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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 보도 유감…"기자들, 왜 이 기사 쓰는지 생각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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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미투'(#MeToo) 언론 모니터링 결과 발표회
시사토크, '가해행위 자세히 묘사'가 가장 많아
연예정보, '성추문' 등 가해행위 희석하는 표현 가장 많아
온라인 뉴스, 성폭력 사건 선정적 보도 가장 많아
"최악의 보도는 피해자에게 가장 큰 상처를 주는 보도"

(사진=자료사진)

 

올해 1월 말, 현직 검사인 서지현 검사는 안태근 전 검사장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고 밝혔다. 이를 시작으로 분야를 막론하고 '미투'(#Me_Too, '나도 말한다'는 뜻으로 성폭력 피해자가 자신의 경험을 밝히는 것)가 이어졌다.

피해자들이 공론화한 피해 사실이 '성추행·성폭력'이라는 점에서 2차 가해를 유발하지 않도록 신중한 보도가 이뤄져야 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피해 사실을 지나치게 자세히 묘사하거나, 피해자의 얼굴과 목소리가 드러나지 않게 해 달라는 요구를 무시하고 보도하거나, 가해자로 지목된 이와 사적 관계가 있는 진행자의 프로그램에서 가해자를 옹호하거나, 최대한 자극적인 제목을 뽑았다. '미투' 당사자나 이들은 지지하는 이들이 줄곧 '언론의 2차 가해 중단'을 요구해 온 이유다.

지난달 30일, 서울 마포구 합정동 미디어협동조합 국민TV 카페 온에어에서 '미투'(#MeToo) 관련 언론 모니터링 결과 발표회가 열렸다.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는 올해 2월, 3월, 7월 3달간 지상파 3사(KBS·MBC·SBS)와 종편 4사(TV조선·JTBC·채널A·MBN)에서 방송된 시사토크-연예오락 프로그램 총 693편(시사토크 18개 총 633편, 연예오락 6개 61편)을 모니터했다. 온라인 기사의 경우, 같은 기간 포털 네이버와 다음 랭킹뉴스 30위까지 중 미투 기사를 추려 분석했다. 3달 동안 30위 안에 든 총 1058개의 기사 중 문제 항목 건수는 356건(33.7%)이었다.

민우회는 문제 유형을 14가지로 분류했다. △성폭력 사건을 선정적인 가십으로 다루는 제목 사용 △논점 없이 가해행위만을 자세히 묘사 △성폭력을 범죄가 아니라 수치스러운 일로만 다룸 △성폭력을 개인의 일탈 및 특정 집단의 문제로 다룸 △성폭력 사건을 다각도로 취재·분석하지 않고 가해자 입장을 받아쓰기 △성폭력 사건과 무관한 가해자의 성격·평판을 부각해 가해자가 억울해 보일 수 있게 함 △가해자 업적, 가족 고통 언급하며 동정론적 태도로 보도 △진행 중인 사건에서 피고인과 피고인 증인 측 발언을 검증 없이 보도 △성폭력을 정치적 공방의 소재로 다룸 △성폭력 사건을 연애·성적인 관계로 바라봄 △성추문, 나쁜 손 등 성폭력 가해행위의 폭력성을 희석하는 용어로 사건이나 가해자 지칭 △성폭력 사건과 무관한 피해자 성격, 이전 성 경험, 평판 등을 부각해 증언 진실성 폄훼 △형사처분 가능한 성폭력만 문제라는 태도로 보도 △기타 등이다.

시사 프로그램의 경우 가해행위를 자세히 묘사한 유형이 60건으로 14.9%를 차지해 1위였다. 2번째로 많은 것은 성폭력을 정치 공방으로 본 유형(47건, 12.2%)이었다.

민우회가 가장 나쁜 방송으로 꼽은 것은 SBS '김어준의 블랙하우스'였다. 과거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를 같이 진행한 정봉주 전 의원이 성추행 가해자로 지목되자, '블랙하우스'는 정 전 의원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증거를 공개하는 등 옹호 조의 방송을 해 거센 비난을 받았다. 결국 제작진은 공식입장과 방송을 통해 사과했다. 방심위는 이 방송분에 법정제재 '관계자 징계'를 내렸다.

