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건설사 재건축 비리 수사결과를 발표하는 서울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 안동현 계장
서울 강남권 아파트 재건축 공사 수주 과정에서 조합 관계자들에게 금품을 뿌린 대형 건설사 임직원과 홍보 대행업체 대표 등이 무더기로 경찰에 적발됐다.
서울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재건축 아파트 조합원들에게 현금과 선물 등을 줘 도시정비법을 위반한 혐의 등으로 현대건설·롯데건설·대우건설 임직원과 재건축 조합원 등 모두 334명을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넘긴다고 11일 밝혔다.
이들은 서울 서초·송파구 등 강남권 재건축 아파트 시공권을 따기 위해 조합원들에게 현금과 선물 등을 제공한 혐의를 받고 있다.
현대건설은 1억 1천만원, 롯데건설은 2억, 대우건설은 2억 3천 상당 금품을 제공한 것으로 경찰조사결과 드러났다.
여기에 3곳 건설사에서 조합원들에게 주려고 시도했던 금액까지 합하면 로비자금은 43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경찰은 파악했다.
경찰은 "홍보용역비 안에서 로비자금을 만들어서 조합원에게 제공됐다"며 "금품 접대에 불법으로 사용된 금액들이 모두 사업비에 포함 돼서 분양가에 영향을 주고 집값 상승으로 이어졌다"고 했다.
경찰에 따르면 현대건설은 서울 반포 1·2·4지구 주공아파트 재건축 사업 시공권을 따내려고 기획사와 홍보 대행업체 등을 동원해 조합원들에게 고급 가방과 현금을 줬다.
단체카톡방을 만들어 '과일을 살 때는 반드시 조합원 과일과게를 이용하라'는 글을 공지하기도 했다.
현대건설의 한 부장은 조합원 접촉을 도맡는 총회 대행업체 대표에게 유령법인 계좌로 5억 5천만원을 줬다. 수주를 도와준 대가였다.
수사 과정에서 건설사와 홍보대행업체 사이 커넥션도 드러났다.
경찰이 수사하던 홍보대행업체 3곳은 모두 한 대표가 운영하던 같은 업체였고 과거에도 재건축 비리 관련 처벌받은 적이 있었다.
경찰은 "문제가 생겼을 때 우리 건설사는 몰랐다며 꼬리 자르기가 가능한 업체를 찾다 보니 건설사와 특정 홍보 대행업체가 연결돼 있다"며 "홍보 대행업체 입장에서도 불법행위가 드러났을 때 건설사 대신 책임 져 주면 편의 제공을 받았다"라고 했다.
홍보 활동비를 과하게 책정해 횡령을 해도 건설사에서 묵인해 주는 것이다.
롯데건설은 송파구 잠실미성 아파트·크로바 아파트 재건축 조합원 개인 정보를 파악해 억대의 금품을 건네기도 했다.
롯데건설은 또 지난해 대우건설과 신반포 15차 재건축 사업 시공권을 따내기 위해 경쟁하면서 조합원들에게 고급 호텔 숙박권과 현금 등 2억원 상당 금품을 건넨 의혹을 받고 있다.
계열사 특급호텔에서 좌담회를 연 뒤 조합원을 숙박시키는 식이었다. 또 제안서가 들어있다며 태블릿 PC를 주기도 했다.
경찰 수사결과 대우건설도 조합원들의 경계심을 허물기 위해 신발장에 선물을 두고 오거나 경비실에 맡겨온 사실도 드러났다.
당시 치열한 시공권 경쟁 끝에 지난해 9월 신반포 15차 재건축 사업 시공권은 대우건설에 돌아갔다.
이 과정에서 롯데와 대우 양측으로부터 각각 2천만원과 400만원을 받은 조합원의 모친이 입건됐다.
이런 식으로 금품을 받거나 혐의를 부인한 조합원 9명도 입건됐다.
도시정비법에 의하면 금품을 받은 사람도 처벌받는다.
경찰은 "받으면 안 되는 돈을 받은 조합원 1400여명이 확인됐지만 절반에 가까운 조합원을 입건하는 건 과잉"이라며 "조합원들도 유혹에 넘어가는 일이 없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국토교통부는 지난 10월 재건축 정비사업 시공자 선정과 관련한 비리 처분을 강화하는 도시및주거환경정비법 개정안을 시행했다.
재개발·재건축 사업 시공자 선정 과정에서 건설업자가 금품 등을 제공한 사실이 알려지면 시공권을 박탈하거나 공사비의 20%까지 과징금을 부과하고, 해당 시·도에서 진행하는 정비사업에 2년 동안 입찰을 제한하는 법이다.
다만 소급 적용되진 않아 이번에 적발된 3사는 개정안 적용을 받지 않을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