을 겪고 삶이 피폐해진다면 그건 죽음이 아닌가. 그게 죽음이라는 걸 아는 기자 PD 언론노동자들은 이 처참한 목소리에 귀 기울여주시기 바란다"고 주장했다.
언론노조 방송작가지부의 이미지 지부장은 MBC 'PD수첩'에서 처음 일을 시작했다고 말을 꺼내며 "대한민국 온갖 부패와 부조리를 파헤치는 곳에서 일했지만 작가들, 비정규직, 여타 스태프들은 그야말로 장시간 노동에 시달렸다. 일주일 동안 퇴근 없이 일하거나 하루에 채 2시간도 자지 못했던 적이 있다. 기본 욕구 중 수면욕이 가장 강하다는 걸 그때 알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보단 상황이 나아졌겠지만 여전히 좋은 프로그램, 경쟁력 있는 프로그램을 만든다는 이유로 그걸 만드는 스태프들의 환경은 무시당한다. 카메라와 편집기를 잡은 사람들도 사람이다. 잠을 자고 최소한의 휴식은 보장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MBC 측은 드라마 현장 스태프들의 이야기를 듣지 않겠다는 의미가 아니라고 해명했다. 정영하 MBC 정책기획부장은 20일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지상파와 언론노조가 함께하는 드라마 제작 환경 개선 협의체가 있다. 그 자리에서 드라마 스태프 문제도 같이 논의하기로 했다. 스태프지부가 전하는 구체적인 이야기는 언론노조가 청취하고 수렴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드라마 제작 환경 개선 특별협의체'는 지난 9월 3일 언론노조와 지상파 방송사 간 맺은 산별협약 제13조 3항에 따라 구성됐다. 이 협약에는 드라마 스태프의 일일 노동시간은 최대 12시간을 원칙으로 하고 노동일 종료 후에는 다음 노동일 개시 전까지 충분한 휴식 시간을 보장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다만, SBS가 드라마 분야 분사화를 추진한다는 이유로 특별협의체 불참을 통보하고 있어 지지부진한 상태다. 언론노조는 같은 날 성명을 내어 방송사들의 미온적인 태도를 비판하며 "방송사 스스로 '위험의 외주화'를 근절하고, 스태프들의 노동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고 요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