지난 3월 22일 방송된 SBS '김어준의 블랙하우스'에서는 성추행 가해자로 지목된 정봉주 의원의 주장을 검증하겠다며, 성추행이 벌어진 날 찍혔다는 수백 장의 사진을 공개한 바 있다. 당시 가해자와 친분이 있는 사회자의 프로그램에서 가해자 논리에 힘을 보탠다는 비판이 거셌고, 결국 제작진은 공식 사과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역시 해당 방송에 '관계자 징계'라는 중징계를 내렸다. (사진='블랙하우스' 캡처)

 

연예정보 프로그램은 가해행위를 희석하는 '성추문', '검은 입', '나쁜 손' 등의 표현을 쓰는 문제가 제일 잦았다. 총 67건 중 11건으로 16.1%였다. SBS '본격연예 한밤'(3월 6일)의 "유명인들의 성추문 소식", KBS2 '연예가중계'(3월 2일)의 "충격적인 성추문으로 얼룩진 문화예술계"라는 표현이 대표적이다.

이밖에 채널A '풍문으로 들었쇼'(7월 2일)는 배우 조재현의 성폭력 사건을 다루면서 양쪽 주장이 엇갈리고 있다며 동등한 비중으로 다뤘다. TV조선 '별별톡쇼'(3월 2일)는 가해행위를 자세히 묘사하고 화면으로 구성하기까지 했으며, '시청자 여러분도 판단해 보시기 바랍니다'라는 자막을 띄웠다.

온라인 기사 중 가장 자주 나타난 문제 유형은 성폭력 사건을 선정적으로 보도한 것으로 16%(57건)였다. 두 번째로 많은 것은 성폭력 가해행위의 폭력성을 희석하는 용어 사용으로 14%(50건)였다.

[검은 손·나쁜 입으로 울고 웃겼나… 연예계 덮친 '미투'](매일경제, 2월 23일), ['성추문' 오달수 "난 이미 덫에 걸린 짐승처럼 피폐해졌다"](뉴스엔, 2월 28일), [#미투 한달, 교수뿐 아니라 학생도 '몹쓸짓'… 개강 앞둔 대학가 폭로 이어져](문화일보, 2월 28일), ["너도 아빠같은 놈에게 당해봐야" 비뚤어진 분노](동아일보, 3월 12일), [강의 중 '여자 X먹는 법' 소개한 국민대 교수](국민일보, 3월 16일)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 "가이드라인, 모니터가 아니라 제제와 행동 필요할 때"

이날 행사의 2부는 '제대로 된 성폭력 사건 보도는 어떻게 가능할까'라는 주제로 토크가 이뤄졌다. '미투 보도를 통해 본 한국 저널리즘의 관행과 조직'을 연구한 김세은 강원대 신방과 교수, 여성가족부와 '성폭력 성희롱 사건 이렇게 보도해주세요'를 함께 만든 이소라 여성노동법률지원센터 연구위원장, '미투'를 '나는 고발한다'로 기술하는 등 눈에 띄는 보도를 해온 경향신문의 남지원 기자, 이번 모니터링 작업에 직접 참여한 주정순 미디어세상 열린사람들 운영위원이 참여했다.

사회를 맡은 윤정주 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소장은 자신이 본 최악의 보도로 채널A '풍문으로 들었쇼'를 들었다. 가해자와 피해자 얘기를 나란히 놓고 구성한 데 이어, 권투 링에 올라갈 때 종소리를 넣은 점이 문제라고 봤다.

윤 소장은 "가해자와 피해자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서 링에서 한 번 싸워봐라, 진실 공방해 보지 뭐, 이런 의미밖에 담지 않고 있다고 봐서 정말 나쁘다고 생각했다"고 부연했다.

주정순 운영위원은 JTBC '정치부 회의'를 예로 들었다. 주 위원은 "당시 어떤 기자가 피해 상황을 언급해야 하는데 머뭇거리자, 부장 기자가 '순진해서 이런 얘기 잘 못 한다'고 말했다. 충격이었다. (피해자의) 피해 사실이 부끄러운 건가. 또 이걸 어떤 목적으로 보도하는 건가 싶었다. (미투가) 가볍게 얘기되는 걸 보고"라고 전했다.

