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암수살인'에서 끝까지 암수범죄를 밝혀내려는 형사 김형민 역의 배우 김윤석. (사진=쇼박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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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김윤석의 인생에서 형사 역할은 꽤 있었다. 그런데 그는 '암수살인'만은 달랐다고 이야기한다. 영화의 핵심은 여기에 있다.
범죄물 영화 속 대다수 형사들이 범인을 뒤쫓거나 살인사건 자체에 집중한다면, '암수살인'의 형사 김형민은 철저히 피해자의 시각과 관점에서 사건을 따라간다. 7개의 추가 살인에 대한 살인범의 '자백'은 어디까지나 '단초'일 뿐이다. 강렬하지는 않지만, 울림을 줄 수 있는 진정성. 김윤석은 이미 시나리오부터 캐릭터가 가진 이런 뚝심을 보았다.
"사건을 대하는 방법, 범인을 대하는 태도와 방법이 여느 영화에서 보기 힘든 형사 캐릭터였어요. '1987'보다 먼저 찍었는데 정말 만나고 싶은 시나리오였고 행운이었죠. 이런 캐릭터에 대한 목마름이 있었어요. 상업적이고 오락적인 형사물에 나오는 히어로가 아니라 파수꾼에 가까운 모습, 두뇌싸움과 밀도있는 심리전으로 승부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들을 했었거든요. 형사가 총 하나 없이 수첩과 볼펜 하나만 들더라도, 본질적인 것에 접근한다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봤고요. 실제로 싸움 잘하는 형사만 있는 게 아니라 지적인 형사들도 많아요. 이 영화 개봉 후에 나올 형사물은 좀 더 변화가 있지 않을까 싶네요."
김윤석의 말대로 영화는 사이코패스 살인범 강태오가 숨긴 '암수범죄'의 진실과 거짓을 가리는 과정을 통해 서스펜스를 형성한다. 김형민 형사와 강태오, 즉 김윤석과 주지훈이 주고받는 밀도높은 심리전이 영화를 이끌어 나간다.
"김형민 형사는 강태오에게 말려들지 않기 위해 끝까지 중심을 잡죠. 그래서 강태오를 객관화시켜서 보는 게 필요했어요. 사실 이미 감옥에 있는 강태오가 뭐가 무섭겠습니까. 가장 두려운 건, 강태오가 대화를 멈추는 거예요. 그런 모욕적인 것들을 참으면서도 혹여나 강태오가 실수로라도 진실의 한 조각을 이야기해준다면 퍼즐을 맞춰야 하니까 기다리는 겁니다. 7개의 진술 중 6개가 거짓말이고 단 하나만이 진실이라도 끝까지 형사의 육감으로 확인해보겠다는 각오였고요. 어쨌든 김형민은 일단 절제력이 뛰어나면서 느리더라도 놓치지 않아요. 계속 당근과 채찍을 쓰는 그런 게임이었어요."
영화 '암수살인'에서 끝까지 암수범죄를 밝혀내려는 형사 김형민 역의 배우 김윤석. (사진=쇼박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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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신과함께' 시리즈 등의 흥행으로 제2의 전성기를 맞은 주지훈과의 호흡은 어땠을까. 김윤석은 주지훈을 '동료'라고 칭하면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실제로 김윤석이 함께 호흡을 맞춘 배우들에게 듣는 가장 기쁜 반응은 집중력 넘치는 시너지가 공유될 때라고.
"카메라 앞에서는 선후배가 없죠. 주지훈이 제게 배우는 게 있다면 저도 주지훈에게 배우는 게 분명히 있어요. 제가 제일 좋은 건 저와 함께 공동작업을 해보니 동료로서 정말 좋다는 이야기를 듣는 겁니다. 서로 영화에만 집중하면서 막 그런 시너지가 공유되면 너무 기뻐요. 작업에 집중하는 분위기가 함께 공유되면 그것이야말로 좋은 추억과 경험인 것 같아요."
