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너의 결혼식'에 출연한 배우 박보영이 13일 오후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인터뷰 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이한형 기자/자료사진)
'건축학개론'과 '너의 결혼식'에는 '첫사랑' 소재 외에도 한 가지 공통점이 더 있다. 바로 남자 주인공 시점에서 전개되는 '첫사랑' 영화라는 것이다. 도무지 속을 알 수 없었던 '건축학개론' 속 서연의 모습을 돌이켜보면 이런 영화들에서 납득 가능한 여성 캐릭터들을 만드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알 수 있다.
국내 대다수 로맨스 영화에서 '첫사랑'은 남성 캐릭터의 전유물처럼 여겨져왔다. 첫사랑을 향해 순애보적인 마음으로 달려가는 남자에게 그 상대인 여성은 사랑스럽지만 수수께끼처럼 어려운 존재다. '너의 결혼식' 또한 이 전형적인 공식을 벗어나지 않는 영화임에는 틀림없다. 그렇다면 박보영이 영화 '너의 결혼식'의 여자 주인공 승희 역을 연기한 것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잘못하면 집착적인 사랑이 됐을 수도 있을텐데 (김)영광 오빠가 연기한 우연이 순수한 사랑으로 표현을 잘 해준 것 같아요. 승희는 아쉬움이 좀 있죠. 우연의 시선에서 가는 영화니까 승희의 감정변화를 조금만 더 친절하게 보여줬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을 해요. 어쨌든 이건 제 욕심인 거 같고, 영화상에서는 그렇게 보여지는 게 맞겠죠."
박보영에게 승희는 마치 동경의 대상과도 같다. 본래 박보영은 남의 눈치도 많이 보며 휩쓸리기도 쉬운 성격이라고. 자신과 반대로 똑부러지면서도 자신의 주관이 뚜렷한 승희를 보면서 '멋지다'고 느꼈다고 한다. 그러나 우연의 시점에서 바라 본 승희를 개연성 있는 캐릭터로 만드는 작업은 결코 쉽지 않았다.
"감독님과 이야기를 많이 나눴는데 저는 끝까지 승희를 지키리라 생각했어요. 우연이와 헤어질 때도 저는 너무 속상해서 눈물이 났거든요. 그런데 눈이 '촉촉'해서도 안된다는 거예요. 어떻게 그렇게 매정하게 이야기 할 수가 있겠어요. 안 우는 건 이해가 되는데 그렇게 매몰차게 해야 하면 어디를 보고 해야 할 지 모르겠다고 했죠. 그런데 남자 스태프들이 그러더라고요. 여자들이 헤어질 때는 다 그렇게 매몰차지 않냐고. 처음에 너무 외로웠어요. 나만 이상한 사람인가, 내가 고집부리고 있나 싶어서…. 그런데 스크립터랑 조감독님이 언니들이라서 엄청나게 힘이 되어 줬어요. 승희가 너무 못되게 보일 것 같아서 고민이면 언니들 있을 때 말을 꺼냈어요. 그러면 감독님이 언니들에게 정말 그렇냐고 물어보면 같이 그렇다고 해주고…. 다행히 감독님이 제 의견을 많이 받아들여주셔서 감사했어요."
영화 '너의 결혼식'에 출연한 배우 박보영이 13일 오후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인터뷰 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이한형 기자/자료사진)
영화 속 승희가 우연과 헤어지며 건네는 대사는 다음과 같다. '네가 그런 행동을 했다는 걸 못 잊는 게 아니라, 그런 생각을 했다는 걸 못 잊는거야'. 그런데 실제로 박보영은 시사 이후 주변 성별에 따라 너무 다른 반응을 접했다. 여성들은 대다수 승희가 우연과 헤어지는 원인에 공감했지만, 남성들은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다.
"저는 정말 승희가 그 말을 하며 헤어지는 걸 이해했거든요. 그런데 남자분들의 공통적인 질문 1위는 '그게 헤어질만한 이유냐'는 거였어요. 정말 여자와 남자가 너무 다르구나를 느꼈죠. 남자분들의 공감이 더 큰 부분은 우연의 시선에서 가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사실 승희가 그럴 수밖에 없었던 상황들이 있었는데 없어진 부분도 있어서 개인적으로 아쉽기도 하고…. 승희에 대한 호불호가 있더라고요. 남자분들이 봐도 공감되는 캐릭터였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연기했지만요. 그게 고민이기도 하고, 반응이 궁금하기도 해요."
