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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거리의 만찬', 따뜻한 시사 토크쇼 '그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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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컷 리뷰] 파일럿에서 정규 편성된 KBS1 '거리의 만찬'
박미선-김지윤-김소영 세 여성 MC의 '경청'과 '공감'
모든 의견 똑같이 중요하게 판단하지 않은 선택 인상적

지난 16일 첫 방송된 KBS1 시사 토크쇼 '거리의 만찬'은 장애인 특수학교 '서진학교' 건립과 발달장애아를 키우는 엄마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사진='거리의 만찬' 캡처)

 

"이 프로그램은 여러분의 수신료로 만들었습니다."

16일 정규 방송으로는 처음으로 시청자들을 만난 KBS1 새 시사 토크쇼 '거리의 만찬'에서 제작진 소개가 나오기 직전에 나온 자막이다. KBS 프로그램 마지막을 장식하는 익숙한 문구였는데도, 새삼 새롭게 느껴졌다. 파일럿 당시에도 나왔던 '오랜만에 수신료가 아깝지 않았다'는 시청자 반응에 깊이 동조했기 때문이다.

'거리의 만찬'은 각기 다른 분야에 있는 세 여성이 시사 현장을 직접 찾아 이야기를 풀어내는 프로그램이다. 2부작 파일럿에서 이미 손발을 맞춘 바 있는 방송인 박미선과 정치학 박사 김지윤이 그대로 가고, '뉴스투데이', 주말 '뉴스데스크' 등을 진행하며 MBC 간판 아나운서로 활약했다 퇴사한 방송인 김소영이 합류해 새로운 조합이 만들어졌다.

짤막한 소개글만으로도 이 프로그램의 새로움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일단 지상파 시사 프로그램의 MC 전원이 여성이다. MC가 다인원일 때 전원 여성인 프로그램은 비지상파에서나 찾을 수 있고, 그것도 예능에 한정돼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단연 돋보이는 부분이다. 두 번째로, 현장을 직접 찾는다. 해당 분야에 정통한 사람이 스튜디오에서 '현장'을 말하는 경우는 많았지만, 더 적극적으로 밖을 나선다는 점이 다르다.

첫 회의 제목은 '아주 보통의 학교'였다. 지난해 많은 사람을 놀라게 한 '장애아 학부모들의 무릎 호소'가 나오게 된, 강서구 특수학교 서진학교를 둘러싼 이야기였다. 장애아를 키우는 부모들은 "(주민들이) 지나가다 때리셔도 맞겠다. 그런데 학교는 절대로 포기할 수 없다"며 호소하고 급기야 무릎을 꿇었다.

방송은 발달장애아를 키우는 엄마들의 이야기를 잘 듣는 데에 오랜 시간을 할애했다. 시간제한 때문에, 형평성의 이유로, 충분히 발언할 시간이 주어지지 않아 자꾸 말허리가 잘리는 풍경은 찾아볼 수 없었다. 묵묵히 듣기, 동의를 표하는 고개 끄덕거림과 맞장구, 다른 이의 이야기에 집중해야만 나올 수 있는 '내 이야기'가 함께였다.

이처럼 '거리의 만찬'은 주어진 시간을 최대한 활용해 '들었고', 그 덕에 '서진학교 설립 논란의 시작부터 현재 상황까지 차근차근 짚어나갈 수 있었다. 2011년 9월 한 초등학교 폐교가 결정됐고, 2013년 특수학교 설립 공고가 났는데, 갑자기 2016년 총선 때 새누리당 김성태 의원이 한방병원 설립을 공약해 주민 사이에 첨예한 대립이 일어난 것이었다.

'거리의 만찬'에 나온 강서구 특수학교 서진학교 건립 반대 주민들의 주장과 발언 (사진='거리의 만찬' 캡처)

 

방송엔 특수학교 건립 반대 주민들의 주장도 빠지지 않고 나왔다. 서울시 25개 자치구 중 8개 자치구에는 특수학교가 한 군데도 없는데 이미 교남학교 1곳을 가진 강서구에 왜 또 지어야 하는지, 허준 테마 거리와 박물관에 한의사협회까지 있는 동네에 무엇이 더 효율적일지 묻는 이들. "강서구에 주민 기피시설이라고 하는 건 죄 모여 있더라"라고 하면서도 특수학교를 한 번도 '혐오 시설'이나 '기피 시설'이라고 한 적이 없다고 강변하거나, 님비 현상이라는 비판에 "당신들 집 앞에 한 번 세워"보라고 맞받는 이들까지.