문득, 인간적인 소박함을 갖고 있으면서도 사건에 대한 신념과 집념을 잃지 않는 김형민 형사와 배우 김윤석 간의 공통점이 궁금해졌다. 악역과 선역을 떠나 그가 연기해왔던 캐릭터들 또한 주로 신념이 강한 캐릭터들이었다.
"영화 작업을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부분에 대해서는 닮은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제 역할의 모델이 된 형사님이 마약수사대에서 형사과로 전출됐다가 파출소 순경으로 강등되는 모든 과정을 실제로 겪으셨던 거니까 그걸 연기하는 배우한테는 더 힘이 됐고요. 악인도 보면 그릇된 신념이지만 자기의 신념을 갖고 외롭게 파괴되는 게 매력적이더라고요. 지옥의 불구덩이로 스스로 들어가는 캐릭터들이고, 운명에 순응하기보다 도전하는 캐릭터들은 극적이라고 생각해요. 주로 연극에 그런 인물들이 많이 나와요."
영화 '암수살인'에서 끝까지 암수범죄를 밝혀내려는 형사 김형민 역의 배우 김윤석. (사진=쇼박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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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짜', '추격자', '완득이', '화이', '도둑들', '검은 사제들', '1987' 등 김윤석은 언제나 뇌리에 각인돼 잊히지 않는 강렬한 캐릭터로 관객들을 사로잡아왔다. 이런 캐릭터들을 연기하는 동안, 정말 그 캐릭터의 삶을 살아가는 배우들도 종종 있다. 맡아 온 캐릭터들의 강도에 비해 의외로 김윤석은 그 완급조절이 능숙한 편이었다.
"저는 촬영 내내 그 인물로 살지 않아요. 하루 촬영이 끝나면 바로 나오거든요. 그런데 '화이'에서는 좀 많이 털렸죠. 극과 극의 인물들을 연기해내는 것은 재미있지만 그것 때문에 저라는 사람이 바뀌어야 할 필요는 없는 것 같아요. 잘 표현이 되느냐가 제일 중요하죠. 만약 '1987' 박처장의 아우라가 강렬했다고 한다면 그건 그가 악인이라서가 아니라 인간 존재에 대한 부분이 입체적으로 보여졌기 때문이에요."
김윤석의 연기를 이야기 할 때, 자연스러운 생활감 또한 빼놓을 수 없다. 그런 것들은 배우 김윤석과 인간 김윤석의 균형을 바로 잡을 때 비로소 완성된다. 배우가 늘 비범할 수는 없다. 이번 스케줄을 모두 마치면 여행에 가서 가족들 '뒤치닥거리'를 한다고 웃어보이는 그에게서 느껴지는 안정감 또한 지켜내야 할 것들이다.
"마블 영화도 생활감이 묻어나야 해요. 아이언맨도 그 캐릭터를 만드는 생활감이 묻어나야죠. 캐릭터 연기를 할 때는 굉장히 중요한 요솝니다. 제가 어디 타워팰리스에서 혼자 외롭게 살아가는 아이돌 스타도 아니고,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힘들 정도로 팬들이 아우성을 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일반적이 생활이 가능하죠. 빨래도 하고, 밥도 하고, 강아지 밥도 주고요. 만약 그렇지 않다면 정말 힘들 것 같아서 이런 상황에 고마워요."
수많은 캐릭터를 겪어온 김윤석 역시 '목마름'을 느끼는 배우다. 이번 목마름은 '암수살인'을 통해 해갈했지만 그가 지금까지 쌓아 온 '올곧게' 쌓아 온 연기 속에서 궁극적인 지향점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항상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이야기를 기대해요. 요즘에는 더 본질에 가까워지고, 군더더기를 빼서 정확하게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하고요. 이스트처럼 많이 부풀려진 게 느껴지면 괴로워요. 정말 뼈대만 가지고 만들어내야겠다고 다짐해요. 굳이 필요하지도 않은 걸 자꾸 과욕하는 게 바로 연기에서의 이스트거든요. 본질을 놓치지 않고 자기 길을 가는 게 중요하다고 봅니다. 요즘의 좌우명은 말하지 않는 것? 그냥 우리가 요즘 말이 너무 많은 것 같거든요. 뭐든 행동으로 보여주는 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