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년 연기 담금질로 꽃피운 '함안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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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배우 이정은
삶터에서 다진 시대인식…'좋은 이야기' 갈망
"배우는 연기할 때 배우일 뿐…동력은 호기심"

배우 이정은(사진=윌엔터테인먼트 제공)

 

28년차 배우 이정은에게는 남다른 습관이 있다. 그의 표현을 빌리면 "다른 사람 스캔하기"다.

"'저 사람 말투는 저렇구나' '옷은 저렇게 입었네' '신발은 이만큼 닳았구나'라는 식으로 어느 장소에 갔을 때 보게 되는 사람들의 습관을 관찰하는 겁니다. 작가들이 순간순간 드는 생각을 끊임없이 메모하는 것처럼요. 그래서 우리(배우들)끼리는 '점집에 따로 갈 필요 없다'고 말하고는 해요.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는 말도 있기는 하지만요. (웃음)"

그는 그렇게 관찰한 결과를 연기에 접목시키기도 한다고 했다. 오랜 내공으로 다져진 연기 노하우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최근 서울 청담동에 있는 한 카페에서 만난 이정은에게,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에서 연기한 함안댁이 의병의 길을 걷게 되는 과정을 어떻게 이해했는지 물었다. 그는 '관계'를 키워드로 설명을 이어갔다.

"출연작에서 맡은 역할 가운데 이름을 지닌 캐릭터가 많지 않았어요. 주로 무슨 댁, 아줌마, 이모 등으로 불렸죠. 실제 배우로서 내 삶 역시 그랬어요. 연기에 대한 열정을 키워 가는 과정에서 동료애를 느끼고, 그러한 관계망 속에서 생각과 시각이 바뀌어 온 거죠."

그는 "스스로 운동가가 된 민주열사의 어머니들도 처음에는 걱정 탓에 자식들의 생각과 행동을 반대했던 것처럼, 극중 함안댁 역시 의병 고애신(김태리)의 생각에 동조하지 않지만 꺾을 수도 없었을 것"이라며 "애신을 지키고자 하는 부모의 마음으로 함안댁 역시 의병의 길을 함께 걸으며 생각이 바뀌어 갔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학교 88학번인 이정은은 당대를 휩쓴 민주화 열망을 잘 알고 있었다. 역할 비중은 적더라도 영화 '카트' '변호인' '택시운전사', 드라마 '송곳' '미스터 션샤인' 등 시대를 반추하도록 돕는 작품에 끊임없이 출연해 온 이유도 여기에 있다.

"당시 선후배들은 (시대 상황에) 훨씬 민감하게 반응했죠. 나 역시 아예 관심이 없지 않다보니, '이 작품이 사회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 것인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개인적으로 사회적인 불이익을 많이 당하지는 않았지만, 연극을 하면서 경제적 문제로 인해 아르바이트도 하고 마트에서 여사님들과 일을 해봤기에 경험에서 나오는 동질감이 있어요. '이러한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아니까 그쪽으로 관심이 가는 거죠."

◇ "주인공 뒤에서 비질에 열중하는 배우들 잊지 말아 달라"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에서 함안댁으로 분한 이정은(사진=화앤담픽쳐스 제공)

 

이정은이 봉준호 감독 작품 '옥자'에서 유전자 변형 돼지 옥자의 목소리 연기를 했다는 사실은 그의 연기관을 증언하는 흥미로운 일화다.

"사실 '옥자'는 주인공이라고 해서 했는데, 나중에 보니까 목소리 연기더군요. (웃음) 봉준호 감독이 옥자 사진 옆에 내 사진을 붙여서 문자 메시지로 보내주고는 했는데, 매일 보면서 영감을 얻으려고 노력했죠, 하하. 연극할 때는 한 공연에서 여러 역할을 맡는 경우도 많았는데, 이야기가 좋으면 그냥 끌리더군요."

그는 인터뷰 동안 '좋은 이야기' '재밌는 이야기'라는 표현을 여러 차례 언급했다. 그 이야기란 무엇일까.

"배우들 입장에서는 잘 읽히는 이야기가 있어요. 그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만져지는 것이 있죠. 어떤 경우에는 너무 무거운 이야기라는 생각에 제쳐놓는 것이 있는데, 다시 들여다보게 되는 때가 있어요. 그렇게 좋은 이야기를 만나게 되는 타이밍이 있는 것 같아요."

"연기를 할 수 있도록 만드는 동력은 호기심"이라는 것이 이정은의 지론이다.

"사실 연기할 때마다 슬럼프예요. 요즘에는 나를 바라보며 용기를 얻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느낍니다. 최근 들어 '미스터 션샤인' 등을 통해 언론에 여러 차례 노출되면서 얻게 된 마음가짐이죠. 스스로 지루하지 않게 연기하려 애쓰고 있습니다. 최근 들어 중·단편 영화 붐이 다시 일어나는 분위기인데, 좋은 이야기, 재밌는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작품에서 다양한 연기를 하고 싶어요."

이정은은 평소 이동할 때 지하철을 주로 이용한다. "배우는 연기할 때 배우일 뿐"이라는 생각이 작용한 결과다.

"가볍게 가방 하나 든 채 지하철 타고 일터에 갈 때, 사람들이 나를 부담스럽지 않게 대하면서 내가 출연한 작품 이야기를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요즘에는 이를 실감해요. 옆에서 내 이야기를 하는 사람도 보이는데, 내릴 때 '감사합니다'라고 인사하고는 해요. (웃음)"

그는 "내가 구상한 연기를 오롯이 보여줄 수 없는 부족함이 여전하지만, 음지에서 눈에 띄지 않는 역할을 할 수도 있지만, 연기를 놓지 않을 테니 응원해 달라"며 "물론 작품을 볼 때 주인공에게 큰 관심이 가지만, 그 뒤에서 빗자루로 바닥을 쓰는 데 열중하는 배우들이 있다는 것을, 그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연기를 가다듬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 주셨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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