하지만 '거리의 만찬'은 반대 의견을 공평하게 소개한다는 명분 하에 허위 정보와 가짜 뉴스를 통해 혐오를 전시하도록 내버려 둔 KBS1 '심야토론'의 길을 가지는 않았다. 대신, '모든 의견이 동등한 비중으로 중요하지는 않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새로움을 꾀했다.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가까운 곳에서 온전히 교육받을 권리를 박탈해야 한다고, 장애아를 가진 건 개인의 문제이니 '당신이 알아서 해'라고 윽박지르는 이들이 존재하는 사실을 숨기지 않으면서도, 무엇이 더 '모두에게 나은' 방향인지를 분명히 전했기 때문이다.

MC들의 내공이 자연스럽게 발휘된 부분은 바로 이 지점이었다. 박미선은 "왜 반대하지? 그냥 학교인데?", "학교라는 건 기본적으로 당연히 다녀야 하는 것"이라며 기본권의 의미를 되새겼고, 김지윤은 학교 부지 소유와 운영 권한은 서울시교육청이 가지기에 한방병원 설립 공약은 애초에 실현 가능성이 작았다는 걸 밝혔으며, 김소영은 반대 주민과 '합의'를 이뤄낸 게 또 다른 특수학교를 지을 때 나쁜 선례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짚었다.

'거리의 만찬'은 방송인 박미선과 김소영, 정치학 박사 김지윤까지 MC 전원이 여성이라는 점이 특징이다. (사진='거리의 만찬' 캡처)

 

무엇보다 30년차 베테랑 박미선의 존재는 든든했다. 아이를 키우는 엄마 입장에서 가장 깊이 공감함으로써, 각자 이야기를 꺼내놓기 편안한 분위기를 만드는 데 일등 공신이었기 때문이다. 그간의 활동 영상을 보면서 우는 엄마들 틈에서 같이 울고는 "화장 다 지워졌네. 딸기코가 됐다"며 자연스레 분위기를 풀어주는 진행과 "이 사회가 보호해줘야 하는 사람들인데 뱉어내고 있다"는 예리한 진단, 두 가지를 동시에 해낸 건 박미선이었다.

김지윤은 장애아들의 평균 등교 시간이 왕복 1시간은 족히 넘는다는 통계나, 장애인들의 권리와 소통 방법을 비장애인에게 철저히 교육하는 해외 사례 등을 전달해 논의를 풍부하게 했다.

'엄마가 목숨 걸고 지켜줄게'라는 플래카드 문구에서 짐작할 수 있듯 발달장애인의 '인간다운 삶'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친 엄마들을 보며 "(세상이) 좋아지려면 멋진 엄마들한테만 기대면 안 될 것 같다"고 핵심을 정확히 짚는 김소영의 마무리 역시 꼭 필요한 부분이었다.

당사자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듣고, 따뜻한 밥으로 그들을 독려하는 '거리의 만찬'의 마지막 순서는 MC들이 오늘 무엇을 느꼈는지를 나누는 것이었다. 이때 김소영은 장애인을 혐오하지는 않지만 '남 일'이라고 여겼던 태도를 반성한다고 고백했고, 김지윤은 '장애'라는 정체성만 있는 것처럼 여겨지는 장애인들이 가진 고유하고 개별적인 특성을 바라봐야 한다고 제안했다.

시사를 다루면서도 다큐멘터리와 예능의 요소를 두루 갖춘 '거리의 만찬'의 첫인상은 '따뜻하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한 편을 다 보고 나니 그 말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의견'의 탈을 쓴 함량 미달의 억지 주장과, 더 시간을 들여 들어야 하는 이야기를 동일 선상에 놓지 않은 담대함이 가장 흥미로웠다. 앞으로 '거리의 만찬'이 어디에 시선을 두고 귀 기울일지 궁금해진다.

'거리에 만찬'에 나온 발달장애아를 키우는 엄마들 (사진='거리의 만찬'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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