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오후, 서울 강남구 논현동의 한 카페에서 '오늘밤 김제동'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MC 김제동이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KBS 제공)
KBS에는 한때 PD들이 만드는 데일리 시사 프로그램이 있었다. '시사 360', '시사 투나잇' 등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후 자취를 감췄다. 그날 일어나는 시사를 다루는 프로그램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는 오래전부터 나왔으나, 이를 이루기까지는 약 10여 년이 걸렸다.
지난해 9월부터 올해 1월까지 무려 142일 동안 파업을 벌이고 돌아온 KBS는 새로운 프로그램을 꾸준히 선보이며 변화를 꾀하고 있다. 지난 10일 첫 방송된 KBS1 '오늘밤 김제동'도 그중 하나다. 정치, 사회, 문화 등 다양한 이슈에 자기 목소리를 내 온 방송인 김제동이 '시사'를 다룬다는 점 때문에 긍정적으로든 부정적으로든 화제가 됐다.
12일 오후, 서울 강남구 논현동의 한 카페에서 열린 '오늘밤 김제동' 기자간담회에서는 왜 데일리 시사 프로그램인지, 왜 김제동인지, 편향성 논란을 극복할 수 있을지 등 프로그램에 관한 거의 모든 물음과 답이 나왔다. 김제동은 자칫 곤란하게 느껴질 수 있는 질문도, 특유의 넉살과 달변으로 답해 나갔다.
◇ PD들이 만드는 데일리 시사 프로그램의 부활
'오늘밤 김제동'은 PD들이 제작하는 데일리 시사 프로그램이다. 정병권 부장은 "데일리 시사 프로그램을 제작해야 한다는 KBS PD 사회의 여러 요구와 공감대가 있었다. 몇 년 만에 그 장이 열렸다"며 "기존 시사 프로그램이 어렵고 딱딱하며, 최근 미디어 환경 변화를 반영하지 못한 점이 있었다. 시청자들과 소통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는데 그 결과물이 '오늘밤 김제동'이라고 보시면 된다"고 설명했다.
'오늘밤 김제동'은 매주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심야 시간대를 책임진다. 하루 30분 동안, '오늘보다 내일 더 중요해질 이슈'를 건져내 시청자들에게 전하는 것이 목표다. 보통 주간 단위로 진행되는 여타 시사 프로그램과 달리 주 4회 시청자들을 만나기에 월-수, 화-목으로 팀을 나눴다. PD는 각 팀당 6명씩 총 12명, 작가는 각 팀당 5명씩 총 10명이다. 언제나 사람은 모자라지만, 현재 KBS에서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인력이 투입됐다는 설명이다.
화-목 팀장을 맡은 강윤기 팀장은 "'오늘밤 김제동'은 뉴스 프로그램과 경쟁하는 게 아닌, 새로운 독자적 프로그램이다. 그날그날 일어나는 이슈 중 되짚어봐야 할 만한 것들, 오늘보다 내일 더 중요해질 뉴스가 뭐가 있을까를 고민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것도 아주 중요한 건데, 일상적인 시사 프로그램에서는 무심코 말하는 어려운 전문용어가 있다. (저희는) 쉽게 시청자들이 다가갈 수 있게 노력한다"고 덧붙였다. 말 그대로, 시사를 쉬운 말로 편하게 전한다는 의미다. 그동안 '톡투유' 같은 방송 프로그램과 자신의 이름을 건 토크 콘서트를 꾸준히 진행하며 그 누구보다 청중 혹은 시청자와 적극적으로 소통해 온 김제동의 역량이 빛나는 부분이다.
김범수 PD는 김제동이 마음껏 활약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주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김 PD는 "2회 방송하면서 느낀 것은 저희가 기획한 코너나 틀을 유지하는 것보다 훨씬 중요한 것은 MC 김제동이 자유롭게 놀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준다는 것"이라며 "MC가 원고 밖으로 나와 인터뷰이와 서로 말을 주고받을 수 있는 대화의 공간을 확보하려고 노력 중"이라고 덧붙였다.
◇ 왜, 김제동일까
KBS 9월 대개편에 따라 지난 10일부터 방송된 KBS1 데일리 시사 토크쇼 '오늘밤 김제동' (사진=KBS 제공)
데일리 시사 토크쇼 진행자로 김제동이 발탁됐다고 했을 때 여러 가지 말이 뒤따랐다. 일부 언론과 세력은 김제동이 정치적으로 매우 편파적인 인물이라는 양 공세를 펼쳤다. 하지만 제작진은 누구보다 말을 잘 다루고, 사람들과 소통하는 데 뛰어난 그의 능력을 보고 제안을 했다고 밝혔다.
