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조은정 기자
지난 6일 개막한 광주 비엔날레에 대한 평가가 뜨겁다. 이번에는 사상 최초로 한명이 아닌 무려 11명의 큐레이터들이 협업해 최대 규모로 치러진다. 장소도 비엔날레 전시관을 벗어나 국립아시아문화전당과 옛 국군병원 부지까지 확장했다. 북한의 '조선화'를 대거 전시하면서 개막 전부터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너무 많은 작품을 한꺼번에 펼치다보니 전시 주제를 관통하는 흐름이 흔들리고 작품 설명은 불친절했다는 점이 한계로 지적된다.
◈ 세계화 이후 강화되는 국경, 난민 이슈 다각도로 재조명통상 비엔날레는 한 명의 큐레이터가 기획하지만, 이번엔 각국에서 온 11명의 큐레이터가 전시에 참여했다. 전시의 큰 주제는 '상상된 경계들'(Imagined Borders)이다. 민족주의 관련 책인 <상상의 공동체(imagined="" communities)="">에서 차용됐다.
세계화 이후 오히려 역으로 민족적, 지정학적 경계가 재편되고 있는 현상에 대해서 탐구해보자는 것이 전시 주제이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제주도에 들어온 예맨 난민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는 대한민국의 현실은 국경이라는 가장 확실한 '경계'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42개국 162명의 작가가 참여했으며, 총 7가지의 세부 주제로 전시가 나뉘었다. 광주 북구 용봉동의 비엔날레 본관 작품 중에서는 국가 주도의 난개발은 물론 난민, 이민, 여성, 국가의 정체성 등을 소재로 한 작품들이 눈에 띈다.
멕시코 작가인 다미안 오르테가가 멕시코시티의 한 동네에 지어진 집들의 패턴을 따라 양가죽을 오려 만든 작품이 전시관의 입구에서 관람객들을 맞는다. 찢긴 옷가지처럼 조각조각 매달린 작품은 멕시코의 유토피아 개발 사업에 대해 풍자한다.
서현석의 <잃어버린 항해="">는 1966년도 서울 중심부에 세워진 세운상가의 역사를 살펴보는 작품이다. 한때 서울의 모더니즘 이상이었지만 콘크리트 더미로 외면받는 과정을 통해 독재와 난개발의 메시지를 던진다. 미아오 잉의 <친터넷 플러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는 중국 당국의 인터넷 검열을 풍자한다. 선우 훈의 <평면이 새로운="" 깊이다="" 2018="">는 컴퓨터 스크롤을 통해서 서울시청 광장의 촛불에서 시작해 미투 열풍까지 대한민국의 변화를 평면 화면에 픽셀 형식으로 담아낸다.
난민 문제에 관심이 있다면 톰 니콜슨의 <나는 인도네시아="" 출신입니다="">와 수퍼플렉스의 <외국인 여러분,="" 제발="" 우리를="" 덴마크="" 사람들하고만="" 남겨두지="" 마세요=""> 등의 작품들이 시사점을 남긴다.
그러나 비엔날레 본 전시관에는 광범위한 주제의 작품들이 한자리에 집결돼 있어 집중력을 떨어뜨렸다. 전시관 밀도가 높은 만큼 모든 작품을 둘러보려는 욕심보다는 자신에게 영감을 주는 작품들을 위주로 감상하는 것을 추천한다.
◈ 북한 조선화 눈길, 난해한 해설과 전시 불친절함은 극복할 과제
광주 동구의 아시아문화전당은 그나마 전시 공간이 넓고 동선이 매끄러워 감상하는데 수월하다. 타라 도노반의 플라스틱 튜브로 만든 작품은 과잉 소비의 문제를 생각하게 한다. 쿠바 작가 크초의 <잊어버리기 위하여="">는 해변에 떠내려온 중고 물품을 이용한 작품으로 1995년 광주 비엔날레 첫회에 전시됐다가 다시 광주를 찾았다. 이응노의 <군상> 연작도 95년 출품작으로 다시 광주에 귀환했다.
나라 요시토모가 일본 마을인 토비우에서 머무리면서 진행한 커뮤니티 프로젝트 최신작도 복합 4관에서 만날 수 있다. 복합 5관에서는 정찬부의 플리스틱 빨대를 이용한 <피어나다>는 작품을 비롯해 안정주 작가가 국가 주도 올림픽 행사를 비판한 <영원한 친구와="" 손에="" 손잡고=""> 등의 작품이 눈길을 끈다.
이번 광주비엔날레에서 전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았던 전시는 북한의 조선화 전시이다. 수차례 평양을 방문하며 북한 미술을 연구해온 문범강 큐레이터가 야심차게 전시를 맡았다.
7월 말부터 중국 베이징과 미국 워싱턴에서 반입된 북한 작품들은 동양화를 자체적으로 발전시킨 '조선화'라는 형식으로 규모와 색채가 눈을 사로잡는다. 북한 주체 사상을 암시하는 정치색이 짙은 작품들은 이질감을 주기도 하지만 북한의 평범한 인물과 풍경을 그린 그림들도 있다. 이같은 작품들은 북한에서도 회화가 선전의 도구만이 아니라 일상의 미학을 품고 있음을 느끼게 한다.
광주 화정동 국군수도병원의 옛 터에서는 마이크 넬슨이 병원에서 수집한 수십개의 거울을 모아 전시했다. 다만 오래 방치된 병원 내부가 깨진 유리와 무너지는 천장 등으로 심하게 부패돼 있어 전시의 안전성이 우려된다.
주옥같은 작품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이번 전시에 가장 아쉬운 점은 불친절한 설명이다.
작품 설명이 한 귀퉁이에 써 있지만 번역체로 내용 자체도 이해하기 어렵고, 작은 글씨와 어두운 조명 때문에 잘 읽히지 않는다. 작품 설명집을 따로 산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한국어 문법에 맞지 않는 번역체의 작품 해설은 오히려 감상을 방해한다. 김선정 광주비엔날레재단 대표이사는 시민과의 소통을 강조했지만 작품의 양과 질에 비해 전시가 일반 관객들에게 친절하지 못한 점은 더 보완해야할 부분이다.
전시는 11월 11일까지 이어진다. 영원한>피어나다>군상>잊어버리기>외국인>나는>평면이>친터넷>잃어버린>상상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