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7일 오후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에서 열린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대한민국 선수단 결단식에 참석한 선수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노컷뉴스)
실력을 겨루는 일을 뜻하는 단어 '시합(試合)'은 일본의 관용구에서 비롯된 대표적인 일본식 표현이다. 일상 생활에서 지금도 종종 들을 수 있지만 널리 쓰이지는 않는다. 경기 혹은 영어 단어 게임(game)으로 대체된다.
그런데 스포츠 경기가 열리는 현장에서 단어 '시합'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다. 10대 어린 선수들도 인터뷰할 때 '시합'이라는 말을 자주 한다. 일본식 표현이 더 익숙했던 옛 지도자와 그 제자들을 통해 이어 내려온 것이다.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이 개최되면 '국위선양'이라는 말을 자주 접한다. '국위선양'은 나라의 권력이나 위세를 널리 드러낸다는 뜻이다. 일본에서 건너온 표현으로 메이지정권을 세계 만방에 알리자는 것이 본래의 뜻이다. 그 배경을 이해한다면 아예 쓰지 않는 게 바람직하다.
지금이라도 당장 쓰지 말아야 할 대표적인 일본식 표현은 '파이팅(fighting)'이라는 구호다.
지난 26일 한국체육기자연맹이 개최한 '바람직한 스포츠 용어 정착을 위한 스포츠미디어 포럼'에서 스포츠 기사에 녹아든 일본식 표현을 바꾸자는 주제로 발표에 나선 홍윤표 OSEN 선임기자는 "'파이팅'은 일본식 조어 '화이토'에서 비롯된 그야말로 국적불명의 용어"라며 "일본에서도 '파이팅' 구호를 쓰지 않는다"고 말했다.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 유도 동메달리스트이자 은퇴 후 스포츠 행정가로 다양한 활동을 펼친 조재기 국민체육진흥공단 이사장은 오래 전부터 '파이팅'이라는 구호를 절대 쓰면 안된다고 주장해왔다.
그는 "'파이팅'은 일제시대 가미카제가 전투에 나가기 전에 외쳤던 말에서 유래됐다. 우리 정신 문화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단어라면 과감하게 버리고 가야 한다"고 말했다.
종목을 막론하고 수많은 지도자와 선수들은 지금도 '파이팅' 구호를 외친다. 선수와 인터뷰할 때 다음 경기 혹은 대회에서 더 잘하겠다는 의미로 "파이팅 하겠다"는 말을 듣는 경우도 많다.
'파이팅'은 영미권에서는 전혀 통용되지 않는 용어다.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도 그 말의 의미를 모른다. 자칫 싸우자는 호전적인 의미로 해석될 여지가 있어 지난 2월 평창동계올림픽 당시 이를 자제하자는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파이팅'은 우리말 '아자' 혹은 '으랏차차'로 바꿔야 한다. 이같은 시도는 예전에도 있었다. 하지만 '파이팅'이라는 구호에 워낙 익숙해졌기 때문에 누구도 쉽게 내려놓지 못했다.
한국체육기자연맹은 "아름다운 우리말 생테계를 오염시키고 있는 잘못된 표현들을 없애고 바른 방향으로 이끌어갈 수 있는 길잡이로 나서자"며 미디어의 임무를 강조했다.
스포츠 현장에서도 올바른 표현을 사용하기 위한 노력이 병행돼야 할 것이다. 더 이상의 대물림은 없어야 한다.
앞으로 주요 스포츠 행사에서 취재진은 선수들에게 '파이팅' 구호와 촬영 자세를 요구하지 않아야 할 것이고 선수들이 '으랏차차'나 '아자'를 외치며 각오를 다진다면 바람직할 것이다.
스포츠 현장 뿐만 아니라 여기저기서 정말 많이 쓰이는 표현이다. 특히 회식과 같은 자리에서 너무 많이 듣는다. 일상에서도 바람직하지 않은 구호를 우리말로 대체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면 체육계의 노력은 의미있는 발걸음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