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의 대결' 2018 한국시리즈에서 치열한 포수 대결을 펼치고 있는 두산 양의지(왼쪽)와 SK 이재원.(사진=두산, SK)
다소 밀릴 것이라던 예상과 다르다. 비룡 군단이 최강 두산과 올해 프로야구 마지막 승부에서 거푸 우세를 점하고 있다.
SK는 7일 인천 SK 행복드림 구장에서 열린 2018 신한은행 마이카 KBO 리그 두산과 한국시리즈(KS) 3차전에서 7 대 2로 이겼다. 1승1패로 맞선 가운데 거둔 귀중한 승리다. 역대 KS에서 1승1패 뒤 3차전 승리팀은 15번 중 13번 우승했다.
당초 SK는 전력 열세로 KS에서 밀릴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올해 두산은 정규리그에서 2위 SK와 무려 14.5경기 차로 앞선 압도적 우승을 차지했다. 역대 팀 타율 1위(3할9리)의 강타선에 확실한 원투펀치를 앞세워 KS를 리드할 것이라는 전망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반대로 흐르고 있다. SK는 1차전에서 가을 사나이 박정권의 역전 결승 2점 홈런과 3차전에서 4번 타자 제이미 로맥의 선제 3점포, 쐐기 솔로포 등 홈런의 힘으로 승리를 거뒀다. 팀 홈런 1위(233개)다웠다.
다만 SK의 2승1패에는 대등한 포수 대결도 빼놓을 수 없다. 두산은 공수 겸장의 최고 포수 양의지를 보유한 상황. 양의지는 '곰의 탈을 쓴 여우'라는 별명답게 노련한 투수 리드와 올해 한때 4할을 상회하는 타율로 맹위를 떨쳤다. 2016년 KS MVP에 빛나는 경험까지 이번 가을야구에서도 존재감을 뽐낼 것으로 기대됐다.
그러나 SK 이재원이 안방마님 대결에서 결코 밀리지 않는 형국이다. 이재원은 1차전에서 3선발 박종훈, 필승 불펜과 함께 두산 강타선을 3점으로 묶었다. 3주 동안 충분히 쉬면서 체력을 비축한 두산은 에이스 조시 린드블럼과 필승조가 나섰지만 7실점했다.
1차전에서 SK는 박종훈이 4⅓이닝 2실점으로 물러났지만 이후 1실점으로 막았다. 김택형이 볼넷 2개 1실점으로 흔들렸으나 앙헬 산체스(1⅔이닝)-김태훈(2이닝)-정영일(1이닝) 등이 무실점을 합작했다. 이재원의 좋은 리드가 뒷받침됐다.
3차전에서도 이재원은 선발 메릴 켈리의 7이닝 2실점(비자책) 역투를 이끌며 승리의 발판을 놨다. 8회는 승부에 쐐기를 박는 2점 홈런까지 날렸다. KS 3경기 타율 1할6푼7리에 그쳐 있지만 이 한 방으로 아쉬움을 날렸다. 수비에서 좋은 활약을 펼치고 왼 뒤꿈치가 성치 않은 점을 감안하면 양의지에 전혀 손색이 없다.
'감독님, 좋았어요' SK 이재원이 7일 두산과 한국시리즈 3차전에서 8회 쐐기 2점 홈런을 날린 뒤 더그아웃과 팬들을 향해 엄지를 치켜세우고 있다.(인천=SK)
3차전 승리 뒤 이재원은 "켈리의 속구에 두산 타자들이 대비할 것으로 예상해 변화구도 많이 썼는데 결과가 좋았다"고 이날 리드를 설명했다. 이어 "전력분석팀의 자료가 큰 도움이 됐고, 켈리의 구위가 워낙 좋았다"며 공을 돌렸다.
사실 이재원에게 올해 KS는 첫 주전 출전이다. 2006년 1차 지명으로 입단한 이재원은 그동안 '전설' 박경완이라는 큰 산과 조인성, 정상호(현 LG) 등에 밀렸다. 2008년과 2009년, 2012년 KS는 출전 기회가 많지 않았다.
이에 대해 이재원은 "정말 침착하려고, 들뜨지 않으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안방마님이 흔들리면 팀 전체가 흔들리기 때문이다. 이재원은 "우리 투수와 야수를 믿고, 또 홈 구장의 유리함을 최대한 살리려고 한다"고 강조했다.
