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싣는 순서 |
이 글은 국내 발달장애 청년들의 자립에 필요한 '희망의 스마트팜' 조성을 위해 CBS와 푸르메재단이 함께 마련한 연속 기획입니다. ① '말아톤' 13년 후…고단한 삶속에 피워낸 작은 희망 ② 아이에게 한시도 눈을 못 뗀 19년…발달장애 엄마들 ③ 발달장애 청년 위한 일자리, 푸르메재단이 만듭니다 ④ 늙어가는 엄마는 점점 겁이 납니다, 아들 때문에 ⑤ "내 아이는 자기 집에서 살다가 죽으면 안 되나요?" ⑥ 35세가 되면 일터에서 밀려 집으로 쫓겨나는 그들 ⑦"행복한 삶을 사는 비결? 나눔입니다" (계속) |
푸르메재단 고액기부자 모임 '더미라클스' 17호 가입자 이피코리아(주) 배문찬 대표
"장애는 결코 나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누구나 늙고 병들면 장애를 갖게 되지요. 장애인이 행복하고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드는 일에 우리 모두가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입니다."
우리사회 곳곳에 나눔의 온기를 퍼트려온 중견기업 대표가 있다. 10년 동안 기부한 금액만 무려 10억 원.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자신의 경영이념이자 인생의 지침으로 삼고 묵묵히 실천하고 있다. 24시간 건물의 전력이 멈추지 않도록 해주는 무정전전원공급장치(UPS) 설치‧유치‧보수 전문기업 이피코리아㈜ 배문찬 대표가 그 주인공이다.
배문찬 대표가 푸르메재단의 고액기부자모임 '더미라클스(The Miracles)'의 17호 회원으로 이름을 올렸다. 장애어린이들의 재활에 많은 관심을 갖고 꾸준히 기부활동을 펼쳐온 배 대표는 이제 장애청년의 행복한 자립을 위해서 기꺼이 '큰 손'이 되었다.
◇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자산 '사회적 책임'
배 대표가 1995년 설립한 이피코리아는 UPS 업계 1위 자리를 지키는 선두기업이다. 삼성SDS, SK C&C, LG CNS 등 대기업과 금융권‧교통‧병원 등 전국 1,000여 개 전산센터에 이피코리아의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을 정도다. 발광다이오드(LED), 에너지저장장치(ESS) 사업으로도 범위를 확대하면서 전문적이고 종합적인 에너지 전문 기업으로 성장하고 있다.
배 대표의 부친은 우리나라 전기업계의 원로인 이화전기 공동창업주 고 배수억 회장이다. 배수억 회장은 수영전기를 창업한 뒤 아들에게 물려주려 했으나 배 대표는 다른 길을 걷겠다는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았다. 서강대학교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뒤 첫 직장으로 대기업을 다니다 아버지 회사에서 3년 동안 영업직원으로 일하며 내린 결정이었다.
"저만의 경영철학과 신념으로 기업을 새롭게 일궈보고 싶었어요. 독자적으로 창업한 뒤로 1998년 IMF가 터지면서 경영난에 처했을 때 아버지가 보증을 서준 것을 제외하면 선친의 도움을 한 번도 받지 않았습니다."
배 대표는 기업을 물려받는 대신 '늘 직원을 아끼고 사회에 공헌하라'는 아버지의 말씀을 회사 경영의 기본 이념으로 두고 사회 환원에 앞장서고 있다. 생전에 아버지가 사재 25억 원을 출연해 세운 삼연장학재단을 포함해 어린이병원, 비영리단체, 대학교 등 회사 차원에서 사회공헌활동을 활발히 이어가고 있다.
"기업이 가장 잘 하는 일로 사회에 기여하는 것이 먼저입니다. 저희의 제품을 통해 전원이 안정적으로 공급돼 전력 손실을 줄인다면 장기적으로 국가 예산을 절감하게 되고 지구 환경에도 이롭죠. 그 다음은 기업 이윤을 직원들의 삶의 질 향상에 충분히 써야 하고요. 마지막으로 이윤의 일부를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기부나 봉사의 형태로 나누어야 합니다."
배 대표는 기부에 관해서 회사 임직원들에게 기회가 될 때마다 공유한다. 임직원들은 기업의 기부활동이 의미 있는 결실을 맺을 수 있도록 지켜봐주는 든든한 응원군이기 때문이다.