강 팀장은 "일단 저희가 만들고 싶었던 프로그램은 공급자 중심이 아니라 시청자들의 눈높이에 맞추는 것이었다. 그분들과 소통하고 공감하는 데 능력을 가진 인물이 누굴까 했다. 굳이 설명 드리지 않더라도 김제동 씨가 아주 적합한 분이라고 생각해서 섭외하게 됐다"고 말했다.
형평성 논란을 우려하는 질문에도 강 팀장은 "어제와 그저께 방송 보신 분들은 그런 논란이 기우에 지난다는 것을 아실 것"이라고 답했다.
'오늘밤 김제동'이라는 이름을 자기가 짓지 않았다고 말문을 연 김제동은 "섭외가 와서 하게 됐다. 아침 라디오 일정이 있어 도저히 힘들지 않겠나 했는데 PD분들이 꼭 한 번 만들어 보고 싶은 프로그램이라고 해서 합류했다"고 밝혔다.
김제동은 "사실 시민의 눈높이에 맞춘다는 표현은 불쾌할 수 있다. 시민 시청자들이 전문가 이하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며 "우리의 이야기를 전해주는 창구가 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자신을 향한 편향성 논란에 대해서는 "여기에서 제가 취할 수 있는 자세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다. 잘 묻는 것"이라며 "혹시 좌편향을 말씀하시는 건가"라고 말해 주변을 폭소케 했다.
그는 "좌편향도 우편향도 안 되고 기계적 중립도 역시 안 된다고 생각한다"면서 "제가 가장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앞으로 지켜봐 주시면 좋겠다는 것"이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기본적으로 감독님들이 섭외한 전문가들과 출연진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제가 그렇게까지는 안 그렇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김제동은 2회 방송에 출연한 자유한국당 원유철 의원에게 "제가 그렇게까지 편향적이지는 않죠?"라고 깜짝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그는 "(그건) 대본에 없었다. 말씀을 워낙 잘하셔서 고맙기도 하고, (원) 의원님에게 소문 많이 내 달라고 했다. 의원, 전문가들이 많이 나와서 함께 얘기하는 게 중요하기 때문에, 혹시나 (편향성을) 우려하신다면 안심하셔도 좋다"고 강조했다.
◇ 아이를 재우는 자장가처럼, 편안한 밤 라디오같이
왼쪽부터 KBS1 '오늘밤 김제동' 정병권 부장, 김범수 PD, 김제동, 강윤기 팀장 (사진=KBS 제공)
'오늘밤 김제동'은 생방송이다. 그만큼 현장성을 강조한다. 첫 회부터 눈에 띄었던 '오늘밤을 지키는 사람들'은 '오늘밤 김제동'이 방송되는 평일 오후 11시 30분부터 자정까지 여전히 깨어있는 시민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담았다. 고공농성 중인 노동자와 24시간 운영 어린이집의 보육 교사, 심야 근무 중인 소방관 등이 출연했다.
강 팀장은 "자정부터 아르바이트하는 편의점 아르바이트생 등 '오늘 밤을 지키는 사람들'이라는 기준에 맞춰 섭외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첫 회 방송에서 전화 연결 상태가 몹시 나빴던 점을 두고는 "기술적인 문제는 양해를 구하겠다. 몇 가지 부족한 점이 있었다. (앞으로 보시면) 문제가 많이 개선됐구나 싶을 것이다. 더 좋은 영상 화질을 구현하도록 하겠다"고 전했다.
'오늘밤 김제동'은 그동안 떠나갔던 시청자들, 특히 3059 시청자들을 끌어오기 위해 애쓰고 있다. 제작진에 따르면 '오늘밤 김제동' 전체 시청자 중 3059세대 비율은 첫 회 35.7%에서 2회 43.8%로 올랐다. 60대 이상의 고령층을 주 시청 층으로 둔 KBS 1TV인 만큼 3059 세대도 젊은 축이지만, 더 젊은 시청자도 모아야 하는 것은 아닐까.
이에 대해 강 팀장은 "여러 가지 플랫폼을 이용해서 (방송 내용을) 널리 공유하고자 한다. 기획 단계부터 세트와 프로그램 이미지까지 모바일 친화적으로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다. 각 클립을 소비할 수 있게 준비하고도 있다. 방송이 계속되면 그런 효과가 충분히 나오지 않을까"라고 전망했다.
"지난 9년 동안 얼마나 많은 시청자가 세상의 이야기를 KBS를 통해 이해하고 전달받았느냐고 하면 저는 자신이 없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KBS 프로그램을 믿고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고, '오늘밤 김제동'이 그 역할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강윤기 팀장)"일기처럼 좀 따뜻하게, 주무시기 전에 밤 라디오 같은 프로그램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아이를 안고 자는 부부가 있다면 그 자장가 정도? 오늘 하루 잘 정리하고 잘 주무시라며 안부 묻는 프로그램이 하나쯤 있었으면 좋겠다고요." (김제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