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전 대법원장 (사진=윤창원 기자/자료사진)
군사정권 시절 피해자들에 대한 국가배상을 가로막아 '2차 피해' 논란을 불러일으킨 양승태 대법원의 판결이 헌법에 위반되는지 여부가 결정된다.
헌법재판소는 30일 오후 2시 대심판정에서 △박정희 정권 긴급조치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패소 판결에 대한 재판취소 △민주화운동 보상법에 따른 보상금 지급을 이유로 손해배상 청구 불가 판결에 대한 헌법소원 △과거사 사건에 대한 국가배상 청구권 소멸시효 축소 판결에 대한 헌법소원 등에 대해 결정한다.
긴급조치 피해자 재판취소의 대표적 사건은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이 낸 헌법소원이다.
백 소장은 1973년 '박정희 유신헌법' 개정운동을 하다 긴급조치 위반으로 영장없이 체포돼 유죄판결을 받았다.
그는 2009년 재심을 청구해 무죄를 확정받았다. 대법원과 헌재가 2010년 긴급조치가 위헌으로 무효라는 판단을 내놓으면서다.
이후 백 소장은 국가배상 청구소송을 냈지만 양승태 대법원이 받아들이지 않았다. 긴급조치가 위헌이기만 유신헌법에 근거한 국가적 행위이기 때문에 정치적 책임만 있을 뿐 국민 개인에게 배상할 이유가 없다는 취지에서다.
백 소장은 이에 대법원이 헌재 결정을 부인하고 개인의 행복추구권과 재판청구권, 국가배상 청구권 등을 침해했다며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또 법원의 재판을 헌법소원 심판 대상에서 제외한 헌재법 68조 1항이 위헌이라는 주장도 하고 있다.
또 박정희 정권의 긴급조치 위반으로 유죄판결을 받은 뒤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민주화운동 보상법)에 따라 생활지원금을 받은 인물들의 사건도 있다.
이들은 2010년 긴급조치 위헌 판결 이후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다.
하지만 양승태 대법원은 민주화운동 보상법에 따라 지원금을 받은 경우 민사소송법상 화해한 것으로 봐야 한다며 소송을 제기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에 피해자들은 상대적으로 소득이 낮은 사람들이 민주화운동 보상법에 따라 지원금을 받았고, 반대로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 국가배상을 받게 돼 평등원칙에 위반한다며 위헌제청을 했다.
국가가 피해자들의 명예회복을 위해 보상금을 지급해놓고 손해배상을 청구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은 국가배상 청구권을 침해한 것이라는 주장도 하고 있다.
이밖에 불법 체포와 고문으로 허위자백을 해 국가보안법 등을 위반한 혐의로 유죄를 받은 이들의 과거사 사건이 있다.
이들은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기본법에 따라 재심을 통해 무죄를 받은 뒤, 6개월 이상 지나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다.
하지만 또 양승태 대법원은 무죄 확정 판결을 받은 뒤 6개월 이내 손해배상 청구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소송을 낼 시효가 소멸됐다며 국가의 손을 들어줬다.
이에 이들은 과거사 사건의 손해배상 청구권의 시효가 소멸됐다는 내용이 헌법에 위반된다며 헌법소원을 냈다.
앞서 CBS노컷뉴스는 피해자들이 이같이 양승태 대법원으로부터 2차 피해를 당한 사실을 조명한 바 있다.(관련기사 : 배상금 줬다 되찾아간 국가…"다시 고문실로 돌아간 기분", 징역 하루당 4만원에 국가와 화해?…"돈 없으면 배상금도 안줘")
따라서 헌재가 양승태 대법원의 판결을 모두 취소한다면, 2차 피해를 당한 이들의 구제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또 헌재가 이날 결정으로 대법원의 판결을 모두 뒤집는다면, 양승태 대법원과 박근혜 정권 간의 재판거래 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에 힘이 실리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양승태 대법원은 상고법원 추진을 위해 박근혜 정권과 재판을 거래한 의혹으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검찰은 이미 박정희 전 대통령이 맺은 '한일협정'의 정당성을 유지하기 위해 박근혜 정권이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소송에 개입했다고 보고 있다.
결국 헌재의 심판 결과에 따라, 양승태 대법원의 판결이 박정희 정권의 긴급조치에 대한 불법성을 가능한 한 축소시키고 박근혜 정권에서 국가배상액을 크게 줄이기 위한 조치였다고 의심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