◇ 장애어린이의 재활을 넘어 자립을 향한 '꾸준한 응원'배 대표는 2015년 장애어린이를 위한 전문재활병원이 들어선다는 신문기사를 보고 도움이 되고 싶었다. "기부금을 모아 국내 유일의 어린이재활병원을 건립하려는 푸르메재단의 뜻에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저희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무정전전원공급장치를 무상으로 설치해드리고 싶었지만 이미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다고 해서 병원을 무사히 완공할 수 있도록 건립기금을 기부하게 됐습니다."
이피코리아는 두 차례에 걸쳐 병원 기금을 전달했다. 장애어린이들을 위해 평생을 헌신하는 부모님들의 노고에 비하면 너무 약소한 금액이라면서 조용히 건넨 5천만 원. 2017년, 병원이 문을 연 뒤에도 가정 형편이 어려워 제때 치료받지 못하는 장애어린이들의 재활치료에 써달라며 또 한 번 5천만 원을 기부했다. 1만 명의 이름이 새겨진 기부벽에는 이피코리아의 이름도 또렷이 빛나고 있다.
배 대표는 푸르메재단에 1억 원을 기부하며 더미라클스 17번째 회원으로 가입했다. 오래 전부터 자신의 이름으로 고액기부를 해야겠다는 결심은 30여 년 가까이 알고지낸 한 장애인의 죽음으로 확고해졌다. 이피코리아를 창업하기 전 장애인 생활시설에 자원봉사를 갔다가 하반신이 마비된 지체장애인을 만났다. 15살 많은 '형님'이었다. 시설에서 나와 홀로 살면서도 꾸준히 연락하며 지내왔는데 최근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다.
"그 분이 돌아가셨다고 경찰서에서 연락이 왔어요. 가족관계를 알 수 없어 무연고 처리가 될 뻔했는데 장례를 치러드릴 수 있어 정말 다행입니다. 저를 위해서 생활비를 쪼개 홍삼 선물도 주시고 기도를 많이 해주셨던 고마운 분이었죠. 작게나마 후원을 해드렸던 제가 사실 받은 게 더 많아서 미안한 마음이 큽니다."
장례식을 마치고 돌아오는 버스 안, 푸르메재단에 1억 원을 이체했다. 망설임은 없었다. 배 대표는 아무도 기억해주지 못할 고인을 자신만큼은 평생 기억하며 살리라는 다짐하면서, 우리나라의 장애인들이 소외되지 않고 행복한 사회에서 살아가길 바라면서 발달장애 청년을 위한 희망의 일터 푸르메에코팜 건립에 간절한 희망을 실어 보냈다.
아내와 함께 더미라클스 회원 가입식에 참석한 배 대표는 "더미라클스에 가입한 사회 각계각층의 훌륭한 분들과 손잡고 새로운 과제인 푸르메에코팜을 만드는 길에 동참하게 되어 굉장히 의미 있고 기쁩니다"라는 기부 소감을 밝혔다.
◇ 나눔은 평생의 기쁨이자 의무
백경학 푸르메재단 상임이사(좌)와 배문찬 대표
푸르메재단이 추진하는 발달장애 청년을 위한 푸르메에코팜은 친환경 첨단농업으로 딸기·토마토‧버섯 등 농산물을 생산하고 판매하는 일터다. 발달장애인 당사자와 가족이 아닌 기부자로서 푸르메에코팜에 거는 기대를 묻자 "제가 사업가라 그런지 지속가능한 가치를 창출하는 정교한 사업모델이 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무엇보다 사업효율성이 중요합니다. 사업이 성공적으로 운영되려면 각별한 노력과 선진화된 기술이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농작물을 키우는 여러 요소를 제어하는 스마트팜 기술이 있다면 높은 생산성을 기대할 수 있겠죠. 일하는 공간만큼 충분한 휴식도 필요한 발달장애인에게 합리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푸르메에코팜이 닻을 올리기 위해서는 경영·농업·기술 노하우를 가진 전문가들의 참여가 필수라고 강조한다. "우선 사업이 잘 되도록 힘을 모아야 합니다. 푸르메에코팜에 성과가 나와야 일자리가 늘어나고 발달장애인의 삶의 질도 나아질 수 있을 테니까요. 발달장애인에 적합한 일자리 모델을 선도하길 기대합니다."
배 대표에게 나눔은 '한 평생의 의무'와도 같다. "나눔을 통해서 기쁨과 보람을 얻고 행복을 느낍니다. 무엇을 받을 때보다 줄 때가 더 기분이 좋거든요. 제게 주어진 능력으로 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감사해요. 타인을 위해 가치 있게 행동하는 것은 결국 저를 행복하게 하는 일이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