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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처럼 일해도 여자라 성희롱"…영화판 엇나간 '형제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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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12-12 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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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계_내_성폭력 ③] 남성중심 문화 적응 강요 현장
간신히 적응한 여성, 성폭력 위험 시달리는 모순적 상황
도제식 문화 해체됐지만 현장에서 '낙오자' 될까 불안감

영화계가 만연한 성폭력에 시름하고 있습니다. 이곳에서는 제작 단계·직군별로 다양한 위계·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힌 탓에 성폭력 문제를 밖으로 드러내기 어렵습니다. 그만큼 문제를 해결하자고 한목소리를 내기도 쉽지 않죠. CBS노컷뉴스가 영화계 성폭력 실태와 그 해법을 전합니다. [편집자주]

글 싣는 순서
① 성폭력 불감증 '영화판'…여태 "발등 불만 끄자" 땜질
② "성폭력 침묵해야 일거리"…영화인들 '주홍글씨' 공포
③ "남자처럼 일해도 여자라 성희롱"…영화판 엇나간 '형제애'
④ 노출신마저 눈칫밥에 떠밀려…"카메라 뒤 여자 늘어야"

영화판에서 일하는 여성들은 모순적인 상황에 빠지기 십상이다. 현장에서는 남성 중심적인 문화와 기준에 적합한 인력이 될 것을 강요당하면서도 언제든 성희롱·성폭력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불안에 시달리기 때문이다.

연출부 경력 2년차 스태프 남순아씨는 아래와 같이 토로했다.

"음담패설이나 언어적인 성희롱을 '쿨'하게 넘기길 기대받는 분위기가 있다. 그런 것에 정색하면 '어리다'든가 '사회적인 미숙함이 있다'든가 아니면 '여자라서 그렇다'든가 같은 이야기가 나온다. 이런 식으로 볼까봐 더 강하게 부딪치거나 높은 수위의 농담을 하기도 한다. 그런 말 정도로는 성적 모멸감을 느끼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요즘에는 남성이 '너도 나 미투하는 거 아니야' 이러면서 떠보거나 농담으로 소비하는 행태도 있다."

이러한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한 여성들은 스스로 현장을 떠나거나 암묵적으로 배제된다. 여성 종사자들이 생계마저 포기하게 만드는 남성 중심 문화는 결국 영화 현장의 성비 불균형 현상을 고착화시키는 악순환의 고리로 작용한다.

"여자들이 접근하게 되면 명예 남성을 원해요. 남자 같이 해라. 명예 남성이 아니라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그걸 계속 강요하는 부분들에 있어서는 남자들 공동의 어떤 이기주의 같은 게 들어가 있지 않을까…." - 2017년 영화계 성폭력·성희롱 실태조사 인터뷰 중에서

한국영화감독조합 성폭력방지 특별위원회 소속 이윤정 감독은 이런 영화 산업 내 공고한 남성 중심 문화를 '브라더후드'(Brotherhood·형제애)라고 칭하며 설명을 이어갔다.

"함께 시작한 남자 동료는 네트워크를 쌓아 가면서 언젠가 입봉이 될 것 같은 분위기가 있을 거다. 나 또한 인맥을 통해 커리어를 쌓고자 하는 욕망이 있었지만 몇 번의 불쾌한 경험을 겪었고 그 후 인맥 쌓기를 포기한 채 장편 감독 데뷔를 준비했다. 점점 아웃사이더가 돼간다는 불안감은 항상 있었다."

이 감독은 "요즘은 가해자가 아니라 문제를 고발할 가능성이 높은 여자 스태프를 거른다는 제작사들도 있다"며 "피해자 위치에 놓일 가능성이 높은 여자 스태프의 존재를 오히려 불안 요소로 인식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 "절 싫으면 중이 떠나라"…낙오가 두려운 남성들

지난해 12월 서울 마포구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 열린 '영화감독 김기덕에 대한 검찰의 약식기소 및 불기소 처분 규탄 기자회견'에 참석한 피해 여배우가 가림막 뒤에서 증언을 하고 있다. (사진=황진환 기자/자료사진)

 

영화계 남자 종사자들 또한 이런 남성 중심 문화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지난 2016년 '영화계_내_성폭력' 고발 운동과 올해 '미투' 운동 이후 남성 영화인들 사이에서는 성차별적인 표현 자체를 기피하는 경향이 짙다.

촬영팀 경력 10년차 남성 스태프 이모씨는 "솔직히 표현을 하지 않더라도 현장에서 체력적으로 남성이 무거운 짐을 많이 드니까 더 돈을 많이 받아야 되는 게 아니냐는 생각이 공유되기도 했다"며 "그런데 이제는 그런 생각 자체를 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성차별적인 생각 자체를 하지 말자는 분위기"라고 이야기했다.

특히 도제식 시스템이 약해진 최근 영화계 상황에서는 남성 중심 문화가 효율성을 이유로 현장의 절대적인 기준이 되기 어렵다.

이씨는 "예전에는 내가 시작한 팀을 벗어나 다른 팀에 들어가 일을 한다는 자체가 어려운 일이었다. 일이 없을 때도 그 팀 전체를 불러줄 때까지 그냥 기다려야 했다"며 "그런 상황 속에서는 당연히 상급자의 잘못된 행위나 의견에 반발하는 게 불가능했다. 아직까지 팀을 꾸리는 과정에서 '인맥'이 남아 있는 것은 맞지만 이제는 프로젝트에 따라 개별적으로 뭉쳤다 흩어진다"라고 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성 중심 문화를 불편해 하는 남자 종사자들에게 그러한 현장은 여전히 각종 고민으로 가득한 곳이다. 물론 여성처럼 성희롱·성폭력의 직접적인 피해자가 되거나 이로 인해 현장을 떠나는 사례가 빈번하지는 않다. 그러나 상급자의 인격·성향이 곧 시스템으로 작동하는 현재 영화계 특성상 남성들 역시 반기를 든다면 주류 문화에서 밀려날 위험에 직면한다.

이와 관련해 남순아씨는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며 부조리한 현장 이야기를 이어갔다.

"촬영팀 남성 스태프들이 한데 모여 낄낄대고 있었는데 실시간으로 카메라를 확대해서 여성 신체 부위를 보고 있더라. 나중에 촬영팀 막내 스태프에게 '왜 가만히 있었느냐'라고 물었다. 그랬더니 본인도 너무 불편했는데 직급도 낮고 나이도 어리니 문제 제기를 못하고 그냥 재미있는 척, 웃긴 척을 했다는 것이다."

이씨는 "팀별 성격이 중요하다. 만약 그 팀의 '퍼스트'(First)가 성차별적인 생각을 갖고 있고 음담패설 같은 것을 좋아한다면 '세컨드'(Second)와 '서드'(Third)까지 거기에 물든다"며 "그런 상황에 막내 스태프가 문제라고 생각해서 이야기를 한다면 그 막내가 문제적인 존재가 되는 거다. 불만 있으면 중이 절을 떠나라는 식이다. 만약 '퍼스트'가 그렇지 않으면 팀 분위기 전체가 그런 발언들을 조심한다"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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