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본회의장 (사진=윤창원 기자/자료사진)
청와대가 이달 평양에서 열리는 3차 남북정상회담에 국회 의장단과 여야 대표들을 초청했다가 보수 야당으로부터 일언지하에 거절당하면서 초청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특히 김병준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이 10일 오전 "정당 대표들이 그렇게 갈 이유가 있는가 싶다"고 방북 불가 입장을 공식 선언했음에도,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이 당일 오후 국회 특별대표단 방북 제안을 공개적으로 한 것을 두고는 청와대와 국회간 묘한 힘겨루기와 명분쌓기가 혼재됐다는 평가도 나온다.
◇ '국민적 동의의 상징' 국회 지지 분위기 사전 조성임 실장은 10일 오후 춘추관에서 공개 브리핑을 자처해 "현재 5개 정당 대표 모든 분들이 한반도 비핵화와 남북 화해협력에 많은 관심과 의지를 갖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국회 정당 대표단이 이번 동행을 수락해주시면 저든 안보실장이든 찾아뵙고 전반적인 준비 과정을 설명드리겠다"고 최대한 예를 갖췄다.
야당은 당장 '야당 압박용', '보여주기식' 이라며 강력 반발했다.
"다시 얘기하지만 실질적 비핵화가 확인되면 그 결과에 따라 우리도 역할을 다 할 것"(김병준 한국당 비대위원장), "청와대에서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 등 굳이 가지 않겠다는 데도 채근하는 청와대에 화살을 돌렸다.
"청와대로선 우리는 최선의 성의는 다 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한 것 아니겠느냐"(한국당 중진의원), "야당이 비협조한다는 굴레를 씌우는 것에 불과하다"(김삼화 바른미래당 수석대변인) 등 날선 비판도 이어졌다.
청와대는 11일에도 한병도 정무수석을 국회에 보내 여야 대표들과 접촉하며 국회 특별대표단 방북 성사를 위해 안간힘을 썼다.
한 수석은 이날 바른미래당 손학규 대표,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 정의당 이정미 대표, 민주평화당 정동영 대표를 잇달아 만났지만 여야 대표 전원 방북이라는 목적을 달성하지는 못했다.
청와대가 이처럼 마지막까지 공을 들이는 모습을 취하는 것은 3차 남북정상회담을 넘어 향후 남북간 추가 만남 등에서 국회의 지지를 확보하기 위한 명분쌓기용 사전포석 성격이 짙다는 분석이다.
이날 국회에 제출된 4·27 판문점선언 비준동의안이 3차 남북정상회담 이전에 통과되는 게 불가능해졌지만 청와대가 비준동의를 촉구하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김의겸 대변인은 "판문점선언 비준동의안 국회제출은 단지 이번 (3차 정상) 회담 뿐 아니라 앞으로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정착이라는 긴 여정속에서 국민적 동의를 얻어가는 과정이기 때문에 이번에 국회에서 가급적 이른시간 안에 처리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국회 특별대표단의 방북 역시 이번에 성사되지 않더라도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정착, 남북관계의 담대한 발전이라는 현정부 구상을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국민적 동의를 상징하는 국회의 지지 분위기를 미리 만들어 놓을 필요가 있다는 절박함도 깔렸다.
◇ 국회가 먼저 나서야하는데 앞뒤가 바뀌었다문재인 대통령이 이날 국무회의를 주재하면서 "중차대한 민족사적 대의 앞에서 제발 당리당략을 거둬주시기 바란다"고 언급한 것은 국회와의 묘한 긴장감을 반영한다.
문 대통령은 "국회 차원에서도 이번 정상회담을 (남북간) 국회 회담의 단초를 여는 좋은 기회로 삼아주시기 바란다. 북미 대화 교착도 풀어야 하는데 강력한 국제적인 지지와 함께 국내에서도 초당적인 뒷받침이 필요하다"며 국회의 역할을 촉구했다.
보수 야당이 정쟁이라는 틀거리 속에서 남북관계를 바라보면 안 된다는 점을 에둘러 표현하면서 역시 명분을 확보하기 위한 발언으로 해석됐다.
청와대 안팎에서는 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의 방북 불가 논리를 이해할 수 없다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지난달 16일 문 대통령이 여야 원내대표들을 청와대로 초청해 남북정상회담에 국회도 동참해달라고 분명히 전달했는데도 '야당 압박용', '보여주기식'이라고 반발하는 것을 수긍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당시 문 대통령은 오찬 회동에서 "평양 방문 시기와 함께 방문단의 규모, 방문 일정에 대해서 북측과 협의해야 하지만 우리 정부의 기본 입장은 그때 국회에서도 함께 방북해서 남북간에 국회 회담의 단초를 마련했으면 하는 욕심이 있다"고 말했다.
같은 달 10일 문희상 국회의장 취임 축하차 5부요인을 청와대로 초청해 오찬을 함께한 자리에서도 남북정상회담에 있어 국회의 역할을 간곡하게 부탁했는데도, 한국당 등이 이제와서 반발하는 것은 결국 당리당략에 지나지 않는다는 격앙된 반응도 감지된다.
임종석 비서실장이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언제부터인가 우리 정치에서 중진 정치가 사라지고 이젠 좀처럼 힘을 합하는 장면을 보기가 어렵다", "우연인지 몰라도 주요 정당의 대표 분들이 우리 정치의 원로급 중진들이다. 저는 이분들의 복귀의 목표가 '권토중래'가 아니라 '희망의 근거'를 보여주는 것이었으면 한다"고 적은 것도 서운함을 넘어 야당 '올드보이'표들에 대한 비판 성격이 짙다는 평가다.
◇ 김성태 "냉면 잘 먹고 왔냐?" 우원식 "야당 소외로 공격하더니" 페북 정치청와대가 국회 특별대표단 방북에 공을 들이는 것은 지난 4·27 판문점 남북정상회담 만찬장에 민주당 추미애 대표와 우원식 원내대표, 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 등 구(舊) 여권 관계자들만 초청해 야당으로부터 비아냥이 나왔던 전례도 감안한 것으로 보인다.
판문점 정상회담 사흘 후 한국당 김성태 원내대표는 여야 4개 교섭단체 원내대표 회동에서 당시 민주당 우원식 원내대표에게 "평양냉면은 맛있었느냐", "(우리도 맛 좀 보게) 냉면 국물이라도 가져오지 그랬냐"며 비꼬았다.
드루킹 댓글 여론조작 사건에 대한 특검 도입과 정상회담을 둘러싼 여야 대치가 계속되는 가운데 보수 야당은 한 명도 초대받지 못한 상황을 직접 거론한 것이다.
우 전 원내대표는 1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지난 판문점 남북정상회담 만찬장에 초대하지 않았다고 김성태 원내대표가 나에게 한 막말들을 생각하면 지금도 몹시 불쾌하다. (당시) 여야 협상이 잘 안되는 것을 마치 야당을 남북정상회담 만찬에 소외시킨 우리의 책임처럼 하지 않았는가! 그런데 이번은 평양 남북정상회담에 초청을 하자 자유한국당은 즉각 거절했다"고 맹비난했다.
국회 특별대표단 방북 성사 여부와 상관없이 여야의 신경전이 치열하게 펼쳐지는 모양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