박보영은 만약 2편이 나온다면 승희 시점, 즉 '여성'의 시점에서 첫사랑을 그리고 싶다고 웃었다. 자신이 남자 시점이 투영된 첫사랑 여자를 연기했으니, 그 반대가 되어도 재미있겠다는 생각이다.
"승희가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 승희 시점에서 그리는 영화가 나오면 재미있을 것 같아요. 그러면 저도 현장에서 여자가 봤을 때는 그게 아니라고, 여자들이 생각하는 남자들의 모습에 대해 주문할 수 있겠죠? (웃음) 남자들이 생각하는 '여자가 그랬다'는 공통분모가 크니까 승희 또한 그럴 수밖에 없는 아이가 되는 느낌이거든요. 여자들은 보통 헤어지면 '내가' 그 사람과 왜 만났나를 생각하는데 남자들은 좀 다른 것 같아요. 공통적으로 첫사랑은 예뻤지만 그 첫사랑과 잘 되지 않았던 건 그 애가 못됐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있는 거 같더라고요. 여자들은 그 사람이 좋아질만한 포인트가 하나 있으면 좋아하는 경우가 많은데 남자들은 외모적인 공통분모도 있고요. 여자들에게 그런 첫사랑 이미지가 없어서 여자 시점의 첫사랑 영화들이 나오기 힘든 걸까 그런 생각도 해봤어요."
이번 영화를 촬영하면서 '내가 한 첫사랑은 첫사랑도 아닌가'하는 생각까지 해봤다. 박보영은 영화에서처럼 사랑에 빠진 사람이 느끼는 극적인 감정이 없었다면서 자신의 애정사를 이야기했다.
"엄청나게 성장하는 계기가 된다거나 감정의 폭을 많이 느끼거나 그랬어야 하는데 내가 한 건 첫사랑이 아닌가 싶었어요. 헤어져서 일상생활이 불가하지도 않았고 그랬거든요. 그냥 보통의 연애 중 하나였나, 좋아하는 감정에 그쳤었나…. 그런데 메이크업하면서 오늘 스태프들과 이야기를 나눴는데 스태프가 '누군가에게는 언니가 첫사랑일 수도 있잖아요'라고 하는 거예요. 정말 그런 걸 정말 생각을 한 번도 안해봤더라고요. 이번 영화를 곱씹으면서 그런 생각지도 못한 걸 생각하고 그랬던 것 같아요."
영화 '너의 결혼식' 스틸컷. (사진=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제공)
'피끓는 청춘' 이후 4년 만에 만난 김영광과는 촬영 내내 설레기도 하고, 화나기도 하며 다양한 감정을 공유했다.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히고 다투면서 길거리에서 데이트하는 건 해본 적이 없어서 처음 느끼는 감정들에 대해 설렘을 느꼈다는 설명이다. 화가 났던 순간은 승희에게 몰입해 촬영했던 고궁 데이트 장면이었다.
"고궁 데이트에서 현실적으로 승희에게 빙의해서 너무 마음이 상했어요. 오빠가 내 이야기를 듣는 둥 마는 둥 하면서 진짜 지겹다는 얼굴로 돌아보는데 화가 가라앉지를 않더라고요. 촬영 끝나고 진짜 여자친구랑 싸울 때 이렇게 이야기하냐고, 너무 상처받았다고 이야기 나누고 그랬어요. (웃음) 계단에서 더 싸우는 장면을 찍었는데 화가 나서 대사를 많이 틀렸어요. 그렇게 현실적인 대화로 싸우는 역할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신기하고 재미있는 경험이었어요."
스크린과 브라운관을 왕성하게 오가며 박보영은 많은 남자 배우들과 호흡을 맞췄다. '늑대소년'의 송중기, '오! 나의 귀신님'의 조정석, '힘쎈여자 도봉순'의 박형식 등에 이어 '너의 결혼식' 김영광은 어떤 상대 배우였을까. 그는 김영광을 한 마디로 정의한다. '계산이 없어서 편하며, 나쁜 남자는 못되는 허당 매력의 소유자'. 김영광 성대모사까지 능숙하게 하면서 웃음을 자아냈다.
