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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출장기] 북한대표부는 열려 있었다…'아주 조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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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9-30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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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용호 외무상은 동선을 모두 언론에 노출
'원하는 만큼, 기대한 만큼은 아니지만 북한 태도 변화 실감'

리용호 북한 외무상 일행이 경호원의 호위를 받으며 숙소에서 나와 유엔본부 쪽으로 이동하고 있다. (사진=장규석 워싱턴 특파원)

 

이번 뉴욕 출장길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큰 관심은 ‘북한의 반응’이 어떠할 것인가 하는 점이었다.

일단 3차 남북정상회담과 평양공동선언으로 남북간의 화해와 협력 기류가 뚜렷해졌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유엔 총회장에서 전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용기와 그가 취한 조치에 감사한다”고 말했다.

2차 북미정상회담이 한층 더 가시화됐고,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10월에 방북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평양공동선언 직후 뉴욕으로 바로 날아온 문재인 대통령은 어딜가든 질문 세례를 받는 ‘유엔의 스타’가 됐다.

이처럼 북미간의 협상 분위기가 무르익는 가운데, 북한은 국제사회에 어떤 메시지를 발신할 것인가. 1년 넘게 미국과 북한의 줄다리기를 지켜봐야 했던 워싱턴 특파원으로서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는 주제였다.

◇ '아주 조금' 열려있었던 북한대표부

유엔주재 북한대표부 입구 (사진=장규석 워싱턴 특파원)

 

출장 첫날인 27일(이하 현지시간) 곧장 유엔주재 북한대표부를 찾았다. 이곳이 북한대표부가 있는 곳이 맞느냐고 묻자, 용무가 있어 찾아온 것으로 오해한 경비원이 엘리베이터를 열어줬다. 웬 행운인가. 재빨리 북한대표부가 있는 13층의 단추를 눌렀다.

복도에는 아무도 없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유엔주재상임대표부’라는 팻말만 눈에 크게 띄었다. 신기한 것은 평소 아무리 초인종을 누르고 문을 두들겨도 열리지 않는다는 북한대표부의 출입문이 잠기지 않은채 살짝 열려 있었다는 점이었다.

잠시 머뭇거리는 사이, 북한대표부 사람이 나왔다. 3,40대 정도로 보이는 한 남성이었다. 아주 짧은 기간 침묵이, 낯선 공기가 흘렀다. 그는 이윽고 우리를 보고 “무슨 일로 오셨느냐. 약속을 하고 오셨느냐”고 주저주저 물었다.

“저는 한국기자다. 약속은 안했지만 혹시 이야기 할 수 있을지 궁금해서 왔다.” 기자도 긴장해서 말이 뻣뻣하게 나왔다. 예상치 못한 문답에 한편으로 머릿속이 하얘졌다. 그 남성은 “만날 사람 없다”며 다시 문을 닫고 들어갔다. 다시 적막이 찾아왔다.

그래도 처음으로 찾아간 북한대표부의 문이 완전히 잠겨있지 않았다는 점. 그리고 그 남성의 태도가 그리 적대적이지 않았다는 점 때문에 무언가 북한의 분위기가 바뀐 것이 아닐까 기대를 품게 했다.

◇ 말 없이 동선만 드러낸 리용호 北외무상

리용호 북한 외무상 일행을 뒤따르며 취재하는 기자들 (사진=장규석 워싱턴 특파원)

 

리용호 북한 외무상이 묵고 있는 호텔로 향했다. 북한대표부와 한 블럭을 보고 마주하고 있고 유엔본부 길 건너편에 있는 ‘밀레니엄힐튼’. 늦은 오후에도 기자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상당수는 일본 기자로 보였다. 이미 폼페이오 장관과 회동까지 한터라, 리 외무상의 동선에 더 관심이 집중되는 모양이었다. 이날 그는 숙소에서 나오지 않았다.

