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종영한 KBS2 월화드라마 '최고의 이혼'에서 조석무 역을 맡은 차태현 (사진='최고의 이혼' 제공)
올해 한국 사회에서 가장 뜨거운 감자였던 것이 바로 '노동시간 단축'이다. 휴일을 포함한 7일 동안의 법정 노동시간이 주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줄어든 것이다. 평일 40시간과 연장근로(휴일근로 포함)를 합해 52시간을 넘기지 못하게 됐다. 사업장 규모에 따라 시행 시기는 다르지만, 야근과 밤샘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과로 사회에 균열을 낸 변화였다는 게 중론이다.
노동시간 단축의 여파는 방송가도 뒤흔들었다. 노동시간 단축 예외로 인정되는 특례 업종에서 빠진 까닭에, 방송업은 내년 7월 1일부터 노동시간 단축을 시행해야 한다. 아침에 모여서 다음날 새벽에 헤어지고, 당일 오전에 다시 모여 촬영을 이어가는 드라마 현장은 거대한 변화 앞에 설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드라마 제작 현장에서 초장시간 노동은 현재진행형이다. 희망연대노조 방송스태프지부는 지난달 27일 MBC 월화드라마 '배드파파'가 하루 최장 22시간 40분 등 고강도 노동을 해 왔다고 폭로한 바 있다. 하루 24시간 촬영을 한 OCN '플레이어'를 비롯해 tvN '나인룸', OCN '손 더 게스트', '프리스트' 제작사와 CJ ENM, 스튜디오드래곤이 근로기준법 위반 혐의로 고발당한 것도 불과 지난 10월 30일의 일이다.
차태현이 조석무 역을 맡은 KBS2 월화드라마 '최고의 이혼'은 달랐다. 매번 노동시간을 지킬 순 없었으나 '잠 좀 자고 밥 좀 먹고 싶다'고 호소하는 다른 촬영장에 비해 모범적으로 운영된 편이었다. 차태현이 2개 예능 고정을 하면서 드라마 촬영을 이어갈 수 있었던 것도 '노동시간 단축' 덕이었다.
지난달 30일, 서울 강남구 논현동의 한 스튜디오에서 만난 차태현은 "우리 드라마가 너무 좋은 선례가 됐다"면서도 "너무 화딱지가 났다"고 말했다. 이처럼 가능했는데도 20년 가까이 적정한 노동시간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노컷 인터뷰 ① 차태현 "언젠가는 악역 한 번 하고 죽어야지 생각한다")◇ 연기 시작한 지 20년 넘어 처음 경험한 '노동시간 단축'차태현은 만능 엔터테이너로 불릴 정도로 활동 영역이 넓다. 배우로 데뷔했으나 '아이 러브 유' 등 히트곡을 보유한 가수이기도 하며, '1박 2일'에 고정 출연하며 '라디오스타' 진행을 맡는 예능인이다. '최고의 한방'에서는 연기뿐 아니라 라준모라는 이름으로 연출도 도전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본업이 '연기'라는 것을 항상 잊지 않는 사람이었다. 배우 활동에 지장을 주면 지금 하는 것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최고의 이혼' 들어갈 때 걱정이 든 건 당연했다. 지난해와 달리 고정 예능 2개를 하면서 드라마 촬영이 가능할지 걱정했다. 그런데 그게 됐다.
차태현은 '최고의 이혼' 촬영 현장은 거의 밤샘하지 않고 끝났다고 설명했다. (사진=KBS 제공)
"예능 고정이라는 게 들어갈 땐 섭외 받아서 들어가도, 나올 때 내 맘대로 못 나오더라고요. 대단한 결단력이 있어야 해요. 망하지 않고선 못 나가니까요. 예능은 무조건 끝이 안 좋을 수밖에 없는 게 안타까워요. 진짜 고생들을 어마어마하게 하는데… 제가 '프로듀사'라는 작품을 할 때 '예능의 끝은 항상 이렇다'는 대사를 할 때 너무 공감이 가더라고요. 예능('1박 2일')을 너무 오래 하면서 드라마를 여러 편 해서 나가려 해도 명분이 없어가지고… (웃음) 이번에 두 개 하면서 (드라마도) 해서 그건 진짜 안 될 거라고 했죠. 다음번엔 뭔가 생각하긴 해야 할 것 같아요. 두 개는 아닌 것 같아요. 어찌 됐건 간에 제 본업은 당연히 연기고 드라마와 영화 쪽을 더 많이 생각할 수밖에 없잖아요. 항상 드라마 때가 걱정인 게 그전에 했던 걸 다 못 해요. '1박 2일' 하면 목이 쉬어서 오니까 연기에 바로 지장을 너무 많이 주잖아요. 드라마에서 제가 100을 할 수가 없으니까요. 그래서 두 개 하면서는 당연히 스케줄이 빡빡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근로시간 그거(단축) 하면서 그게 기가 막히게 되더라고요.
