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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무일의 눈물,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에게 뭔말 들었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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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선 외압으로 두 번 죽이지 마라", "검찰개혁" 요구
문 총장, 국회앞 방문해 피해자들에게 고개숙여 사과
"인권 유린 안되도록 검찰 본연 역할 하겠다" 강조
국회앞 노숙 농성장은 들르지 않고 곧바로 차에 올라
피해자들 총장 사과에 '감사'하면서도 진상규명 촉구

문무일 검찰총장이 27일 오후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 피해자들을 만나며 고개를 숙이고 있다. (사진=윤창원기자)

 

"지금의 검찰보다는 이전의 검찰에게 사과를 받고 싶다."

형제복지원 인권유린에 대해 한 세기 이상 외면했던 검찰을 대표해 피해자들에게 사과하기 위해 문무일 검찰총장이 27일 피해자들과 만났다.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이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 통과를 요구하며 노숙 농성을 하고 있는 곳은 국회 정문 오른편 모퉁이지만 문 총장과 피해자들의 만남은 국회 건너편에 비교적 최근에 지어진 깔끔한 한 건물내 사무실에서 이뤄졌다.

문무일 총장은 예정보다 약 30분 일찍 도착해서 비공개 간담회를 가지려고 했지만 주변이 어수선하고 기자회견을 기다리던 취재진들이 많아 바로 기자회견에 들어갔다.

형제복지원 피해 생존자(실종자·유가족) 모임 한종선 대표가 먼저 말문을 열었다. 한 대표는 문 총장의 사과에 대해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면서도 "책임은 (과거) 검찰에 있기 때문에 지금의 검찰보다는 이전의 검찰에게 사과를 받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서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는 피해자들의 증언과 국가 공권력에 대한 원망이 이어졌다.

문무일 검찰총장(가운데)이 27일 오후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 피해자들의 사연을 들으며 눈물을 보이고 있다. (사진=윤창원기자)

 

1980년대 초반에 세 차례나 형제복지원에 끌려갔던 김대호씨는 당시 잡혀감과 탈출 과정을 얘기한 뒤에 "구타와 폭행, 감금을 생각하면 치가 떨린다. 배우지 못한 게 진짜 한스럽다"면서 울분을 터뜨렸다.

1980년부터 5년간 형제복지원에 있었다는 박수미씨는 2012년부터 진상규명을 요구해 오면서 가족들도 너무 힘들었다는 딸의 편지를 읽어 내려갔다.

1980년에 형제복지원 직원들을 인질로 잡고 문제 해결을 시도해 보기도 했었다는 강기순씨는 "우리가 국내에서 벌어진 끔찍한 사건을 처리하지 못한다면 위안부 피해 할머니, (강제징용) 노동자들에게는 어떻게 보상을 마련하는 따뜻한 국가가 되겠습니까"라고 절규했다.

이어진 문 총장의 사과문 발표. 하지만 인권의 최후 보루를 자처하면서도 제 역할을 못했던 검찰의 민낯에 대한 부끄러움인지, 아니면 반성의 각오가 너무 굳어서인지 첫 말을 떼는 데 한참의 시간이 걸렸다. 이후 이어지는 말도 제대로 잇지 못했다.

문 총장은 "그때 검찰이 진상규명을 명확히 했다면 인권 침해가 밝혀지고 후속 조치도 밝혀졌을 것입니다. 하지만 검찰은 밝히지 못했습니다. 마음깊이 사과드립니다"고 울먹였다.

특히 "인권이 유린되는 사태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검찰 본연의 역할에 최선을 다하도록 하겠다"고 다짐하는 부분에서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처럼 위태로와 보이기도 했다.

사과문 발표가 끝나자 한종선 대표가 검찰에 대한 요구 사항을 전달했다.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 제정, 인권유린사건에 대한 처벌, 윗선의 외압을 받아 두 번 죽이지 말 것 등이었다.

한 대표는 피해 생존자에 대한 끊임없는 사과와 검찰 개혁도 주문했다. 그러면서 검찰이 피해 생존자에게 사과를 함과 동시에 가해자들에게는 엄벌을 내릴 수 있는 검찰이 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문무일 검찰총장이 27일 오후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 피해자들의 사연을 듣고 있다. (사진=윤창원기자)

 

형제복지원 피해자 국회앞 노숙 농성장소

 

회견이 끝난 뒤 문 총장은 피해 생존자들과 비공개 회담을 진행했는데 꽤 오래 걸렸다. 피해 생존자들 사이에서는 검찰 총장이 사과를 한 것은 의미가 있지만 진상규명에 대한 확실한 뭔가가 있어야 하지 않겠냐는 불만이 표출됐다.

피해 생존자들과 간담회를 마친 문 총장은 국회앞 노숙 농성장소를 방문하지 않고 곧바로 차에 올라 어디론가로 향했다.

형제복지원 사건은 1986년 아시안게임, 1988년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전두환 정권이 '안전한 사회, 복지강국'을 기치로 거리 환경을 정돈하고 부랑인에게 복지를 제공한다며 진행한 대규모 인권유린 사건이다.

정부와 지방정부, 경찰, 검찰의 묵인 아래 1975년부터 1987년 복지원 폐쇄 때 까지 3만명이 강제 수용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상습적인 폭행과 성폭행, 비인간적인 수용 조건 등으로 인해 기록된 사망자만 513명인 최악의 사건이었다.

현재 국회에는 진선미 의원(현 여성가족부장관) 등이 발의한 형제복지원 진상규명 특별법이 발의돼 있지만 큰 진전을 보이지는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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