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축구를 이끄는 박항서 감독은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한국과 4강을 패한 뒤 일부 베트남 취재진에게 선수 기용에 대한 질문을 받고 상당히 불쾌한 기분을 감추지 않았다. 이한형기자
잘해도 문제, 못 해도 문제다.
한국과 베트남의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남자축구 준결승이 열린 지난 29일(한국시각) 인도네시나 치비농의 파칸사리 스타디움. 이곳은 나란히 붉은색을 응원의 주된 색으로 사용하는 두 나라 응원단 덕에 온통 붉은 빛, 마치 ‘붉은 바다’ 같았다.
두 나라의 차이는 베트남이 오롯이 붉은색으로 도배됐지만 한국은 곳곳에 흰색도 있었다는 점이다. 이를 제외하고는 경기 내내 그라운드의 선수들에게 뜨거운 응원을 보내는 붉은 함성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김학범 감독과 20명의 선수가 경기하는 경기장에는 항상 한국 응원단이 주를 이뤘다. 상대국을 응원하는 목소리보다 한국을 응원하는 이들의 규모가 언제나 컸다. 하지만 이날은 달랐다. 베트남과 한국을 응원하는 이들의 규모는 큰 차이가 없었다. 베트남의 응원단에는 이번 대회에 출전한 여자배구 등 다른 종목의 선수도 포함되어 있었다.
하지만 경기는 한국의 3대1 승리로 끝났다. 결과적으로 이날 파칸사리 스타디움은 한국의 세 골과 함께 세 번의 침묵이 있었다. 순간적으로 조용해진 경기장에는 오직 네 박자 박수응원과 함께 울려 퍼지는 “대~한민국”만이 가득했다.
한국의 골 이후 세 번의 순간 정적이 흘렀지만 베트남 응원단은 경기 내내 그라운드 위의 선수를 향해 뜨거운 함성과 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이에 질세라 한국 응원단 역시 계속해서 열띤 응원을 이어갔다.
비록 경기장 안에서는 한국이 승리했지만 관중석에서는 한국과 베트남이 우위를 가리지 못했다. 하지만 모두가 박항서 감독과 베트남을 응원하는 건 아니었다. 경기 후 공식 기자회견에서 박항서 감독의 얼굴을 굳게 만드는 사건도 있었다.
패장이지만 박수를 받고 기자회견장에 나타난 박항서 감독은 담담히 패배 속에서도 확인한 베트남의 미래를 소개했다. 베트남 선수들이 한국을 상대로 초반에 긴장한 탓에 큰 점수차의 패배가 나왔다는 것이 박항서 감독의 분석이었다.
하지만 박항서 감독을 향한 마지막 질문이 다소 논란이 됐다. 한 베트남 취재진이 특정 선수의 이름을 언급하며 경기 도중 교체 투입된 이유를 물었다. 이에 박항서 감독은 “선수 기용은 나와 우리 코칭스태프가 선수의 컨디션, 상대에 따라 신중하게 접근한다. 결과는 감독인 내가 책임진다”면서 “특정한 선수가 매번 주전으로 나갈 수 없다. 가장 적합한 선수가 나간다”고 답했다.
답변에 성이 차지 않은 듯 같은 질문을 하자 박항서 감독의 얼굴이 그대로 굳어버렸다. 그리고는 다소 높아진 톤으로 다시 같은 답변을 내놨다. 인터뷰가 끝난 뒤 많은 베트남 취재진은 다시 한번 박항서 감독을 향해 박수를 보냈다. 하지만 감독의 얼굴에는 패배의 아쉬움과는 조금은 결이 다른 불편한 기색이 자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