우리가 한두 번 고발당하긴 했는데 (웃음) 한 시간 정도 오버된 거였어요. 초반이니까 (다 지키기가) 힘들 수밖에 없잖아요. 어쨌든 우리 드라마가 너무 좋은 선례가 됐어요. 마지막 날까지 거의 어기지 않고 밤샘하지 않고 끝났다는 건데, 이걸 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20년을 안 했다는 게 너무 기분이 안 좋더라고요. 이걸 충분히 할 수 있었는데 무용담처럼 '몇 박 며칠을 샜는가' 이러는 게 얼마나 무식한 짓이에요. 이건(근로시간 단축) 너무너무 좋은 것 같아요. 영화에서는 꽤 전부터 12시간제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드라마도 이젠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거죠."
물론 차태현은 '최고의 이혼' 현장의 특수성이 반영된 것도 잊지 않고 언급했다. 촬영 장소가 아주 많거나 멀지 않았던 점, 동명의 일본 드라마 원작이 있어서 대본 작업이 좀 더 빠르게 진행됐던 점 등이다. 차태현은 이미 6개의 대본을 본 상태로 드라마 출연을 확정했고, 방송을 시작할 10월 초에 대본 10개가 나와 있었다고.
미리 대본이 나와 있는 게 근로시간 단축에서 중요한 부분이라고 강조한 차태현은 "그런 것만 되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본다. 너무 화딱지가 났다. 와, 이럴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걸 안 했다니…"라고 말했다.
◇ 연예대상 언급하자 "자격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차태현은 올해 영화 '신과함께-인과 연' 개봉, 드라마 '최고의 이혼' 출연뿐 아니라 예능 쪽에서도 꾸준히 활동했다. '라디오스타' MC로 안착했고, 유호진 PD의 신작이자 사막을 탐험하는 예능이었던 '거기가 어딘데??'에도 출연했다. 2012년 시즌 2 멤버로 시작한 '1박 2일'은 시즌 3까지 6년 출연 중이다.
자연히 연예대상 얘기를 꺼낼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차태현은 손사래를 쳤다. 그는 "대상은 아니라는 거다. 자꾸 대상 얘기를 하니까… 최우수까지는 예전에 다 받았다. 대상은 거기 후보 오르는 것도 너무너무 싫더라. 약간 제 기준에서는 나는 자격이 별로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제가 부탁해서 대상에 안 올라갔으면 좋겠다고 계속 얘기했다"며 웃었다.
차태현은 KBS2 '1박 2일', MBC '라디오스타'에 고정 출연하고 있다. 유호진 PD의 신작이었던 탐험 중계 예능 '거기가 어딘데'에도 출연했다. (사진=각 프로그램 제공)
"(배우) 이미지 때문이라기보단, 아까도 얘기했지만 저는 언제라도 연기 쪽에 (예능 활동이) 피해가 된다면 그만둬야 하는 상황이잖아요. (그래서) 거기(대상)까진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에요. 대상만 아니라는 거죠. (웃음) 제가 최우수까지는 자격이 된다고 생각해요. 콕 집어서 대상은 아니고, 최우수상까진 써 주세요. (일동 폭소) 예능에서 맨날 웃기만 하고 하는 것 없다고 할 때 진짜 뜨끔하거든요. 더 할 수 있는 게 없어요. (웃음)"
오랫동안 예능을 경험해 온 그는 예능에 나오면서 순발력을 키웠다고 밝혔다. 모두에게 추천할 수는 없어도 장단점이 있는 건 확실하다고. 차태현은 "예능은 뭐랄까, 순발력에 도움이 된다고 해야 하나. 배우는 주어진 거로 많이 하는데, 영화와 달리 드라마는 굉장히 빠른 시간 안에 한꺼번에 몰입해야 하는 게 많아서 순발력도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예능은 어떻게 보면 순발력만 필요하다고 할 정도로 그게 너무 중요하더라"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차태현이 생각하는 단점은 뭘까. 그는 "이미지 때문에 역할에 안 맞는 괴리감? 저는 예능 하면서 했던 작품들이 크게 괴리감 있는 게 아니었는데, 주혁이 형이 연기 때문에 ('1박 2일'을) 나갈 수밖에 없는 걸 너무너무 이해했다. 배우들한테는 단점일 수 있으니까"라고 전했다.