"평소 모습도 우연이 같아요. 장난끼가 엄청 많아요. 그냥 서로 어떤 스타일이고 느낌인지 아니까 이렇게 해도 되나 망설이는 것 없이 편하게 했어요. 정말 계산하지 않는 사람이거든요. 현장에서 자기 느낌에 따라서 그 느낌대로 하는 스타일이고요. 처음에는 그걸 받는 게 살짝 어렵긴 했는데 나중에는 저도 동화되더라고요. (웃음) 전 원래 상대 배우 스타일에 많이 좌우되는 성격이라. 연기가 굉장히 자연스럽게 나오는 장점이 있었어요. 서로 얼마나 편하게 생각하는지 그 마음을 다 아니까 커플 화보를 찍어도 부담이 하나도 없고, 내가 이렇게 해도 괜찮은 사람이다라는 확신이 있었거든요. 오빠는 가만히 있을 때 보면 바보 같아요. 그 순수해보이는 웃음이 정말 많은 걸 차지하는 것 같기도 하고…. 나쁜 남자는 정말 1도 아니고, 허당의 매력을 느낄 수 있어요."
영화 '너의 결혼식'에 출연한 배우 박보영이 13일 오후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인터뷰 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이한형 기자/자료사진)
아역활동까지 감안하면 박보영은 벌써 12년 차 배우다. 탄탄한 연기력과 캐릭터 소화력을 무기로 그는 지금까지 성공적인 필모그래피를 그려왔다. 연기뿐만 아니라 대중적인 이미지가 상당히 좋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정작 박보영에게는 말못할 고민이 있었다.
"이게 굉장히 고쳐야 되는 거고, 병이긴 한데 저는 좋은 말들은 거짓말이라고 생각하고, 좋지 않은 이야기는 진짜라고 잘 받아들여요. 어렸을 때부터 연기에 대한 피드백이 왔을 때 잘했다는 이야기는 내 앞이라서 그렇다고 생각했고, 부족하다는 이야기에는 꽂혀서 어떻게 하면 그걸 고칠까 항상 쌓아 놓았던 것 같아요. 그게 시간이 지나고 보면 제게 좋지 않고, 저를 갉아먹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많이 고치려고 하고 있어요. 제가 '브이앱'을 하거든요. 정말 좋은 이야기가 많은데 안 좋은 댓글에 딱 멈춰요. 친구가 저한테 네가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널 좋아하고 있다고 이야기하지만 저는 제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저를 미워하고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고쳐야 되는 것 같아요. 저 정도면 안티도 많이 없는 편이라는 이야기를 들어도 상처받은 기억이 크니까 '그렇지 않다. 모르셔서 그렇다'고 대답하거든요."
이제 30대를 앞둔 나이. 박보영은 앞으로 자신의 행보에 어떤 청사진을 그리고 있을까. 그에게 연기란 욕심을 부리거나 아니면 현실적 타협을 하는 선택의 연속이었다. 영화에서는 다양한 캐릭터에 도전하고 좀 더 대중적인 드라마에서는 시청자들이 원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는 바람이다.
"항상 제 범주에서 다른 결을 보여드리고 싶어해요. 영화에서는 사랑스럽거나 이런 면과는 다른 면을 보여드리려고 하고요. 드라마는 시청자분들이 보고 싶어하시는 모습을 보여드린다고 생각을 해서 사랑스러운 면이 부각되는 작품들을 했던 것 같아요. 영화는 제 욕심에 다른 선택들을 했었는데 아무래도 드라마가 대중적이라 사랑스러운 이미지로 받아들여지는 게 아닌가 합리화를 해봅니다. (웃음) 다음이 뭐가 될지는 잘 모르겠지만 현실적인 타협으로 연기를 하게 될 수도 있고, 욕심으로 하게 될 수도 있겠죠. 예전에는 제가 준비된 환경에 들어갔다면 이제 초기 단계부터 같이 환경을 만들어가는 작업이 많더라고요. 다작하다고는 말 안하려고요. 팬들이 말만 그렇게하고 나오지도 않으면서 희망고문을 한다고 해서 그냥 쉰다고 했다가 하나씩 나오는게 반가울까 싶네요."