상대 포수 양의지는 2006년 입단 동기다. 당시 양의지는 2차 8라운드로 계약금 3000만 원을 받았다. 2억5000만 원 계약금을 받았던 이재원과 기대감이 달랐다. 그러나 이제 둘의 위치는 역전됐다. 이재원도 리그 대표 포수지만 양의지에는 살짝 못 미친다.
올해 아시안게임 대표팀에서도 양의지는 주전이었고, 이재원이 백업이었다. 올 시즌 뒤 열리는 FA(자유계약선수) 시장에서도 양의지는 총액 100억 원이 넘는 최대어로 꼽힌다. 이재원도 좋은 포수지만 100억 원에는 이르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재원은 "양의지와 대결은 부담되는 게 사실"이라면서 "워낙 위에 있는 선수라 비교 대상은 아니다"고 말했다. "나는 열심히 투수의 공을 받아주고 도와주는 입장이지만 양의지는 그 이상을 넘어선 대단한 포수"라는 것이다. 이재원은 "친구지만 항상 배우고 있다"면서 "주위에서는 포수 라이벌 대결이라고 하지만 그건 아닌 것 같다"고 겸손하게 말했다.
양의지는 이번 KS에서도 타율 4할4푼4리(9타수 4안타) 2타점 4볼넷 출루율 6할1푼5리로 맹활약하고 있다. 화려한 공수 겸장 포수의 명성을 떨친다. 양의지는 2년 전 KS에서도 타율 4할3푼8리 1홈런 4타점으로 MVP에 올랐다.
두산 포수 양의지는 노련한 투수 리드와 함께 여느 팀 4번 타자 못지 않은 타격 솜씨까지 갖춘 공수 겸장 선수로 꼽힌다.(사진=두산)
이에 비해 이재원은 조연을 자처한다. "PO 당시 목표가 '내 이름이 전혀 드러나지 않는 것'이었다"면서 이재원은 "나는 있는 듯 없는 듯 해야 좋게 가는 것이고 내가 부각되면 팀이 흔들리는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SK는 제이미 로맥과 최정, 한동민, 김동엽 등 거포 해결사들이 즐비해 양의지가 타격에서도 힘을 내야 하는 두산과는 다소 다른 상황이다.
KS에서도 마찬가지다. 이재원은 "지금도 나는 있는 듯 없는 듯해야 한다"면서 절대적으로 다른 선수가 더 부각되면 좋겠다는 게 내 생각"이라고 강조했다. 종목은 다르지만 전설의 농구 만화 '슬램덩크'의 북산고 센터 채치수와 라이벌인 능남고 센터 변덕규가 떠오르는 대목이다.
변덕규는 공수에서 모두 정상급 기량을 갖춘 채치수에 다소 밀렸다. 그러나 채치수가 고교 최고 선수 신현철(산왕공고)에 고전하자 변덕규는 "화려한 기술을 가진 도미가 아닌 진흙투성이 가자미가 돼야 한다"고 조언한다. 또 그야말로 만화적인 설정이지만 농구 코트에서 생선회 밑에 까는 무를 직접 썰기도 한다. 회를 돋보이게 하는 무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 이에 각성한 채치수는 궂은 일을 도맡으며 팀 승리의 발판을 놓는다.
이재원이 '가자미와 무'의 역할을 자처하는 것이다. 8일 4차전 선발인 1년 후배 김광현에 대해 이재원은 "광현이는 팀의 중심이고 리더"라면서 "절대 신뢰하면서 제대로 4차전을 치르겠다"고 다짐했다. 김광현을 비롯한 팀원들을 돋보이게 하려는 것이다.
현재 이재원은 넥센과 PO에서 주루 플레이 도중 입은 왼 뒤꿈치 부상으로 정상이 아니다. 수비는 그럭저럭 견디지만 타석에서 디딤발에 힘이 실리지 않는다. 이재원은 "현재 몸 상태는 40%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면서도 "그러나 지금은 뼈가 부러지지 않는 이상 뛰어야죠"라고 다짐했다. 이재원의 묵묵한 희생과 투혼이 화려한 결실로 이어질지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