자신이 연예대상 감은 아니라고 딱 잘라 말한 차태현. 그가 바라는 상은 다름아닌 연기상이다. 쌍천만이라는 대기록을 세우며 많은 사랑을 받은 '신과함께'에 주인공 자홍을 맡은 그는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르지 못했다. 어쩔 수 없다, 그럴 수 있다고 이해한다면서도 "도대체 뭘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말에서 아쉬움이 느껴졌다.
◇ 무엇을 하든 본전을 생각하는 차태현의 '책임감'
차태현은 인터뷰에서 종종 '본전'을 언급했다. 대부분 주연을 맡아 작품을 이끌기에, 최소한 손해를 끼치진 말아야 한다는 굳은 마음이 있다고. 영화 '엽기적인 그녀' 이후 쭉 잘 되다가 맞닥뜨린 저조한 시기에 그런 생각을 시작했다.
차태현은 "잘될 때는 잘 모르지 않나. 안 됐을 때 생각보다 너무 안 되는 걸 겪다 보니까, 사람들이 폐인이 되어가는 과정을 보다 보니 '아, 이게 아니네' 하는 생각이 들더라. 영화 주인공을 해서, 또 형이 제작을 하니까 더 그런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이라고 말했다.
혹시 대중의 취향을 파악하는 자신만의 방법이 있냐고 묻자, 차태현은 "그걸 알 수만 있다면 망하지 않을 것"이라고 답했다. 이어, "작품성을 노리는 영화를 한 번도 해 보지 못했다. 제가 했던 작품은 대부분 상업영화여서 항상 목표가 딱 정확하게 있었다. 예능 몇 개 나가고 홍보 이만큼 해야 한다고. 계약서에 쓰여 있진 않지만, 거기(홍보 활동)에 거부감은 전혀 없고 당연하다고 생각한다"며 "저는 작품에 맞는 예능을 고르긴 했다"고 부연했다.
배우 차태현 (사진='최고의 이혼' 제공)
책임감이 강한 것 같다는 말에는 "좋게 포장하면 그럴 수도 있지만 전 그게 너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며 "어찌 됐건 많은 작품을 하다 보니까 그런 생각이 안 들 수가 없더라"라고 말했다.
생활 연기에 강하고 사람들을 울리고 웃기는 일상적인 작품으로 큰 사랑을 받았던 차태현. 등장인물의 대화로 재미를 만드는 쫄깃한 코미디 '완벽한 타인' 이야기가 나오자 "그 영화가 잘 됐을 때 너무너무 좋았다"고 말했다.
"'신과함께'처럼 돈이 들어간 영화는 무조건 잘 돼야 해요. 안 되면 데미지가 크니까, '완벽한 타인', '너의 결혼식' 이런 게 잘됐는데 이게 몇 년 만에 온 거예요. 300~400만 영화가 잘 없었거든요. 완전 대작 아니면 갭(영화 간 체급 차이)이 컸는데 그런 게(흥행작) 딱 나오니까, 진짜 모르겠더라고요. (웃음) 정말 (대중의) 취향을 모르겠다는 것과, 역시 재미있으면 본다는 것?"
올해를 누구보다 알차게 보낸 차태현. 아직 내년에 뭘 할지는 생각하지 않았다. 어떤 작품이 들어올지가 궁금하다고만 전했다. 다만 차태현은 영화 '복면달호', 예능 '라디오스타', 예능 드라마 '최고의 한방' 등을 이야기하며 "전혀 생각하지 않은 일이 들어왔을 때 거기에 약한 것 같다. 거절해야 하는데 무모한 짓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걸 해 보고 싶은 게 있다"고 말했다. 신선한 제안을 수락하게 된다고 밝힌 만큼, 내년에 또 의외의 모습으로 대중 앞에 나타날지 모르겠다. <끝>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