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로마' 스틸컷(사진=넷플릭스 제공)
지우려 할수록 또렷이 되살아나는 기억들이 있다. 세계 유수 영화제를 휩쓸고 있는 알폰소 쿠아론 감독 신작 '로마' 도입부는 그 아이러니를 오롯이 드러낸다.
어느 낡은 돌바닥에 고정된 카메라 저편에서 물을 끼얹고 빗자루질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청소를 위해 물을 끼얹으니 돌바닥과 마주한 하늘이 물에 비친다. 더 깨끗이 닦으려고 더 많은 물을 끼얹을수록 그 하늘은 더욱 선명한 모습으로 돌바닥에 각인된다. 이곳은 영화 배경인 멕시코시티 로마(Colonia Roma)라는 동네에 자리한 한 가정집이다.
올해 베니스영화제 최고상인 황금사자상에 빛나는 영화 '로마'는 1970년과 그 이듬해인 1971년 민주화 열망으로 들끓던 멕시코 역사를 시대 배경으로 빌려왔다. 당대 학생시위가 줄을 잇는 상황에서 정부 지원을 받은 우익무장단체 세력은 120명을 학살한 '성체 축일 대학살'을 벌이기에 이른다.
이러한 시대 설명은 극 중반 이후 도심에서 자행된 해당 민간인 학살 장면이 나오기 전까지 등장인물들 대사나 거리 풍경 등에서 간접적으로 드러날 뿐이다. 이에 앞선 모든 이야기는 결국 그 사건의 기원을 쫓는 열쇠인 셈이다.
멕시코 주류 백인 가정에서 가정부로 일하는 원주민 여성 클레오(얄리차 아파리시오)의 일상을 차분히 뒤따르는 카메라는, 16세기 스페인·포르투갈의 무차별 정복 이후 500년 동안 뿌리내린 중남미 인종·계급 모순까지 여실히 담고 있다.
잔인한 역사를 되살린 극의 클라이맥스에서 클레오가 악연으로 엮인 원주민 청년과 마주하게 되는 장면은 극중 대사처럼 "아무 것도 없이 자란" 그들의 비극을 직관적으로 전한다.
그 사건 직후 클레오가 겪게 되는 또 다른 비극과 이를 극복해 나가는 과정은, 이 영화가 역사 아닌 개인에 초점을 맞추고 있음을 웅변한다.
영화 '로마'를 접하는 한국 관객들은 여전히 우리네 삶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광주5·18' '제주4·3' 등 권력자들이 피로 물들인 현대사를 떠올릴 법하다. 그 안에서 희생된 개인, 여기서 그치지 않은 채 그 아픔을 딛고 삶을 이어가는 개인을 따뜻한 시선으로 보듬은 서사에는 마음이 크게 움직일 것이다.
오는 12일 극장 개봉·14일 넷플릭스 공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