지난 6월, 한국기자협회와 여성가족부는 '성폭력·성희롱 사건, 이렇게 보도해 주세요!' 책자를 발간했다. (사진='성폭력·성희롱 사건, 이렇게 보도해 주세요!' 캡처) 확대이미지

 

이소라 연구위원장은 "어떤 걸 최악의 보도라고 할 수 있을까. 피해자에게 가장 큰 상처를 주는 보도가 가장 최악의 보도"라며 "저는 기자들이 도대체 이 기사를 왜 쓰는가에 대해 생각했으면 좋겠다. 공적인 지면 아닌가. 일기장이 아니라. 개인적인 생각이 아니라 보도할 가치가 있는가, 이 사건이 사회적으로 같이 얘기할 이유가 있는 사건인지를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위원장은 "본인이 쓰는 기사가 어떤 영향을 끼칠지 한 번쯤은 생각했으면 좋겠고 내가 잘못된 기사를 양산했는지 스스로 모니터링했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그러면서도 "의식 있으신 분들이 물꼬를 터주면 (더 나은 보도가) 영 가능성 없지는 않다고 본다. 젊은 분들이 패기 이게 문제를 제기해 주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김세은 교수는 계속해서 '문제적 보도'가 나오는 이유로 여성 기자들의 수가 적다는 점을 들었다. 김 교수는 "2000년대 초반에 들어간 여성 기자들이 많은데, 그들이 지금 차장급이다. 문제는 그들은 편집회의에 안 들어간다는 것"이라며 "발제를 올리면 그걸 쓰게 하느냐, 어디에 배치할 것인가 등 기사 결정하는 권력을 아직 여기자들이 가지지 못했다"고 분석했다.

김 교수는 "기자들은 '내가 왜 이 기사를 쓰지?', '이 기사가 사회적으로 어떤 파장이 있을까?', '피해자가 2차 피해를 입을까' 하는 생각을 잘 못 한다"며 "속보 경쟁 위주이다 보니 기자들은 습관적으로 기사를 빨리 쓰고, 성찰하지 않는다. 이게 언론사 조직 문화의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기자나 언론은 한 덩어리로 보이지만 사실 균질적이지 않다"고 말문을 연 남지원 기자는 "팩트를 최대한 수집하고, 마감을 반드시 맞춰야 한다는 도제식 교육을 받았다. 그러다 보니 (타사보다) 하나라도 더 써야 하는 거다. 이럴 때 피해자에게 상처 주는 보도가 나올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남 기자는 현재 내부 분위기가 달라졌다고 전했다. 그는 "여성 이슈를 단순한 사건 사고가 아니라 구조적 문제로 보기 시작한 게 짧게 보면 미투 운동, 넓히면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이었던 것 같다"며 "(성폭력 이슈는) 여기자들이 다룬다는 고정관념이 있었는데 이번에 많이 깨진 것 같다. 회사 전체가 달려들어야 할 이슈라는 것을 인지했다"고 밝혔다.

실제로 언론계에서는 작게나마 변화가 일어나기도 했다. 국가기간뉴스통신사 연합뉴스는 여성 차별적인 표기를 하지 않기로 지난달 결정했다. 남성은 괄호 속에 나이만 쓰고 여성은 괄호에 나이와 '여'라는 성별을 표기한 것을 고치게 한 것이다.

지난달 30일, 서울 마포구 합정동 미디어협동조합 국민TV 카페 온에어에서 '미투'(#MeToo) 관련 언론 모니터링 결과 발표회가 열렸다. (사진=한국여성민우회 제공)

 

더 나은 보도를 끌어내기 위해서 어떤 게 필요할까. 주 위원은 "순위권에 없더라도 (괜찮은) 기사를 발굴하는 작업도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 위원장은 "시민단체는 좋은 기사 발굴, 모니터링을 통해 지켜보고 있다는 부분 강조해야 할 것 같다. 기자들은 피해자가 존재하는 사건에서도 양쪽 당사자 입장을 50%씩 쓰는 게 맞는지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라며 "가이드라인과 모니터링이 아니라 제재와 행동이 필요한 게 아닌가"라고 전했다.

김 교수는 "팩트(fact)와 진실(truth)은 다르다. 팩트를 넘어서는 기자를 길러내는 언론사가 있어야 하고, 그런 기자가 되려면 스스로 그만큼 노력하고 책임져야 한다. BBC의 가이드라인에 절대 중립(neutral)이란 표현은 안 나온다.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의 편에 서서 생각해야 한다고 나와 있다"며 "언론이 중립이어야 한다는 얘기는 언론으로 하여금 많은 책임 회피를 하게 한다"고 비판했다.

윤 소장은 "이제 질문하는 방식을 바꿔야 한다. 피해자에게 얼마나 피해를 입었나, 얼마나 거절했나를 묻는 게 아니라 가해자에게 왜 위력을 썼나, 얼마나 동의를 구했느냐 이런 식으로 물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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