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독요법. (사진=연합뉴스 제공)
알츠하이머 치매는 독성을 가진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이 뇌 속에 과도하게 쌓이거나 뇌세포의 골격 유지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타우 단백질 이상이 생겨 발병하는 질환으로 알려져 있다.
첫 증상으로는 전화번호나 사람 이름을 잊어버리는 등의 기억장애와 말하기, 읽기, 쓰기 등에 문제가 생기는 언어장애, 방향감각이 떨어지는 시공간능력 저하 등이 대표적이다. 이후 공격적인 행동을 하거나 수면장애, 우울증, 불안, 초조, 환각, 망상 등의 증상을 보이기도 한다.
이런 알츠하이머병을 막기 위해 전 세계 수많은 연구진이 치료제 개발에 나섰지만, 아직 증상 완화에만 그치고 있다.
이에 새롭게 주목받고 있는 게 독감 백신 개념의 '치매 백신'이다. 독감을 예방하기 위해 바이러스 항원을 주사하는 것처럼 알츠하이머병의 항원(아밀로이드 베타 펩타이드)을 주사해 면역 시스템이 작동하게 함으로써 아밀로이드 베타에 대한 항체 생산을 촉진하는 방식이다.
이를 통해 몸속에 쌓인 아밀로이드 베타 찌꺼기(플라크)를 효과적으로 제거하거나 예방함으로써 인지기능 감퇴와 병리적 손상을 늦추는 게 이 백신의 목표다.
하지만 이런 개념의 치매 백신은 인체를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 결과, 참여자의 6%에서 뇌 속 염증이 유발되는 심각한 부작용이 나타나 좀처럼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부작용을 한방에서 대중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봉독(벌침) 성분으로 억제할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제시됐다.
봉독은 그간 한방의 대표 치료법으로 사용됐지만, 최근에는 중증 알레르기 반응인 아나필락시스(anaphylaxis) 쇼크에 의한 사망사고를 일으킨 주범이기도 하다.
경희대 한의과대학(백현정·김영석·심인섭·배현수)·가천대(김연섭)·한국원자력의학원(김진수) 공동 연구팀은 이런 내용의 연구논문을 국제학술지 '사이언티픽 리포트'(Scientific Reports) 최근호에 발표했다고 6일 밝혔다.
연구팀은 봉독침 주사 때 면역력을 높이는 역할을 하는 'PLA2'라는 성분에 주목했다. PLA2는 한때 봉침 부작용의 원인으로 잘못 알려져 왔으나, 최근 들어 오히려 다양한 효능을 낸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연구팀은 알츠하이머 질환을 일으킨 실험 쥐를 대상으로 아밀로이드 베타 펩타이드 항원과 봉독의 PLA2 성분을 함께 주사하고 모리스 수중미로(Morris water maze) 검사를 통해 인지능력 및 기억력을 측정했다. 대조군은 베타 펩타이드 항원만 주사한 쥐들이었다.
이 실험 결과 PLA2를 병행 주사한 쥐들은 아밀로이드 백신만 주사한 그룹에 견줘 인지기능이 정상 쥐에 가까울 정도로 현저히 증가했다. 또 백신요법과 PLA2를 함께 처리한 쥐는 뇌 해마 부위의 아밀로이드 플라크 축적이 90% 이상 줄어든 것으로 분석됐다.
특히 아밀로이드 백신요법에서 나타나는 부작용인 뇌 염증이 PLA2 처리 그룹에서는 나타나지 않았다고 연구팀은 보고했다.
연구 책임자인 배현수 교수는 "살아있는 상태에서 동물의 뇌 활동성을 측정하는 양전자 방출 단층 촬영(PET)에서도 아밀로이드베타 백신과 PLA2를 함께 투여한 그룹은 광범위한 지역에서 뇌 활동이 증가함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배 교수는 "아밀로이드 백신만 처리한 쥐는 절반이 죽었지만, 벌독성분을 함께 주사한 쥐는 모두 생존했다"면서 "이번 실험 결과는 현재까지 근본적인 치료제가 없는 알츠하이머 치매 치료제 및 예방 백신 개발로 이어질 수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