다음 날인 28일 오전, 다시 호텔 앞으로 찾아갔다. 아침 기온이 꽤 쌀쌀했지만 많은 기자들이 여전히 리 외무상을 기다렸다. 그가 호텔 로비에 모습을 드러내자 미국 경호원 7-8명이 리 외무상과 그 일행을 둘러쌌다. “Do not pass me(나를 넘어가지 말라)” 접근하려하자 경호원이 거칠게 막았다. 몸싸움을 해가며 리 외무상에게 질문을 던졌지만 굳게 닫힌 입은 열리지 않았다. 미묘한 표정변화를 보이는가 했지만 이내 무덤덤한 표정으로 돌아왔다.

리용호 외무상은 그가 뉴욕에 체류하는 동안 숙소와 유엔본부, 북한대표부는 물론, 인근 유니세프 건물, 우간다 하우스(아프리카 국가 대표부가 모여있음) 등을 오갔다. 한무리의 기자들이 그를 에워싼 가운데 그는 뉴욕 퍼스트 애비뉴(1st Ave.)와 세컨드 애비뉴(2nd Ave.) 사이를 누비고 다녔다. 1년 전에 그는 차량을 타고 다녀 동선을 잘 노출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번에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지만 자신의 동선을 모두 드러낸 점만큼은 인상적이었다.

◇ 크게 다르지 않았던 연설..'비핵화' 용어 명시는 눈길

리용호 북한 외무상이 유엔총회장에서 연설하는 모습 (사진=장규석 워싱턴 특파원)

 

29일 오전 유엔 총회장. 리용호 외무상이 연단에 6번째 연사로 모습을 드러냈다. 북미 관계에 대한 진전된 메시지가 담길 것인가 하는 기대도 잠시, 그가 내놓은 연설은 지난달 4일 싱가포르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외교장관회의에서 한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미국의 신뢰조성과 동시행동, 단계적 방식을 강조하고, 미국 국내정치를 협상의 방해물로 표현한 점 등 연설의 큰 흐름은 한 달 전이나 이번이나 큰 차이가 없었다.

다만 ‘조미(북미)공동선언’은 ‘비핵화’라는 좀 더 구체적인 용어로 대체됐다. ARF에서 “조미공동성명을...이행해 나가려는 결심과 입장은 확고부동하다”던 표현은 ‘비핵화의 의지가 확고하다’로 대체되는 식이다.

“미국에 대한 신뢰가 없이는...우리가 일방적으로 먼저 핵무장을 해제하는 일은 절대로 있을 수 없다”는 유엔총회 연설도 “미국이 우리의 우려를 가셔줄 확고한 용의를 행동으로 보여주지 않는 한 우리만이 일방적으로 먼저 움직이는 일은 절대로 없을 것”이라던 ARF발언과 유사하다. 다만 ‘핵무장 해제’라는 내용이 구체적으로 들어갔다.

조금 진전되기는 했지만, 북한으로부터 전향적인 발언이 나오지는 않았다. 그리고 리용호 외무상은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외교장관을 모두 만났지만 강경화 외교부 장관의 면담 제의는 끝까지 받아들이지 않았다.

관련해 한 외교소식통은 “리용호 외무상이 북미 협상에서는 큰 재량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본인 재량으로 언론에 발언하거나 회동 상대를 정하거나 할 정도로 높은 위치는 아닌 것 같다는 분석이다. 미국과의 협상은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겸 통일전선부장이 여전히 권한을 쥐고 있음을 재차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러나 뉴욕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자신의 동선을 모두 언론에 드러낸 리 외무상, 그리고 언뜻 닫힌 듯 보였지만 잠금이 풀려 살짝 열려 있었던 북한대표부의 출입문처럼, 북한의 태도는 미세하게나마 바뀌고 있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우리가 원하는 만큼, 기대한 만큼의 속도는 아니지만 말이다.

시한을 정하는 '타임게임(time game)'을 하지 않겠다던 트럼프 대통령의 기자회견 발언이 새삼 생각났다. 트럼프 대통령도 길게 보겠다는데...어쩌면 너무 조급한 기대를 품었던 뉴욕 출장길이었는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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