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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고건축 찍는 헬렌 비네 "돌과 나무 강렬한 만남에 끌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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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11-01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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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토어·하디드·리베스킨트 등 건축 거장들과 협업한 스위스 사진가
작년부터 병산서원·종묘 촬영…"책 출간해 한국건축 유럽에 소개 기대"

헬렌 비네가 촬영한 병산서원 [헬렌 비네·아트선재센터 제공]

 

서원을 병풍처럼 에워싸던 산은 안개에 잠겼다. 2층 누마루는 하늘과 땅을 가르고 잇는다. 인적은 없으나 공허하지 않다. 조선 중기 문신 서애 류성룡과 셋째아들을 배향한 안동 병산서원의 어느 날 풍경이다.

한국 서원 건축의 백미로 꼽히는 곳을 이렇게 담백하게 담아낸 이는, 스위스 사진작가 헬렌 비네(59)다.

이탈리아 로마에서 사진을 공부한 비네는 1980년대 건축가인 남편 라울 분쇼텐과 영국 런던으로 이주하면서 건축사진 세계에 발을 들였다. 페터 춤토어, 자하 하디드, 다니엘 리베스킨트 등 세계에서 몇 손가락에 꼽히는 건축가들이 그를 찾으면서 명성은 높아졌다. 2015년에는 미국 건축전문 사진작가 줄리어스 슐만(1910∼2009)을 기리는 상을 받기도 했다.

유수 건축물을 촬영해온 비네는 요즘 한국 고건축에 빠져 있다. 한 기업 후원을 받아 지난해부터 병산서원을 촬영했고, 요즘은 종묘 작업 중이다.

지난달 30일 서울 종로구 소격동 아트선재센터 강연에서 만난 작가는 "한국 전통건축이 보여주는 돌과 나무의 강렬한 만남에 끌렸다"고 털어놓았다.

"중국과 일본 건축도 촬영한 적이 있지만, 한국은 매우 달라요. 자연과 물질이 맺는 관계가 매우 강력하고 직접적이라고 할까요.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부분이죠."

작가는 병산서원을 예로 들면서 부연했다. "한국 고건축에서는 나무든 돌이든 자연을 가공하거나 마모하는 인위적인 작업 없이 재료를 그대로 사용한 흔적이 보이죠. 저는 그러한 자연과 물질의 만남을 포착하려고 노력했어요."

아날로그 필름을 고집하는 비네 작업은 빛과 그림자가 어우러지는 공간을 흑백으로 담아낸 것이 특징이다. 사람이 등장하면 서사가 개입되기에 자제하는 편이라고 했다.

그는 "많은 잡음이 들어가서 장황한 느낌을 주는 것보다, 침묵을 지키는 것을 좋아한다"면서 "침묵을 지킴으로써 그 재료나 물질성을 더 강렬하게 보여주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저는 특히 좋은 빛이 올 때까지 기다리고, 연구합니다. 빛이 저를 놀라게 하는 때가 있는데, 그때 딱 (촬영할 순간이) 됐다고 느낍니다. 빛으로 드로잉을 한다고 말할 수도 있겠죠. 빛이 없는 공간인 그림자는 에너지가 부재하는 곳이지만, 그렇기에 더 많은 것을 알려주고 더 많은 해석을 낳습니다."

건축사진은 단순히 건축물을 찍은 사진이 아니다. 비네는 "건축물이라는 복잡한 경험을 주는 대상을, 4개 각을 줘서 멈추고 그 순간을 정지시키는 것이 사진"이라면서 "그런 점에서 사진은 일종의 퍼포먼스"라고 설명했다.

비네가 사진을 통해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전환적 공간'(Transitional Space)이다. 작가는 먼저 병산서원 마당 사진을 화면에 띄웠다. 사방이 건물로 둘러싸인, 나무 몇 그루 있는 호젓하고 정갈한 마당이었다.

"건축물은 우리가 지각하기 어려운 차원으로 '넘어가는' 연결지점이 될 수도 있습니다. 배움의 공간인 서원이 특히 이 개념을 실험하기 좋은 곳이라고 전 생각했어요. 서생은 이 대문을 넘어서 배움의 공간으로 들어가게 되고, 정원(마당)을 만나게 되죠. 이 정원은 비어 있기에 서생이 자신의 삶을 쌓아갈 수 있는 기반을 상징합니다."

병산서원과 종묘에 이은 3번째 작업 대상을 물색 중인 작가는 작업을 마무리하면 이를 모아 출간할 계획이다. "이렇게 아름다운 한국 전통건축물을 유럽에 소개하는 날이 오길 기대 중입니다."

이날 강연은 아트선재센터와 주한스위스대사관이 마련했다. 100분 강연이 끝난 뒤에도 건축계 관계자들과 아마추어 사진가 등이 비네를 둘러싸고 질문을 쏟아내 눈길을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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