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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 침묵해야 일거리"…영화인들 '주홍글씨' 공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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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12-11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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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계_내_성폭력 ②] 여전히 먼 나라 이야기 '공론화'
도제식 문화 잔재·인맥 중심 특수성이 침묵과 방관 조장
"다수의 침묵 깨질 때 '2차 피해' 두려워 않고 고발 가능"

영화계가 만연한 성폭력에 시름하고 있습니다. 이곳에서는 제작 단계·직군별로 다양한 위계·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힌 탓에 성폭력 문제를 밖으로 드러내기 어렵습니다. 그만큼 문제를 해결하자고 한목소리를 내기도 쉽지 않죠. CBS노컷뉴스가 영화계 성폭력 실태와 그 해법을 전합니다. [편집자주]

글 싣는 순서
① 성폭력 불감증 '영화판'…여태 "발등 불만 끄자" 땜질
② "성폭력 침묵해야 일거리"…영화인들 '주홍글씨' 공포
③ "남자처럼 일해도 여자라 성희롱"…영화판 엇나간 '형제애'
④ 노출신마저 눈칫밥에 떠밀려…"카메라 뒤 여자 늘어야"

여전히 영화 현장에서 성희롱·성폭력 피해 고발이나 공론화는 자유롭게 이뤄지는 분위기가 아니다. 도제식 문화의 잔재와 '인맥' 중심의 영화계 특수성이 피해자에게 불안 요소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한국영화감독조합 성폭력방지특별위원회 이윤정 감독은 "어떤 영화에 참여했을 때 모든 파트의 남성들과 이상한 소문에 휩싸인 적이 있다. 말로 하는 성희롱을 묵인했더니 그게 성추행으로 번지기도 했다. 공론화를 해도 양비론으로 가서 '네가 여지를 준 게 아니냐', 이런 식의 이야기를 듣거나 낙인을 찍기도 하고 가십처럼 소비되는 경향이 있다"라고 피해자가 공론화하기 어려운 분위기를 지적했다.

이 감독은 "그런데 가해자들은 커리어에 전혀 지장이 없었다. 나는 불편한 존재가 돼 밀려날 각오로 이야기를 했고 실제로도 그렇게 밀려났다"며 "이후 커리어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사적 인맥을 과감히 포기했고 극심한 스트레스로 많은 작품에 참여하는 것을 꺼렸다. 그래서 입봉하기 전 참여 작품이 남성 감독들에 비해 현저히 적다. 이런 여성 감독들이 많다"라고 부연했다.

지난 4월 영화진흥위원회가 발표한 '2017년 영화계 성평등 환경 조성을 위한 성폭력·성희롱 실태조사'에 따르면 60% 비율을 차지하는 여성 성희롱·성폭력 피해자의 73%는 사건을 공론화하지 않았다. 공적 대처를 하지 못한 이유에 대해서는 34.1%의 피해자들이 '넘어가는 것이 제일 나은 방법으로 생각돼서'를 선택했다. '업계 내 소문·평판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라고 답한 피해자들도 31%에 달했다.

연출부 경력 2년차 스태프 남순아씨는 "음담패설이나 성차별적인 발언이 점진적으로 확산돼 성적 대상화나 성폭력으로까지 연결이 된다"며 "일단 나도 공론화를 해본 적이 없다. 현장에 차질이 생길 것을 우려했고, 누군가에게 이야기한다면 남성 가해자를 감싸는 식의 이야기가 나올 것 같아 대다수 남성인 동료들에게도 당연히 알리지 않았다"라고 이야기했다.

그는 "도제식 시스템이 완화됐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영화계에서는 함께 일한 사람에게 다시 제안을 하거나 추천받는 식의 인맥과 경험이 중요하다. 문제 제기를 하면 능력을 떠나 분위기를 깨거나 예민한 사람으로 취급 받는 분위기"라며 "결국 일을 할 때도 불편한 사람으로 낙인 찍혀 비추천 대상자가 될 수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이 우선된다"라고 공론화가 여성 피해자들에게 미치는 '2차 피해'를 설명했다.

◇ "이 여자가 나 꼬셨다"고 한다면…평판·권력에 묶인 현장

영화감독 김기덕 사건 공동대책위원회 활동가들이 지난해 8월 서울 서초구 서울변호사회관에서 열린 영화계 내 성폭력에 대한 기자회견에서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박종민 기자/자료사진)

 

일련의 사건들을 거치며 영화계 내 성인지 감수성이 얼마나 향상됐는지 확답하기 어렵지만, 인터뷰에 응한 영화인들은 최소한 '조심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는 데는 동의했다. 과거와 달리 구성원들 사이 성적 불쾌감을 줄 수 있는 부적절한 언행을 스스로 검열하는 문화가 자리잡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현장에서 주류를 이루고 있는 남성 스태프들은 이런 사건들이 공론화 되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공적인 창구가 존재해도 여전히 가해자나 피해자의 평판 그리고 이들이 속한 집단 내 분위기 등 개별적 이유들이 아직도 사건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촬영팀 경력 10년차 남성 스태프 이모씨는 "현장의 수많은 사람들이 한 프로젝트가 끝나면 헤어진다. 어떤 사람을 다음 현장에서 볼 기회가 거의 없으니 피해를 당한 여성 스태프들도 '3개월만 참자' 하는 분들도 많을 것"이라며 "고발했을 때 가해자가 인정하면 문제가 없지만 만약 '이 여자가 먼저 나를 꼬셨다'면서 인정하지 않는다면 사람들 의견은 갈릴 것 같다. 현장 분위기나 피해자가 지닌 평소 평판에 따라서도 반응이 달라질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그가 듣거나 목격한 성희롱·성폭력 사건은 결국 함부로 고발하기 어려운 위계 질서 속에서 벌어지는 것이 대다수였다. 남성 헤드 스태프가 여성 일반 스태프들에게 혹은 남성 주연급 배우들이 분장·의상팀 여성 스태프들에게 가해행위를 했다.

이씨는 "일반 스태프와 스태프 사이 그런 일이 벌어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헤드 스태프와 일반 스태프 사이에서 벌어지거나 남성 배우와 부딪치는 분장·의상팀이 피해를 많이 겪는다"며 "잘나가는 남자 배우가 그랬을 때 피해자가 공론화를 결심해서 제작사 대표에게까지 이야기가 들어갈 수도 있다. 그러나 (제작사 대표는) 본인이 제작하는 영화를 개봉할 수 없는 상황이니 절대 공론화 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대부분 문제 상황을 발생시키는 사람은 높은 위계를 차지한 소수에 불과하다. 실제로 감독조합 내에서 성희롱·성폭력 가해자로 인지된 감독은 5명으로 총 인원의 2% 정도다. 결국 그 문제를 방관하는 다수의 침묵이 깨질 때 비로소 피해자가 '2차 피해'를 두려워하지 않고 고발이 가능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남순아씨는 "사실 문제를 일으키는 소수의 사람들이 변하기를 기대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런 소수에 묵인하고 동조하는 다수의 사람들이 변하면 소수 사람들도 자신이 곤란해진다는 것을 깨닫고 눈치를 보게 된다"며 "시스템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런 문화적인 변화가 함께 진행되지 않으면 어렵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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